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애폴리스 로이터=연합뉴스)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의 목을 무릎으로 짓눌러 죽게 한 미국의 백인 전 경찰관 데릭 쇼빈의 재판 진행 상황을 지켜보기 위해 20일(현지시간) 미네소타주 헤너핀 카운티 청사 주변에 모인 군중 속의 한 사람이 배심원단의 유죄 평결 소식에 환호하고 있다. 이날 배심원단은 2급 살인, 2급 우발적 살인, 3급 살인 등으로 기소된 쇼빈의 모든 혐의에 대해 유죄를 평결했다.

지난해 미국을 ‘흑인 목숨은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시위로 들끓게 한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이 그를 죽음에 이르게 한 백인 경찰에 대한 사법 단죄로 일단락됐다. 미네소타주 헤너핀 카운티 배심원단은 사건 11개월여 만 인 20일(현지 시각) 이 사건 피고인인 전 경관 데릭 쇼빈(45)에게 만장일치로 유죄를 평결했다.

배심원단 12명은 10시간에 걸친 심리 끝에 쇼빈의 기소 죄목이었던 2급 살인(살해 의도가 있는 살인), 2급 우발적 살인, 3급 과실치사 등 세 가지 혐의 모두를 유죄로 판단했다. 미국에선 시민 배심원단이 유무죄 평결을 내리면 담당 판사가 구체적 형량을 결정한다. 형량에 대한 1심 선고는 8주 후에 이뤄질 예정이다. 전문가들은 쇼빈에게 약 40년 징역형이 선고될 것으로 보고 있다.

지폐 뿌리며 환호하는 시민들 - 20일(현지 시각) 미국 미네소타주 헤너핀 카운티 배심원단이 플로이드 사망 사건의 피고인인 전 경관 데릭 쇼빈(45)에게 만장일치로 유죄를 평결했다. 이 뉴스가 알려지면서 미니애폴리스‘조지 플로이드 광장’에서 한 부동산 업자가 1달러짜리 지폐를 공중에 뿌리자 주변에 있던 시민들이 환호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쇼빈은 지난해 5월 25일 미니애폴리스의 담배 가게에서 20달러(2만2000원)짜리 위조지폐를 사용한 혐의로 플로이드를 체포하고 그의 목을 무릎으로 9분 29초간 짓눌러 숨지게 했다. 쇼빈은 그간 재판에서 “플로이드의 사인(死因)은 약물 과용과 지병 때문이며, 난 범죄 용의자 대응 지침을 따랐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경찰·의사 등 증인 45명은 “쇼빈이 비무장 시민에 대해 체포 지침을 벗어나 과도한 무력을 행사했으며, 플로이드는 질식사했다”고 증언했다.

(미니애폴리스 로이터=연합뉴스) 조지 플로이드의 목을 무릎으로 짓눌려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미국의 전 경찰관 데릭 쇼빈이 20일(현지시간) 미네소타주 헤너핀 카운티의 법정에서 배심원단의 평결을 듣고 있다. 그는 유죄 평결이 나오자 손을 부르르 떨며 눈을 질끈 감기도 했으다. 이번 평결로 쇼빈에 대한 보석은 즉시 취소됐고, 그는 수갑을 찬 채 헤너핀 카운티 구치소에 재수감됐다.

이날 평결이 나오자마자 법원 주변에 모여있던 시민 수천명은 일제히 “정의가 실현됐다” “조지 플로이드”를 외치며 환호했다.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그래, 우린 중요하다고(we matter)”라며 주저앉아 소리 내 우는 흑인 여성들도 있었다. 법정에서 방청하던 플로이드의 형제들은 검사를 끌어안고 울면서 “이제 다시 숨 쉴 수 있다”고 했다. 플로이드가 목이 눌린 채 20여 차례 내뱉은 “숨을 쉴 수가 없어”란 말을 상기시키며 이제야 플로이드의 한을 풀 수 있게 됐다는 상징적 표현이었다.

(미니애폴리스 AP=연합뉴스) 20일(현지 시각) 미국 미네소타주 헤너핀 카운티 법원에서 열린 1심 재판에서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 살해 혐의로 기소된 전 경찰관 데릭 쇼빈에 대해 유죄 평결이 내려지자 플로이드의 동생 필로니스(가운데)가 기자회견을 하며 눈물을 훔치고 있다.

이날 평결을 앞두고 헤너핀 카운티 법원 주변은 콘크리트 장벽과 철조망으로 둘러싸였고, 주 방위군 3500여 명이 투입됐다. 무죄 평결이 나올 경우 흑인을 중심으로 한 폭력 시위가 미 전역에서 일어날 것이란 우려가 제기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죄 평결로 난동이나 폭력 사태는 발생하지 않았다. 뉴욕, LA, 시카고, 애틀랜타 등 주요 대도시 중심가에도 시민들이 몰려나와 중계를 실시간으로 지켜보며 인종차별을 규탄하는 평화 집회를 이어갔다.

수갑 채워진 前경관 - 20일(현지 시각) 미국 미네소타주 헤너핀 카운티 법정에서 지난해 5월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의 목을 무릎으로 눌러 숨지게 한 전직 경찰 데릭 쇼빈(왼쪽)에 대해 배심원단의 유죄 평결이 나온 직후 교도관이 쇼빈에게 수갑을 채우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뉴욕타임스(NYT)는 “플로이드 사망부터 이날 평결에 이르는 지난 11개월의 ‘드라마’는 1960년대 이후 이어진 흑인 민권 운동사에 정점을 찍은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라고 했다. 모든 흑인 남성을 잠재적 범죄자로 보는 경찰의 관행적인 과잉 진압 사례는 수십년 이어졌지만, 플로이드 사건의 경우 충격적인 현장 동영상이 퍼지면서 뿌리 깊은 인종차별에 대한 분노를 건드렸다. 이는 미국을 넘어 전 세계에서 백인 중심의 역사 지우기 운동으로 확대됐다. 2020년 미 대선 핵심 슬로건이 인종차별이냐(민주당), 인종차별 규탄을 내세운 법질서 파괴냐(공화당)로 갈리기도 했다. 결국 바이든 정부 출범과 함께 ‘흑인을 차별하는 기존 사법제도의 틀을 완전히 바꿔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 이번 평결의 배경이라고 NYT는 분석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0일 데릭 쇼빈 평결 직후 백악관에서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왼쪽 뒤)과 함께 기자회견을 열어 "정의를 향한 큰 진전"이라고 말하고 있다. /AP 연합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쇼빈 평결 전후로 플로이드의 유족에게 두 차례 위로 전화를 하고, 공개적으로 중계를 시청하는 등 큰 관심을 표명했다. 그는 백악관에서 회견을 열어 “오늘 평결은 정의를 향한 큰 진전”이라면서, 플로이드 유족에게 대통령 전용기를 보내 백악관으로 초청하겠다고 했다.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은 “오늘 우리는 안도의 숨을 쉬었다. 하지만 여전히 고통이 끝난 건 아니다”라면서 인종차별 종식을 위한 제도 개혁에 나설 것이라고 했다.

첫 흑인 대통령인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도 “진정한 정의는 하나의 평결 이상이어야 한다”며 사법제도 개혁을 촉구했다.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은 “흑인 목숨은 영원히 소중하다”고 했으며,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플로이드의 죽음에 충격 받았는데, 오늘 평결을 환영한다”고 했다. 애플, GM, 페이스북 등 미 대기업 최고 경영자들도 일제히 환영 성명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