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오전 2시3분(미 동부시간) 높이 98m에 달하는 거대한 뉴 글렌(New Glenn) 로켓이 미 플로리다 주 케이프 커내버럴 우주군 기지의 발사대를 이륙했다. 뉴 글렌은 13분 뒤에 지구 궤도에 성공적으로 진입했다.
뉴 글렌은 아마존 창업자인 제프 베이조스가 2000년에 세운 로켓기업 블루 오리진(Blue Origin)이 만든 로켓이다. 미국 우주비행사로선 처음으로 1962년 위성 프렌드십(Friendship) 7호를 타고 고도 160~261㎞의 궤도를 돈 존 글렌에서 이름을 땄다. 블루 오리진이 만든 로켓으로는 처음으로 궤도에 도달했다.
그러나 블루 오리진의 궤도 진입은 늦어도 너무 늦었다. 베이조스가 블루 오리진을 설립한 지 25년, 뉴글렌 로켓 개발을 발표한 지 13년만이었다. 블루 오리진은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X보다도 2년 먼저 설립됐다.
뉴 글렌은 2020년 말 발사될 예정이었지만, 계속 연기됐다. 그리고 그 25년 동안, 머스크의 스페이스X는 미국과 전세계 로켓 시장을 장악했다. 스페이스X는 작년에만 138회 로켓을 발사했다. 미국 전체 로켓 발사 145회의 95%, 전세계 로켓 발사 회수의 절반을 차지했다. 2.7일에 한 번꼴로 로켓을 쐈다.
이날 뉴 글렌의 발사 성공으로, 블루 오리진은 미 항공우주업계 일부에서 제기해 온 기술력에 대한 의혹을 씻을 수 있게 됐다. 뉴 글렌은 작년 10월 미 항공우주국(NASA)와 과학 측정 장비를 화성 대기권으로 보내는 로켓으로 선정됐지만, 발사 능력이 검증되지 않아 결국 취소되는 수모를 겪었다. 이번에 뉴글렌은 궤도에서 인공위성의 위치와 고도를 이동시키는 예인 위성인 자사의 ‘블루 링’ 시제품(試製品)을 올려 보냈다.
블루 오리진은 이날 뉴 글렌의 1단 로켓(부스터) 회수에는 실패했다. 1단 로켓은 분리된 뒤에, 대서양에 떠 있는 바지선 ‘재클린’(베이조스의 어머니 이름이다)에 착륙할 예정이었다. 블루 오리진은 실패를 예상했다는 듯이, 발사 전부터 “부스터 회수는 우리의 1차 목표가 아니다”고 강조했다. 아예 부스터 이름도 ‘그러니까 내가 (회수 될) 가능성이 있다는 거지?”였다.
하지만, 그간 시험 발사도 전혀 없다가 단 한 번의 ‘실전(實戰)’ 발사로 바로 궤도 진입에 성공했다는 것은 놀랄 만한 일이기는 했다.
베이조스의 로켓 ‘앙숙’인 머스크는 “제프 베이조스, 첫번째 시도로 궤도에 도달한 것을 축하한다”고 소셜미디어 X에 썼고, 베이조스는 “땡큐!”라고 화답했다. 뉴 글렌은 스페이스X의 주력 로켓인 팰컨 9보다 궤도에 올릴 수 있는 중량이 2배 이상이고 탑재 공간의 지름도 2배이어서, 팰컨 9의 강력한 경쟁 로켓이 될 수 있다.
◇머스크, “궤도까지는 발기 불능” 베이조스 조롱
우주산업에 관한 한, 베이조스는 머스크의 조롱거리였다. 2018년 11월 블루 오리진의 소형 로켓인 뉴 셰퍼드(New Shephard)는 우주의 시작이라고 불리는 카르만 선인 고도 100㎞에 올라 상업 우주여행의 시작을 알렸다. 베이조스가 “이제 우주에 있다”고 트윗했다.
그러자 머스크는 곧 “궤도는 아니지. 궤도랑 준(準)궤도를 혼동하지 말아야지”라고 응수했다. 즉 고도 100㎞에서 수 분가량 무중력 상태를 체험하는 여행 상품과 고도 200㎞ 이상의 궤도에 도달하는 로켓은 차원이 다르다는 것을 강조한 말이었다. 그러면서, “그런 준궤도 여행이라면, 로켓은 (뉴 셰퍼드보다) 더 작아도 돼”라고 조롱했다.
