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28일(현지 시각) 미국 국방 예산을 전년 대비 4% 이상 증액하는 내용의 2023회계연도 예산안을 의회에 제출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코로나 극복 등의 명목으로 총 6조달러(약 7320조원)를 요청했던 바이든 행정부는 재정 적자 축소를 위해 예산을 5조8000억달러(약 7076조원)로 낮추면서도 외교안보 관련 예산은 대폭 인상하는 예산안을 작성한 것이다. 유럽과 인도·태평양 지역 국가에서도 군비 확장 분위기가 강해져 냉전 종식 후 30여 년 만에 다시 세계는 군비 경쟁 시대로 접어들게 됐다.
백악관이 이날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미 국방부는 의회에 전년 대비 4.1% 증가한 7730억달러(약 943조600억원)의 예산을 요청했다. 백악관은 이날 바이든의 안보 의지를 과시하기 위해 “(2년 전인) 2021회계연도 때 집행된 7037억달러(약 858조5100억원)보다 약 9.8% 인상된 것”이라고 밝혔는데, 뉴욕타임스는 이를 인용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같은 위협과 중국의 야망에 대한 우려 속에 바이든 대통령이 10% 인상된 7730억달러의 국방 예산을 제안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국방부 예산에 미국 에너지부의 핵무기 관련 예산 등을 합친 국가 안보 예산 요청액도 8133억달러(약 992조2200억원)로 역대 최대 규모이며 전년의 7822억달러 대비 약 4% 늘어났다.
지난해 바이든 행정부는 2022회계연도 예산안에서 교육·공공의료 분야 등의 예산을 16% 늘리기 위해 국가안보 예산에 대해서는 1.6%의 인상만 요청했다. 당시 물가 인상을 고려하면 사실상 국방부 예산을 삭감하는 처사라는 비판이 쏟아져 미 의회가 나서 국가안보 예산을 5.6% 인상했다. 이를 의식한 듯 캐슬린 힉스 미 국방부 부장관은 “올해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해 요구액보다 8.1% 인상된 예산을 요청했다”며 “우크라이나인들이 우리 마음속에서 가장 중요하다. 부당한 침략과 잔인한 전술에서 드러나듯 러시아는 세계 질서에 급박한 위협을 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의 취임 초기 교육·복지·인프라 등에 치중하려던 미국이 다시 국가안보 예산 증가를 통한 군비 확충에 나선 것은 중국, 러시아, 북한, 이란 등의 위협 수위가 동시에 높아지고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미국 국방부는 지난 28일 2023회계연도 예산안과 함께 국방 전략 기밀 보고서를 의회에 제출한 사실도 공개했다. 이 보고서에서 미 국방부는 첫째 우선순위로 러시아의 위협이 아니라 “점증하는 중국의 다영역 위협에 맞서 미 본토를 방어하는 것”을 꼽았다. 2순위는 “미국·동맹·파트너에 대한 전략적 공격 억지”인데, 이는 핵 공격 억지를 뜻한다. 3순위는 “인도·태평양에서는 중국, 유럽에서는 러시아의 도전을 우선 억지하고 필요한 경우 무력 충돌에서 승리할 준비를 하는 것”이라고 미 국방부는 밝혔다.
유럽도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유럽연합(EU) 27국 정상은 지난 11일 프랑스 파리 외곽 베르사유궁에서 열린 EU 비공식 정상회의 마지막 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계기로 EU 차원의 국방비 지출을 대폭 늘리기로 합의했다. 오랜 기간 나토(NATO)의 숙원 사업이었던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방비 2%’ 달성이 우선적 목표로 프랑스, 독일, 덴마크, 스웨덴, 이탈리아 등이 이와 관련한 구체적 계획을 발표했다.
유럽 국가들은 무기 구매에도 열을 올리고 있다. 이미 글로벌 방산 업계의 ‘큰손’으로 기대를 모으는 독일은 미국 록히드마틴과 F-35 스텔스 전투기 35대를 사들이는 계약을 마무리했다. 폴란드는 정찰과 공격이 모두 가능한 미국산 첨단 무인기(드론) MQ-9 리퍼 구매에 뛰어들었다. 스웨덴, 덴마크 등도 전투기와 드론 체계, 대전차 미사일 등 구매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군사비 지출도 급증하고 있다. 이미 중국이 지난 5일 전국인민대표회의에서 올해 국방비로 지난해보다 7.1% 늘린 1조4504억위안을 쓰기로 했다. 일본은 지난해 태평양 전쟁 이후 처음으로 국방비가 전체 GDP의 1%를 넘어 1.24%에 이른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호주는 지난 2021년 42억달러였던 국방비를 올해 44억6000억달러로 6% 이상 늘릴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