24일 저녁 성 베드로 대성전 내 교황의 관 주변 모습. 조문객들은 성당 내부를 자유롭게 찍도록 허락됐지만, 프란치스코 교황의 시신이 직접 나오는 사진은 찍지 못하도록 안내 받고 있다. /바티칸=정철환 특파원

‘육신의 덧없음을 아세요. 욕심에 빠져 싸우고, 뺏고, 상처 주지 마세요. 사랑과 평화를 나눕시다.’

24일 저녁, 화려한 장식 없는 목관에 누워 말없이 천장을 향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모습은 마치 그렇게 이야기하는 듯했다. 선종한 날(21일)로부터 나흘째. 교황의 관에서 약 4m 앞에 설치된 울타리를 붙잡고 바라본 교황의 얼굴색은 창백하다 못해 푸르게 보였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선대 교황들처럼 자신의 시신이 방부 처리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다만 시신이 빨리 부패하는 것을 막으려 주사를 이용한 ‘엠바밍(embalming)’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평화로우면서도 죽음의 의미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교황의 모습에 조문객 모두가 숙연해졌다. 성 베드로 대성전 내부의 화려한 모습에 감탄하며 연신 사진을 찍던 이들도 교황의 시신 앞에선 스마트폰과 사진기를 내려놓았다. 조문객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불과 몇 초. 그 짧은 시간 동안 저마다의 방식으로 교황을 추모했다. 어떤 이들은 성호를 그으며 무릎을 굽혀 경의를 표했고, 어떤 이들은 ‘프란치스코’라며 나직하게 교황의 이름을 불렀다. 신자가 아닌 이들은 엄숙한 분위기에 압도된 듯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

24일 저녁 성 베드로 대성전 안의 모습. 프란치스코 교황을 조문하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 높이 약 30m의 거대한 발다키노(天蓋) 앞에 교황의 관이 놓여 있다. /바티칸=정철환 특파원

교황의 관 주변에는 평소 그와 가까웠던 이들과 여러 성직자 및 수도자들이 모여 교황을 위한 연도(죽은 이를 위한 기도)를 하고 있었다. 기도문을 외우다 눈물을 훔치는 이들, 교황의 선종이 믿기지 않는 듯 관 옆에서 하염없이 그를 바라보고 있는 수녀들도 있었다. 쉽게 발길을 뗄 수 없었던 조문객들 일부는 교황의 시신 뒤편에 있는 ‘고백의 제단’과 이를 덮고 있는 발다키노(天蓋) 뒤쪽으로 울타리를 돌아가 쉬지 않고 계속 이어지는 추모 의식을 지켜봤다.

교황청 측은 밖에서 줄을 서 있는 수만 명의 조문객들이 가능한 많이 교황의 마지막 모습을 볼 수 있도록 애를 썼다. 교황청 소속의 현장 안내원들은 교황의 관 근처에서 서성이는 이들을 향해 ‘이동해 달라’고 연신 수신호를 보냈다. 성 베드로 대성전 바깥에서는 자원봉사자들로 보이는 이들이 나서서 이동을 도왔다. 자칫 줄이 밀리면서 압사 사고가 벌어질까 한 번에 수백 명씩 끊어가며 성당을 향해 갈 수 있도록 통제했다. 이날 밤까지 교황을 조문한 이들의 수는 8만~9만명으로 알려졌다.

24일 저녁 프란치스코 교황을 조문하기 위해 성베드로 대성전 앞에 줄 선 사람들. 성당 입구에서 약 200m 떨어진 지점이다. /바티칸=정철환 특파원

당초 자정까지로 제한했던 조문 시간을 새벽까지 연장하면서 한때 바티칸 바깥까지 1km가 넘게 늘어섰던 줄은 다소 줄어들었다. 24일 오후 소나기가 내린 직후엔 300여m 정도로 짧아지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대다수의 사람들이 3~6시간의 오랜 기다림 끝에 교황을 만나고 있다. 교황은 장례 미사 전날인 25일 밤 7시까지 신자들과 일반인들을 만날 예정이다. 이후 밤 8시에 교황의 관을 덮는 ‘관 봉인 예식’이 치러지면, 세상은 더 이상 프란치스코 교황의 모습을 볼 수 없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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