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인구 2000만명이 넘는 ‘빅4 주(州)’ 주지사들이 모두 큰 정치적 위기에 빠졌다. 인구 규모 순으로 1위 캘리포니아와 2위 텍사스, 3위 플로리다, 4위 뉴욕 주지사가 코로나 방역 정책 논란과 이에 따른 주민과의 극심한 갈등, 성추문 등에 휘말리면서다. 코로나 시대가 장기화하면서 내부 갈등이 심화되는 미국 사회를 보여준다는 평가다. 4주의 인구는 총 1억1000만명으로 미 전체 인구의 3분의 1을 차지, 이 주지사들의 위기는 미 정치 지형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칠 전망이다.
정치 전문 매체 폴리티코는 18일(현지시각) “미국에서 규모가 큰 주 두 곳(뉴욕⋅캘리포니아)의 민주당 소속 주지사 두 명이 3주 차이로 물러날 가능성이 있다”며 “내년 중간선거를 앞둔 여당이 사색이 됐다”고 전했다. 여직원 등 11명을 성추행한 앤드루 쿠오모(63) 뉴욕 주지사가 오는 24일 사임하는 데 이어 9월 14일엔 개빈 뉴섬(53) 캘리포니아 주지사가 주민소환 투표에서 실각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뉴섬 주지사가 주민소환을 당한 이유는 고강도 코로나 경제 봉쇄령을 가동하면서 본인은 방역 규제의 예외로 둔 ‘내로남불’ 논란 때문이다. 캘리포니아주의 상점과 교회, 학교가 모두 문을 닫았던 지난해 11월 뉴섬 주지사가 한 로비스트의 호화 생일파티에 마스크를 쓰지 않고 참석해 수십명과 어울리는 장면이 공개됐다. 공립학교는 등교를 막는데 뉴섬의 자녀들은 값비싼 사립학교에 다니고, 최근 델타 변이 확산으로 학교 내 마스크 착용 지침이 내려졌는데도 그의 자녀는 여름 캠프에 ‘노마스크’로 참석한 것도 도마에 올랐다.
캘리포니아주에선 지난 4월 주지사 소환투표에 필요한 주민 서명이 149만명을 넘겨 자동으로 투표에 들어가게 됐다. 당초 민주당은 캘리포니아에서 지난 100년간 주지사 소환투표가 2년에 한 번꼴로 있는 흔한 일인 데다, 이 주가 민주당 텃밭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봤다. 그런데 18일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현재 찬반 여론이 팽팽해 뉴섬이 실각할 가능성이 꽤 있다고 한다.
공화당이 집권한 플로리다와 텍사스에선 주지사가 코로나 방역을 지나치게 무시하다 역풍을 맞았다. 남부의 보수 성향 주에선 개인의 자유를 내세우는 경향이 큰데, 연방정부의 호소에도 백신을 맞지 않은 주민이 절반이 넘는 상태에서 델타 변이 확산의 진앙이 됐다. 특히 플로리다와 텍사스에선 최근 2주 새 코로나 사망자 수가 두 배 넘게 폭증, 시신 보관용 냉동차를 다른 주에서 지원받는 처지인데도 주지사들이 반(反)과학적 선동을 계속한다는 지적이다.
공화당 대선 주자이기도 한 론 디샌티스(43) 플로리다 주지사는 요즘 주민들로부터 ‘코로나 시대의 미친 왕’으로 불린다고 현지 매체 마이애미 헤럴드가 전했다. 디샌티스는 “엉덩이 가리듯 얼굴을 마스크로 가리자는 거냐”는 등 막말을 쏟아내며 산하 지자체나 주민들의 방역 강화 요구를 묵살하고, 거리 두기를 무시한 대규모 실내 행사를 열어 반발을 샀다.
그는 어린이 코로나 환자 급증에 놀란 교육청 관계자들이 “교직원과 학생의 마스크 착용과 백신 접종을 의무화할 수 있도록 허락해달라”고 요구하자, 이들을 해고하겠다고 협박했다. 분노한 교육청과 학부모들이 디샌티스를 직권남용으로 고소하자, 18일 디샌티스의 지지자들이 교사의 마스크를 찢고 폭행하는 일도 벌어졌다.
디샌티스처럼 마스크·백신 의무화 조치를 금지해온 그레그 애벗(63) 텍사스 주지사는 지난 17일 본인이 코로나에 확진돼 논란이 커지고 있다. 바로 전날 노마스크로 실내 정치 집회에 참석했다 확진 판정을 받았다. 그를 반대해온 민주당과 주민들 사이에선 “본인은 몰래 백신 다 맞고 최고급 치료까지 받으면서, 돈 없고 무지한 주민들에겐 백신도 마스크도 필요 없다고 하는 건 위선의 극치”라는 비판이 나온다고 CNN이 전했다. 애벗 주지사는 마스크를 강제할 수 없도록 한 조치에 반발한 주민들과 법정 다툼 중인데, 워싱턴포스트는 18일 “과학과의 전쟁에서 본인이 최대 피해자가 된 만큼, (애벗 주지사는) 주민들과의 소모적 전쟁을 중단해야 한다”고 했다.
쿠오모 뉴욕 주지사가 성추행으로 사임하게 되면서 그에 대한 탄핵 절차는 자동 중단됐다. 그러나 뉴욕 주의회는 “국정조사는 그대로 진행해 역사의 기록으로 남기겠다”고 밝혔다. 의회는 쿠오모의 성추행도 성추행이지만, 그가 지난해 코로나 방역 성과를 과대포장하기 위해 뉴욕 요양원에서 쏟아진 사망자 수를 1만5000명에서 8500명으로 축소 발표한 사실은 통치 도덕성 면에서 심각한 문제를 일으켰다고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