또 블루 오리진의 로켓이 아직 궤도에 도달하지 못하는 것을 빗대어, 2021년 4월에는 “궤도까지는 발기 불능이지(can’t get it up to orbit)”이라고 성적(性的) 뉘앙스를 담아 놀렸다.
머스크는 2023년 12월엔 자신의 전기(傳記) 작가인 월터 아이잭슨에게 “베이조스는 뜨거운 욕조와 요트에서 빨리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자신은 1주일에 120시간 일하면서 종종 사무실 소파에서 자는데, 베이조스는 우주에 대한 열정이 덜하다는 뜻이었다.
머스크의 말에 일부 일리는 있지만, 월스트리트저널과 뉴욕타임스, 우주항공 매체들은 두 억만장자의 우주 진출과 로켓 개발에서 큰 차이가 난 것은 블루 오리진과 스페이스X의 기업 문화 차이로 본다.
◇스페이스X: 속도와 모험 정신
“로켓 비즈니스는 억만장자가 가장 빠르게 돈을 잃는 길”이라는 농담이 돌던 시절에, 머스크는 전재산을 2002년 스페이스X와 다음 해 테슬라에 올인했다. 온라인 결제시스템 페이팔 공동 창업자로서 그의 재산은 1억 달러 정도였다.
반면에, 베이조스는 2000년 블루 오리진 창업 당시 이미 온라인 상거래업체인 아마존 주식 열기로 47억 달러의 억만장자였다. 베이조스는 좀 더 느긋한 접근 방식을 취했다.
머스크는 베이조스처럼 무한대의 돈도 없었고, 시간도 없었다. 크게 베팅하고 공격적이고 민첩해야 했다. 결국 2008년까지 첫 로켓 팰컨 1을 세 차례 발사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머스크는 나중에 “내 인생 최악의 해”였다고 회고했다. 재정적으로 파산 직전이었고, 로켓은 계속 실패했다. 이혼도 했다.
남은 부품으로 마지막 한 번 더 팰컨 1을 조립해 쏴 올렸고 성공했다. 국방부와 NASA의 전유물이던 로켓 시장에서, 액체연료로 쏴 궤도에 올린 최초의 민간 기업이 됐다. 그리고 고도 400㎞에 떠 있는 국제우주정거장(ISS)으로 우주인과 화물을 보낼 팰컨 9 로켓을 개발하겠다고 NASA를 설득해 16억 달러의 개발비를 받았다. 머스크는 로켓의 발사 비용을 줄이기 위해, 팰컨 9의 1단 추진체는 회수해서 재사용하는 방안을 연구했다.
사실 ‘로켓의 회수ㆍ재사용’ 아이디어는 스페이스X가 처음 생각한 것도 아니었다. 그동안 미국 정부와 공동으로 로켓으로 개발해 온 기존의 ‘공룡’ 우주항공기업들은 최첨단 로켓 제작에 필요한 모든 인재와 기술, 경험을 다 갖고 있었다.
그러나 이미 큰 이익을 내고 있었고, 정부ㆍNASA 외에 민간의 로켓 수요가 크지 않을 것으로 봤기에 재정ㆍ기술적으로 큰 도전이 될 재사용 로켓을 개발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2020년에도 보잉과 록히드 마틴의 합작 로켓 기업인 ULA 대표는 “한번 쓰고 버리는 로켓보다 회수해서 재사용하는 로켓이 실제로 발사 비용 절감의 효과가 있는지는 알 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스페이스X는 달리 생각했고, 결국 우주로 가는 비즈니스를 영원히 바꿨다.
그러나 팰컨 9의 시험 발사에서, 스페이스X는 로켓이 주저앉거나 공중에서 폭발하는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다. 팰컨 9은 2012년 10월 첫 발사에서부터 2015년 12월 발사 성공할 때까지 3년 동안 20차례 시험 발사를 했다.
달과 화성 탐사에 쓰일 초대형 로켓인 높이 122m짜리 스타십은 2023년 4월 첫 번째 발사에서 4분만에 거대한 화염 덩어리로 변했다. 머스크는 그때도 “발사를 통해, 우리는 모르는 것(the unknowns)을 해결한다. 발사 전에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 ‘발사→실패→수정→발사’는 당연한 개발 과정이다. 스타십은 지금까지 7차례 시험발사를 했다. 올해는 모두 25차례 발사가 계획돼 있다.
