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20일 취임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오는 29일 취임 100일을 맞는다./AP 연합뉴스

미국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종전 협상을 주재하는 가운데 러시아는 27일에도 우크라이나에 대한 공격을 이어갔다. 로이터에 따르면 러시아는 이날 우크라이나를 공격해 최소 네 명이 사망했다. 전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바티칸에서 열린 프란치스코 교황 장례 미사에 앞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독대를 한 지 하루가 채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트럼프는 지난해 11월 대통령 선거 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해결을 위해 푸틴과 만날 것이고 (취임 후) 24시간 내 전쟁을 끝내겠다”고 여러 차례 호언했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로 흘러가고 있다. 트럼프가 취임 후 마련한 종전안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이해관계가 엇갈리면서 타결이 요원해졌다. 이스라엘과 하마스(팔레스타인의 이슬람 무장 단체) 간의 전쟁도 끝이 안 보이긴 마찬가지다.

그래픽=양인성

지난 1월 20일 대통령 ‘2기’에 취임해 29일 100일을 맞는 트럼프는 지난해 대선 기간 동안 강력한 국경 봉쇄, 과감한 세금 감면, 신속한 전쟁 종식 등을 공약으로 내세우며 민주당 후보였던 카멀라 해리스 당시 부통령을 꺾었다. 그는 취임 이후 지금까지 행정명령 138건(이코노미스트·28일 기준)에 서명하며 정책을 속도감 있게 추진하는 듯 보였다. 100일 기준 역대 최다이지만, 이를 하나씩 뜯어 보면 한 가지 사안에 대해 비슷한 행정명령 여러 개에 서명했거나 법적 분쟁에 휘말려 제대로 추진되지 않고 있는 사안이 적지 않다. 워싱턴포스트는 ‘말’은 화려했던 트럼프의 공약 이행률이 13% 정도에 그친다고 평가했다. 대선 때 50%(전국 기준)를 득표해 승리했던 트럼프의 지지율은 39%(27일 발표·워싱턴포스트-입소스 조사)까지 하락했다.

그래픽=이철원

트럼프가 실행에 옮긴 공약이 없지는 않다. 취임 첫날 ‘파리기후변화협약 탈퇴’, ‘에너지 비상사태 선포(미국 연안에서 해상 석유 탐사와 알래스카 석유·가스 개발)’ 등을 행정명령을 통해 실행에 옮겼다. 또 매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란 뜻의 트럼프 구호)’ 골수 지지자들을 위해, 2020년 대선 때 트럼프의 패배에 불복한 지지자들이 연방 국회의사당에 난입한 이른바 ‘1·6 사태’ 연루자 200여 명을 사면·석방했다.

하지만 이런 단편적인 공약 이행을 제외하고, ‘거래의 달인’이라고 자처하며 단칼에 해결하겠다고 공언한 세계의 난제(難題) 중엔 여전히 출구가 보이지 않는 것이 많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및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등 금세 끝내겠다고 한 두 전쟁이 대표적이다.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은 27일 NBC방송 인터뷰에서 “이번 주는 우리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종전 협상을 계속할지 아니면 다른 문제에 집중할지를 결정해야 하는 매우 중요한 주가 될 것”이라며 “협상은 조속히 이뤄져야 하고 노력이 결실을 보지 못하면 우리는 시간과 자원을 계속 투입할 수가 없다”고 했다. 종전 협상을 포기할 수도 있음을 시사한 발언으로 해석됐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은 국내 극우 정당과의 연정을 포기할 수 없는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가자지구 공습을 재개하며 민간인 사상자가 다시 늘어 장기 휴전이나 종전과 멀어진 상황이다.

세계 최강대국 지위를 이용해 ‘관세 인상으로 미국의 제조업 부활을 꾀하겠다’는 약속도 트럼프 맘대로는 풀리지 않고 있다. 후보 시절 약속한 ‘중국산 제품 60% 관세’는 중국산에 대한 추가 관세율을 145%까지 올리면서 약속을 초과 달성한 듯 보인다. 하지만 이토록 높은 관세는 미국이 애초부터 원했다기보다, 오히려 미국에 보복 관세를 즉각 부과하면서 형성된 측면이 크다. 미국산 제품에 대한 중국의 관세는 125%까지 올라가 사실상 무역이 중단된 상태다. 트럼프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대화를 하고 싶고, 심지어 이미 시진핑과 연락 중이라는 듯 이야기하고 있지만 중국 측은 “거짓”이라고 단칼에 부인했다.

교역 상대국의 무역 장벽을 분석해 부과하겠다던 상호 관세는 지난 2일 한국을 포함해 57국에 부과했다가 한 주 만에 90일간 유예하겠다고 발표하면서 혼란을 키웠다. 전방위적인 관세 인상으로 경제 불확실성이 커지며 미국 주식 시장이 타격을 입고 달러와 미 국채 가치가 하락(국채 금리 상승)하는 등 예상치 못한 충격이 발생하면서 트럼프도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트럼프 취임 이후 100일간 미국의 대표 주가 지수인 S&P500 지수는 약 10%(25일 기준) 내려갔다. 2차 대전이 발발한 1941년 시작된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 2기(11%) 때의 하락률과 맞먹는 저조한 ‘성적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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