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등 여섯 야당이 지난 9일 발의한 내란특검법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수사 범위에 윤석열 대통령의 ‘외환(外患)’ 혐의를 추가하면서 “해외 분쟁 지역 파병, 대북 확성기 가동, 대북 전단 살포 확대, 무인기 평양 침투, 북한의 오물 풍선 원점 타격 시도 등을 통해 전쟁 또는 무력 충돌을 유도하려 한 혐의”가 있다고 적시한 것이다. 먼저 ‘해외 분쟁 지역 파병’은 우크라이나를 지칭한 것으로 보이지만, 파병한 사실이 없는데다 인도적 지원까지 문제 삼는 것처럼 여겨져 논란이 일었다. 더 큰 문제는 북한 도발을 억제하기 위한 군의 정상적 활동을 외환죄로 몰아간 것이다. 야당의 이같은 발상에 대해 미국 조야(朝野)에서도 강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11일 본지가 접촉한 한반도 전문가들은 “대북 확성기 가동을 문제 삼아 외환죄로 몰아가는 건, 계엄령만큼이나 민주주의에 위협이 되는 발상”이라며 “이게 외환죄라면 국제사회의 웃음거리가 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앞서 한일 관계 개선과 한·미·일 협력을 탄핵 사유로 거론한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두고도 파장이 적지 않았는데, 민주당의 외교·안보 노선이 계속해서 미 주류의 인식과 충돌하는 모습이다.
야당이 외환 혐의에 포함한 대북 확성기 가동과 전단 살포는 북한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렇게 유입된 정보가 북한 주민들의 민심 이반으로 이어져 김씨 정권의 존립을 위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미 국무부는 오랜 기간 대북 정보 유입의 중요성을 강조해왔고, 1983년 설립돼 의회가 예산을 지원하는 미 민주주의진흥재단(NED) 등을 통해 전단을 뿌리는 대북 인권 단체들을 지원해왔다. 2004년 제정된 미국의 북한인권법도 ‘북한의 내부 변화를 촉발하기 위한 외부 세계 정보 유입 확산’을 명시하고 있다. 그레그 스커를러토이우 북한인권위원회(HRNK) 위원장은 “김정은은 이미 K팝·K드라마로 대표되는 한국과의 문화 전쟁에서 패배하고 있다”며 “이런 가운데 북한에 들어가는 정보의 양을 줄이는 건 심각한 전략적 실수가 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대북 정보 유입이 감소하면 북한 주민만 고립돼 김정은의 권력이 강화되고, 북한이 남한과 국제 평화에 미치는 위협은 더 커질 것”이라고 했다.
평양 엘리트 출신 탈북민인 이현승 글로벌평화재단 연구원은 “북한은 정보가 차단된 고립 국가이다 보니 (전단 등으로 받아 보는) 정보의 가치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10배 정도는 더 크다”며 “정보가 유입돼 김씨 정권에 대한 주민들의 인식이 바뀌어야 북한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 수 있다”고 했다. 이 연구원은 “북한은 우리를 적(敵)으로 규정해 온갖 위협적인 수사(修辭)를 쏟아내고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 군의 대북 확성기 송출, 북한 주민 인식을 바꾸자는 전단 유입이 외환죄라고 한다면 국제적인 웃음거리가 될 것”이라고 했다. 이어 “과거 민주당 정부의 햇볕정책에 쓰인 돈이 김씨 정권을 지탱하는 데 악용됐고 결국은 핵·미사일 개발로 이어졌다”며 “(야당 논리대로라면) 이것도 외환죄라 할 수 있지 않냐”라고 했다.
빅터 차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 석좌는 “윤 대통령에 대한 특검법은 계엄령 선포에 관한 법적 문제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며 “(특검법은) 외교나 남북 관계에 관한 정책을 다루는 곳이 아니다. 이런 정책은 정당의 지지를 받든 아니든, 법 위반이나 탄핵 사유가 될 수는 없다”고 했다. 이어 “정당의 목적을 위해 법 체계를 게리맨더링(gerrymandering·특정 정당이나 특정인에 유리하게 선거구를 정하는 행위)’하는 것은 윤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만큼이나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에 위협이 되는 발상”이라고 했다. 특검법이 법을 지나치게 자의적으로 적용하고 있다는 의미다.
야당은 지난달 국회에 보고한 1차 탄핵소추안에서도 가치 외교와 한일 관계 개선, 한·미·일 협력 같은 외교·안보 정책을 탄핵 사유로 꼽았다. 이에 대해 존 햄리 CSIS 소장은 본지에 “윤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는 분명히 잘못된 결정이었지만 캠프 데이비드 합의 같은, 미국의 강력한 권고·지원 속에서 추진된 외교 정책 성과를 탄핵 사유로 삼는 것은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고 했다.
대북 전단을 둘러싼 현재 야당과 미 조야 간 인식 차는 뿌리가 깊다. 문재인 정부와 국회 다수당이던 민주당이 2020년 말 남북 관계 개선을 위해 강행 처리한 ‘대북전단금지법’(남북관계발전법 개정안)이 대표적이다. 이 법은 김여정이 전단을 문제 삼은 직후 입법이 추진돼 국내에선 ‘김여정 하명법’이란 비판까지 나왔다. 당시 미 의회의 초당적 인권기구 등이 “표현의 자유를 위축할 수 있다”고 문제 삼으며 청문회를 개최했고, 지한파(知韓派) 의원 모임인 ‘코리아 코커스’ 의원들이 문 대통령에게 법안 서명 전 수정을 촉구하며 한미 간 외교 문제로까지 비화했다.
영국 의회에서도 비판 목소리가 나왔다. 영국의 ‘북한 문제에 관한 초당파 의원 모임(APPG NK)’은 “북한 인권을 증진할 플랫폼이 사라지게 된다”며 대북전단금지법 재고와 영국 외무부의 입장 표명을 촉구했다. 이낙연 당시 민주당 대표는 이 법이 본회의에서 통과된 직후 주먹을 쥔 왼쪽 손을 불끈 들어 올리며 이를 자축했지만, 국제사회에선 한국의 평판이 적지 않게 훼손됐다. 헌법재판소는 2023년 9월 이 법에 대해 위헌(違憲) 결정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