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의 일반 신자 조문이 시작된 23일 추모객의 행렬이 교황의 시신이 안치된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당 입구부터 광장까지 길게 이어져 있다. 대성당 문을 자정 넘어까지 개방해도 전 세계에서 모여드는 신자들로 줄이 줄어들지 않고 있다. 교황의 장례 미사 전날인 25일까지 25만명 이상의 조문객이 방문할 것으로 예상된다./AFP 연합뉴스

프란치스코 교황이 묻힐 예정인 이탈리아 로마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전(성모 대성전)에선 24일 교황의 묘를 만들기 위한 공사가 한창이었다. 교황이 유언장에서 직접 지정한 파올리나 경당(성당 내 예배당)과 스포르차 경당 사이 매장 지점에는 두꺼운 합판 가림막이 설치됐다. 안에서 벽과 바닥을 파내는 듯 ‘쿵쿵’ 소리가 났다.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전(성모 대성전)내 프란치스코 교황의 묘자리에 두꺼운 합판으로 칸막이가 둘러쳐졌다. 24일 현재 이곳에선 교황의 시신을 안장할 자리가 마련되고 있다. 오른쪽 철창이 있는 곳이 성모 성화가 있는 파올리나 경당이다./EPA 연합뉴스

성당이 문을 여는 오전 7시부터 방문객이 길게 줄을 서기 시작, 입장까지 1시간 가까이 대기하는 상황도 벌어졌다. 성당 측은 “오늘 반나절 동안에만 1만명 넘게 방문했다”고 밝혔다.

많은 이가 합판 가림막 앞에서 성호를 긋고 기도를 올렸다. 프랑스인 올리비에(50)씨는 “교황님이 왜 이 성당에 큰 애착을 가지셨는지 직접 와보니 알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성모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이자 그의 큰 사랑을 받은 여인”이라며 “그만큼 하느님께 가까이 있는 성인 중의 성인이기에 교황님뿐 아니라 많은 이가 그분께 의탁한다”고 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묻힐 예정인 로마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전(성모 대성전)의 유명한 성모 성화 옆에 프란치스코 교황의 사진이 놓였다. /AFP 연합뉴스

이런 언급은 이곳이 성모(聖母)에게 봉헌된 최초의 성당이자, 성모를 소재로 한 성화 ‘로마인들의 구원’으로 유명한 성당이기 때문이다. 이 성화는 중세에 흑사병의 확산을 막는 기적을 일으켰다고 알려져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20년 3월 신종 코로나의 종식을 간구하며 이 성화를 성 베드로 광장으로 옮겨 특별 기도회를 열기도 했다. 교황의 묘는 성화에서 불과 20여m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이 성당에 대한 교황의 애착은 유명하다. 2013년 즉위 직후 방문했고, 해외 순방 전후에도 꼭 이곳을 찾았다. 지난달 23일 퇴원 후 바티칸으로 돌아가는 길에도 이곳부터 들렀다. 성당 측은 “교황은 120회 이상 이곳을 찾았고, 올 때마다 꽃을 가져왔다”고 했다.

성 베드로 대성당에 안치된 교황의 시신을 참배하려는 신자들의 발길도 계속 이어졌다. 대성당 앞에는 전날 한때 10만명 넘게 줄을 섰다. 하지만 저녁 7시 30분까지 약 8시간 동안 조문을 할 수 있었던 이들은 약 2만명에 불과했다. 1㎞에 육박하는 줄이 밤늦게까지 줄지 않자 교황청은 자정 넘어 새벽 5시30분까지 성당 문을 열었다. 상당수 조문객이 6시간 이상 줄을 섰다.

프란치스코 교황을 조문하려는 신자들의 줄이 23일 밤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직선 거리로 약 600m 떨어진 콘칠리아치오네 거리까지 늘어섰다. /AFP 연합뉴스

24일 아침에도 이 줄은 크게 줄지 않은 채 이어지고 있다. 이탈리아 매체들은 금요일까지 25만명에 달하는 조문객이 찾을 것으로 예상했다. 이 밖에도 세계 150국 이상에서 1000여 명의 사절단이 오면서 바티칸과 로마 일대는 온통 북새통이 될 전망이다. 한국 정부도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단장으로 한 사절단을 파견하기로 했다. 교황청은 장례 미사가 열리는 26일부터 9일간을 애도 기간으로 정했다. 5월 4일까지 매일 성 베드로 광장에서 추모 기도회가 열린다.

추모 열기 한편으로 차기 교황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가톨릭 교회 일각에서는 성경과 전통 교리에 기반한 보수적 입장을 기본으로, 교회의 통합을 중시하는 인물이 나와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비(非)유럽 출신으로 배려와 관용을 중시했던 프란치스코 교황에 대한 반작용인 셈이다.

바티칸 성 베드로 성당에 23일 안치된 교황의 시신에 경의와 추모를 표하기 위해 줄을 서 있는 추기경들의 모습. 이중 한 명이 다음 달 5일에서 10일 사이 열리는 콘클라베에서 차기 교황이 선출된다. /EPA 연합뉴스

독일 출신으로 가톨릭 보수파를 이끄는 게르하르트 뮬러 추기경은 영국 더타임스에 “보수냐 진보냐가 문제가 아니다. 정통파 교황이 선출돼야 한다”고 했다. 그는 “후임 교황이 세상의 박수를 받을 목적으로 교회를 단순한 인도주의 단체처럼 만들려고 해선 안 된다”며 “가톨릭 신앙은 교황에게 맹목적으로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과 교리, 전통을 존중하는 것”이라고 했다.

교세가 급격히 성장 중인 아시아 혹은 아프리카에서 사상 첫 비(非)백인 교황이 나올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는 가운데, 필리핀 출신 루이스 안토니오 타글레 추기경과 함께 한국 유흥식 라자로 추기경(교황청 성직자부 장관)이 10여 명의 유력 후보 중 하나로 거론되고 있다. 유 추기경은 23일 아시아권 교황 탄생 가능성에 대해 “주님께는 동서양의 구분이 없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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