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현지 시각) 우크라이나 피란민 지원을 위해 폴란드 바르샤바에 위치한 난민 센터를 방문한 하야시 요시마사 일본 외무상이 우크라이나 난민 어린이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AP 연합뉴스

일본 정부가 하야시 요시마사 외무상을 특사로 폴란드에 파견해 우크라이나 외교부 장관과 긴급 회담을 하는 등 러시아에 침공당한 우크라이나 지원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하야시 외무상은 귀국길엔 일본행을 희망하는 우크라이나 피란민들을 정부 전용기에 탑승시킬 예정이다. 비서방국가로서는 이례적인 강도로 러시아 비판에 동참해 존재감을 키우고, 새롭게 재편될 세계 질서에서 영향력을 발휘하려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3일 NHK 등 일본 언론에 따르면, 하야시 외무상은 전날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에서 드미트로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교장관을 만나 1시간가량 회담을 했다. 이 자리에서 하야시 외무상은 “단호한 결의로 우크라이나인들을 지원하겠다”며 “(러시아에 대응하려면) 국제사회가 결속해 의연하게 행동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서 우크라이나 피란민 약 2000명이 머무는 바르샤바의 피란민 시설도 시찰했다. 일본 정부는 하야시 외무상과 함께 이동한 정부 전용기에 일본행을 원하는 우크라이나인을 직접 태워 일본으로 같이 이동하는 것을 추진 중이다. 현재 희망자는 약 20명으로 알려졌다. 우크라이나와 국경을 마주한 폴란드는 가장 많은 우크라이나 난민을 수용한 나라로, 침공 후 발생한 피란민 400만명 중 약 230만명이 폴란드에 머물고 있다.

일본 정부의 러시아 제재와 우크라이나 지원은 국제사회에서 주목받고 있다. 기시다 총리는 2월 24일 러시아의 군사행동 개시를 “강력히 비난한다”고 한 뒤 각종 제재를 발표하며 기회가 있을 때마다 러시아 규탄 발언을 하고 있다. 침공 직후 미하일 갈루진 주일 러시아 대사를 초치해 강력히 항의한 하야시 외무상도 마찬가지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일본 국회에서 “아시아 국가 중 가장 먼저 러시아에 실질적 압박을 가한 나라”라고 감사의 뜻을 밝혔고, 이번 외교장관 회담에서도 쿨레바 외교장관은 ‘일본 정부의 신속하고 강력한 제재 조치’에 대한 감사의 뜻을 전했다고 한다.

2일(현지 시각)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를 방문한 하야시 요시마사(오른쪽) 일본 외무상이 드미트로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교장관에게 일본 어린이가 우크라이나 평화를 기원하며 그린 그림을 전달하고 있다. /교도 연합뉴스

가장 두드러지는 건 난민 지원이다. 2020년 공식적으로 인정한 난민 숫자가 47명에 불과할 정도로 극도로 보수적이던 일본이 우크라이나 피란민에 한해서는 별도 루트를 통한 입국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이미 일본 정부는 우크라이나 피란민에게 조건 없이 1년간 체류 자격을 주고 취업까지 허용했다. 정부 차원에서 임시 주거지, 통역, 취직·자녀 교육 상담 등을 제공하고 의료비·생활비도 따로 지급할 방침이다. 이 같은 일본 정부의 파격 원조에 폴란드 외교부는 NHK 인터뷰에서 “일본은 유럽과 멀리 떨어져 있는 나라인 만큼, (우크라이나 피란민 문제는) 일본과는 관계없는 일이라고 외면할 수도 있었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일본 정부가 이처럼 우크라이나 사태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은 중국의 대만 침공을 막으려는 것이기도 하다. 나가시마 아키히사 전 부(副)방위상은 최근 마이니치신문 인터뷰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중국과 대만의 관계를 겹쳐볼 수밖에 없다”며 “대만의 비상사태는 곧 일본의 비상사태”라고 경고했다. 군사력을 내세운 러시아의 일방적 침공을 제대로 규탄하고 제재하지 못한다면, 중국의 오판을 불러 올 수 있다는 것이다.

일본 국민은 대체로 기시다 내각의 대응을 지지하고 있다. 지난달 25~27일 니혼게이자이신문이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일본 정부의 우크라이나 침공 대응에 대해 국민 67%는 ‘긍정적으로 평가한다’고 답했다. 일본의 러시아 경제 제재 수준에 대해서도 ‘적절하다’와 ‘더 강화해야 한다’는 응답이 각각 44%, 41%로 나타났다. 전체 응답자 85%가 러시아 경제 제재에 찬성한 셈이다. 우크라이나 피란민 수용에도 90%가 ‘찬성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이 같은 평가 속에서 기시다 내각의 지지율은 지난달보다 6%포인트 상승한 61%를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