낸시 펠로시 미 연방하원 의장이 9일(현지 시각) 워싱턴DC 의사당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연방 의원들의 주식 거래를 금지하는 법안에 대한 질문에 답하고 있다. 1987년부터 35년간 캘리포니아주 하원 의원을 지낸 펠로시는 올해 11월 중간선거에 출마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1940년생인 그는 미국 역대 ‘최고령 하원 의장’이다./로이터 연합뉴스

9일(현지 시각) 미국 의회가 위치한 워싱턴 DC 캐피털 힐의 화제는 단연 낸시 펠로시(82) 하원 의장이었다. 그녀가 연방 의원들의 주식 거래를 금지하는 법안을 검토 중이란 소식이 다른 모든 사안을 압도했다. 2020년 코로나 대유행 초기에 코로나 관련 브리핑을 받은 양당 의원들이 보건·의료 관련 주식을 거래한 사실이 드러난 뒤, 현역 의원들의 주식 보유와 거래를 금지하는 법안은 여러 건 발의돼 있었다. 하지만 하원 다수당인 민주당을 이끄는 펠로시 의장이 사실상 반대하면서 몇 달간 입법에 진척이 없는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이날 주례 기자회견에 나선 펠로시 의장은 관련 질문에 “(주식 관련) 여러 의원이 제시한 방안들에 대한 검토를 하원 행정위원회에 맡겼다”고 답했다.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는 이미 입법 의지를 밝힌 적이 있어 펠로시 의장의 태도 변화는 입법 가능성을 크게 높여주는 것이었다. CNBC방송은 “펠로시가 반대를 그만두면서 의회가 의원들의 주식 거래를 금지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게 됐다”고 보도했다.

펠로시 의장의 태도 변화가 더 주목받는 것은 그의 남편 폴 펠로시가 수백억 달러의 주식을 거래하는 벤처캐피털 회사를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책임 있는 정치 센터’는 펠로시의 순자산을 약 1억600만달러(약 1268억원)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처럼 부유한 펠로시 의장은 작년 12월 주식 거래 금지 법안에 대해 “우리는 자유 시장경제다. 의원들도 거기 참여해야 한다”고 말했다가 당 안팎의 엄청난 비판을 받았다. 11월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의 다수당 지위를 지켜내야 하는 펠로시 의장이 ‘고육지책’으로 주식 거래 금지 입법을 검토하게 됐다는 해석이 유력하다.

1940년생으로 역대 ‘최고령 하원 의장‘인 펠로시 의장은 그간 당내 일각으로부터 은퇴 압박을 받아왔다. 그러나 펠로시 의장은 지난달 트위터에 올린 영상에서 “국민들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해야 할 일이 더 많이 있다”며 재선 도전 의지를 분명히 했다.

펠로시는 연방 하원 의원과 볼티모어 시장을 지낸 토머스 달레산드로 주니어의 딸로, 어려서부터 부친의 선거운동을 도우면서 자랐다. 결혼해서 1남 4녀를 낳고 기르느라 정치 입문은 다소 늦었지만, 정치 감각과 넓은 인맥을 바탕으로 캘리포니아에서 1987년부터 35년간 재선에 성공했다. 2002년부터 20년간 줄곧 민주당 하원 원내대표로 하원의장을 맡는 대기록도 세웠다. 너무 오랫동안 민주당의 정점에 있다 보니 당내의 세대 교체 요구도 거세다.

이런 펠로시가 11월 중간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하고 다수당 지위도 지켜낸다면 계속 하원의장직을 수행할 수도 있다. 그러나 바이든 대통령의 인기가 하락세여서 선거 승리가 불투명하다. 펠로시 의장이 주식 거래 금지 법안을 제대로 추진하지 않을 것이란 의구심도 여전하다.

펠로시 의장은 이날 주식 거래 금지 법안이 “전 정부적(government‑wide)이어야 한다”며 “연방대법원은 공개를 하지 않고 주식 거래도 보고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사법부를 포함한 주식 거래 금지 법안을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펠로시 의장은 “복잡하지만 의원들이 (방안을) 찾아낼 것”이라며 “그러면 우리는 합의된 안으로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일부러 합의가 어려운 방향을 제시, 보수 성향이 짙어진 연방대법원까지 압박하려 한다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