◇블루 오리진의 상징은 ‘한걸음씩’ 민물 거북
블루 오리진의 기업문화는 정반대다. 전통적인 우주항공기업에 가깝다. 모토(motto)는 “한 발씩, 맹렬하게(Gradatim Ferociter)”다. 열정을 갖고 일하되, 점진적이어야 한다. 기업이라기보다는, 연구소 같다는 얘기도 들었다. 기업을 상징하는 동물도 아예 등껍데기가 두껍고 큰 민물거북(tortoise)이다. 처음부터 완벽주의다.
그래서 머스크의 팰컨 9이 20회 시험 발사를 하는 동안, 베이조스의 뉴 글렌은 개발 과정에서 단 한 번도 시험 발사를 하지 않았다. 계속 개량하면서 조금씩 테스트를 했을 뿐이다.
그리고도 단 한 번의 발사로, 뉴 글렌이 이륙부터 1단 로켓의 회수까지 매끄럽게 진행되는 것을 목표로 했다. 블루 오리진의 공식 입장과는 달리, 베이조스가 “궤도에 탑재물을 안착시킨 데 이어, 1단 로켓을 회수할 수 있었으면 금상첨화였을텐데”라며 아쉬워했던 것도 이런 맥락에서였다.
◇베이조스 “훨씬 빨리 움직여야 한다”
그러나 2021년 7월 베이조스는 아마존의 CEO 직에서 물러나, 블루 오리진에 전념했다. 한 팟캐스트 인터뷰에서 블루 오리진에 에너지와 신속성을 불어넣기 위해 물러났다면서, “우리는 훨씬 빠르게 움직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블루 오리진의 CEO였던 밥 스미스는 2023년 8월 월스트리트저널 인터뷰에서도 “모두 뉴 글렌이 가장 빠른 시일내에서 발사되기를 원하지만, 우리는 그렇다고 올바로 일하는 것을 희생할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새 CEO, 베이조스에게 “우주가 취미인가, 사업인가” 물어
이런 ‘뼛속까지 완벽주의’ 체질에 변화를 주려고, 베이조스가 그해 12월 블루 오리진의 새 CEO로 들인 사람이 데이비드 림프다. 그는 원래 아마존에서 전자책 킨들과 AI 스피커 에코 사업을 총괄했던 사람이다.
림프는 작년 2월 에이비에이션 위크 인터뷰에서, 베이조스의 CEO 제안에 “우주가 당신의 취미인가, 아니면 사업이냐. 취미라면 내가 어떻게 이끌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고 소개했다. 베이조스는 자신은 로켓을 모른다는 림프에게 “로켓공학자는 차고 넘친다. 우리에게 필요한 사람은 일이 되게 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림프 역시 “우리는 그동안 많은 일에서 완벽을 추구했던 것 같다. 더 빨리 움직여야 한다. 지금 인력이 일을 잘못했다는 것이 아니라, 다르게 일해야 한다는 얘기다. 세계를 주도하는 기업이 되려면, 빨리 결정을 내려야 한다. 종종 올바른 이성과 좋은 의도를 갖고 분석에 매달려 위험 요소를 거의 제로로 만들려고 한다. 그러나 좀더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안전하고 신속하게 움직일 수 있다”고 말했다.
뉴 글렌은 올해 6~8번 발사를 해서, 스페이스X의 대항마로 전세계 로켓 시장에 뛰어들 계획이다. 뉴 글렌은 저궤도(고도 200~2000㎞)까지 약 50t의 탑재물을 올릴 수 있는 반면에, 팰컨 9은 22.8t, 양쪽에 2개 부스터를 장착한 팰컨 9 헤비는 63t을 올릴 수 있다. 블루 오리진은 올해 안에 뉴 글렌에 무인 화물 달착륙선인 블루문 마크1을 탑재해 달에 안착시킨다는 계획도 갖고 있다.
그러나 스페이스X의 주력 로켓 팰컨 9이 지금까지 지난 15년 간 439차례 발사(99.32% 성공률)된 것에 비하면, 이제 시작이다. 또 도널드 트럼프는 과거 집권 중에, 베이조스가 소유한 워싱턴포스트가 자신을 비난하자 “사익(私益)을 위해 매체를 사용한다”고 비난했고, 베이조스의 국방부 계약을 막은 적도 있다.
베이조스가 로켓 라이벌인 일론 머스크와 트럼프 간의 강고한 동맹을 뚫고, 미국 정부와 NASA의 우주개발 사업을 수주하는 것도 숙제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