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식당이나 편의점, 수퍼마켓, 호텔 등에서 접객(接客)을 하는 종업원들은 실명이 적힌 명찰을 상의 왼가슴 쪽에 달아놓고 일하는 것이 관례입니다. 손님을 극진하게 모셔 다시 찾게끔 한다는 이른바 ‘오모테나시(お持て成し)’ 문화의 일종이죠. 직원으로 하여금 자신의 이름을 걸고 더 친절한 서비스를 제공하게 하고, 손님에겐 직원과의 심리적 거리감을 줄여 더 편안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돕는 취지입니다.
그런데 최근 일본 각종 가게들과 관공서 등에 직원 명찰 제도를 철폐하는 움직임이 확산하고 있습니다. 최근 일본 지역 정부까지 근절하려고 나서고 있는, 이른바 ‘카스하라(カスハラ)’라는 ‘고객 갑질’과의 전쟁의 일환입니다.
마이도나뉴스에 따르면, 사이타마현 등 수도권을 중심으로 140여 점포를 운영하는 수퍼마켓 체인 베르크는 지난해 11월 점포 열 곳을 대상으로 종업원 명찰에서 이름을 지우는 실험을 시작했습니다. 빈 명찰엔 ‘STAFF(스태프)’라는 단어가 대신 적혔습니다.
그 결과 종업원 973명 중 97%가 “갑질이 줄어드는 등 효과가 있다”고 했어요. 특히 계산대 직원 67%는 “(갑질로 인한) 정신적 부담이 줄었다”고 했습니다.
베르크가 이러한 실험에 나선 건 지난해 사내 앙케이트에서 카스하라로 인한 피해를 본 적 있다는 직원이 10명 중 4명꼴이었기 때문입니다. 손님이 ‘제대로 응대하지 않으면 소셜미디어에 이름을 올리겠다’고 협박했다는 등, 실명이 적힌 명찰이 갑질에 악용됐다는 사례가 수건 접수됐어요.
베르크뿐 아닌 대규모 민간 기업들도 명찰과 갑질 간 상관관계를 인지하고 비슷한 조치에 나섰습니다. 일본 편의점 대기업 패밀리마트는 지난해 5월부터 종업원이 명찰에 가명(假名)을 적을 수 있게 했고요. 세븐일레븐도 같은 해 10월 직책만 기재하는 식으로 명찰 제도를 바꿨습니다.
일본 국토교통성은 2023년 8월 일찍이 버스, 택시 등 승무원을 대상으로 차내에 이름을 게시하게 했던 의무를 폐지했고, 철도 회사 JR규슈도 지난해 초 운전사와 차장(車掌)의 명찰 사용을 중단했습니다.
최근 일본 지방 정부들이 안 그래도 심각한 인력난을 더 가중시키는 각종 갑질을 근절하려 나서는 가운데, 이 같은 ‘명찰 폐지’ 움직임에 고객층 대부분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다고 현지 매체들은 전했습니다. 앞서 일본 도쿄도의회는 지난해 말 ‘카스하라 방지 조례’를 제정해 다음 달부터 시행하기로 했습니다. ‘모든 도쿄도민과 방문자는 어느 장소에서도 피고용인에게 민폐를 끼쳐선 안 된다’는 내용입니다.
민간 업체 못지않게 민원인의 갑질에 노출된 관공서 직원들을 위한 제도도 단계적으로 추진되고 있어요. 가가와현 간온지시(市) 당국은 지난해 관공서 근무자 1100여 명의 명찰을 기존 풀네임(성+이름)에서 성만 표기하는 식으로 바꿨습니다. 오카야마현 오카야마시 등 다른 당국들도 명찰 표기를 풀네임에서 성만 적는 것으로 전환하고 있다고 요미우리는 보도했습니다.
다음 주 다시 일본에서 가장 핫한 이야기로 돌아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