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인 집회가 열리는 워싱턴 DC의 '캐피털 원 아레나' 경기장 앞에 지지자들이 대기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춥고 힘들지만 괜찮아요. 트럼프가 이 나라의 모든 걸 원상 복구하길 기원합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취임식을 하루 앞둔 19일. 워싱턴 DC 도심에 있는 ‘캐피털 원 아레나’ 경기장 앞은 전국에서 모인 지지자들로 이른 새벽부터 인산인해를 이뤘다. 영하의 추위에 한때 눈비까지 내렸지만 지지자들은 궂은 날씨에도 오후 3시부터 열리는 매가(MAGA·트럼프의 구호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축하 행사에 입장하기 위해 한나절 넘게 기다렸다.

19일 트럼프 지지자들이 행사장 밖에서 눈을 맞으며 입장을 기다리는 모습. /AFP 연합뉴스

원래 야외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취임식 장소가 한파로 실내로 바뀌면서, 이 행사가 아니면 트럼프를 직접 보기가 어려워진 만큼 입장 열기는 더욱 뜨거웠다. 취임식이 열리는 연방 의회 의사당 중앙 홀(로톤다)의 수용 인원은 약 600명에 불과하다. 취임식 당일엔 백악관과 의사당 사이 도로 대부분이 통제되고, 지하철역 6~7곳이 전면 또는 부분 폐쇄된다. 취임식 티켓 약 22만장이 배부됐지만 장소 변경으로 수용 인원이 크게 줄면서 20만명 이상이 참석할 수 없게 된 상황이다.

모자와 목도리, 우의로 무장한 이들은 커피로 추위를 쫓고 피자 조각으로 허기를 달랬다. “유에스에이(USA)” 구호를 외치거나 트럼프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이자 간판 유세곡인 디스코 그룹 빌리지피플의 ‘Y.M.C.A.’를 부르는 이들도 있었다. 한 지지자는 “지난 4년이 너무 힘들었다”며 “트럼프를 보기 위해 눈보라를 맞을 각오를 하고 나왔다”고 말했다.

19일 미국 워싱턴 DC ‘캐피털 원 아레나’에서 열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의 취임 축하 행사에서 당선인의 장남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 J D 밴스 부통령 당선인, 세르히오 고르 백악관 인사국장 내정자(사진 왼쪽부터)가 빌리지 피플의 노래 ‘Y.M.C.A.’에 맞춰 춤을 추고 있다. /AFP 연합뉴스

경기장 안에 들어갈 수 있는 인원은 2만명. 나머지는 경기장 밖 대형 화면이나 스마트폰으로 생중계되는 행사를 지켜봐야 했다. 트럼프가 1시간에 걸친 연설 말미에 무대에 오른 빌리지피플 노래에 맞춰 특유의 뻣뻣한 댄스를 선보이자 많은 이들이 따라서 춤을 췄다. 워싱턴포스트(WP)는 “행사가 시작된 뒤에도 지지자 수천 명이 입장을 희망하며 경기장 밖에서 30분 넘게 기다렸다”며 “트럼프는 곧 대통령으로 취임할 예정이지만 여전히 선거운동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고 했다.

워싱턴 DC 풍경은 트럼프가 처음으로 대통령에 취임하던 8년 전과는 완전히 달랐다. 당시엔 ‘대통령 트럼프’의 등장에 반신반의하는 사람이 많았고 반(反)트럼프 집회 규모도 상당했다. 워싱턴 DC는 지난해 대선에서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득표율이 90%를 넘긴 민주당 강세 지역이지만, 주말 내내 호텔·식당·지하철 등 공공 장소마다 빨간색 ‘매가’ 모자를 쓴 트럼프 지지자들이 넘쳐났다. 19일 공개된 CBS 여론조사에서도 앞으로 4년에 대해 낙관적이라는 의견이 60%를 기록해 바이든 정부(58%)나 트럼프 1기(56%) 때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워싱턴 DC ‘유니언 펍’에서 트럼프의 대통령 취임식에 맞춰 내놓은 특별 메뉴 ‘47 플래터’. /인스타그램

술집과 음식점은 ‘취임 특수’를 누리기 위해 분주한 모습이다. 의회 관계자들의 ‘만남의 광장’으로 통하는 ‘유니언 펍’은 트럼프가 미국의 제47대 대통령으로 취임한다는 데 착안해 ‘47 플래터’란 특별 메뉴를 내놨다. 가격 47달러(약 6만8000원)에 미니 햄버거 6개와 감자튀김, 맥주가 나온다. 술을 마시며 스포츠 경기를 관람할 수 있는 술집 ‘더티 워터’는 45.47달러에 주류를 무제한 제공한다. 제45대 대통령을 지낸 트럼프가 곧 제47대 대통령으로 취임한다는 점을 강조해 가격을 매겼다. 이 술집은 지난 대선 때 개표 방송을 단체 시청하는 공화당원들에게 가게를 통째 빌려줘 “워싱턴 DC에서 트럼프를 공개 지지한 유일한 바(bar)”로 불린 곳이다. 해리스에게 투표한 이들이 대부분인 워싱턴 DC 주민 상당수는 소셜미디어에서 “잠시 도시를 떠나 있겠다”며 여행 인증 사진을 줄지어 올리고 있다.

한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날 트럼프 굿즈(기념 상품) 업체들이 막대한 수익을 벌어들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저조한 인기로 시작했던 집권 1기보다 종류와 디자인이 다양해졌다. 최근에는 황금빛 바탕에 성조기와 트럼프 이름 머리글자 ‘T’가 새겨진 운동화, 트럼프 이름이 새겨진 성경책, ‘MAGA’가 새겨진 기타와 티셔츠, 양말 등이 판매되고 있다. 지난해 6월 조 바이든 대통령과의 첫 TV 토론 때 입었던 양복 조각이 담긴 카드가 사은품으로 등장하기도 했다.

이는 트럼프에 대한 미국인의 인식 변화를 보여준다는 분석이 나온다. 전에는 트럼프를 지지하면서도 밝히기를 꺼리는 ‘샤이 트럼프’ 현상이 강했다. 그러나 이제는 숨길 필요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WSJ는 “수백만 미국인을 매료시킨 정치 운동을 시작한 지 약 10년이 흐른 지금 트럼프는 항상 존재하는 문화적 영향력이 됐다”고 분석했다.

☞매가(MAGA)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라는 뜻으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이 2016년 대선 캠페인에서 사용해 유명해진 정치 슬로건이다. 과거 로널드 레이건·빌 클린턴 전 대통령도 선거 운동에서 사용한 적이 있지만 트럼프가 적극적으로 활용해 ‘미국 우선주의’를 상징하는 말로 자리 잡았다. 최근엔 트럼프의 열성 지지자들을 가리키는 뜻으로도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