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래드 셔먼(70) 미국 민주당 하원의원이 이르면 이달 중 한반도 종전선언, 미국과 북한 간 연락사무소 설치, 국무부의 평화협정 로드맵 마련 등이 포함된 이른바 ‘한반도 평화 법안(Peace on the Korean Peninsula Act)’을 발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 법은 과거에도 셔먼이 총대를 메 두 차례 의회에 상정됐지만, 공화당을 비롯한 정치권 주류의 동의를 얻지 못해 번번이 폐기됐다. ‘한반도 평화’란 이름만 들어서는 그럴듯해 보이지만 북한 김정은과의 직접 협상을 시사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의 대북 정책과 맞물려 한국에는 재앙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셔먼은 최근 자신의 주요 후원자인 미국민주참여포럼(KAPAC) 관계자들과 만나 법안 재발의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2월 말쯤 의회 의사당 앞에서 셔먼과 공동 발의에 참여한 의원들 일부가 참여하는 기자회견도 가질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KAPAC은 문재인 전 대통령의 경희대 법대 후배인 재미 사업가 최광철씨가 2017년 설립했다. 이 단체는 미국을 방문하는 더불어민주당 고위 인사들과 미 의회, 특히 셔먼 간 가교(架橋) 역할을 해왔다. 지난해 11월 민주당 김영배·조정식, 조국혁신당 김준형 의원 등이 의회에서 셔먼을 만났다. 같은 해 5월 KAPAC이 워싱턴 DC에서 주최한 행사에선 문 전 대통령, 이재명 민주당 대표, 조국 전 조국혁신당 대표 등 야권의 유력 인사들이 나란히 축사를 했다. 캘리포니아가 지역구인 셔먼은 오랜 기간 최씨를 비롯한 일부 회원들의 후원을 받았다. 셔먼은 최씨를 “나의 친구(my friend)”라 부른다.
셔먼이 지난 117·118대 의회 때 발의한 법안 내용을 보면 ▲6·25전쟁의 공식적이고 최종적인 종식을 위한 남·북·미 외교 추구 ▲영구적인 평화 협정 달성을 위한 국무부 차원의 로드맵 마련 ▲미·북 연락사무소 설치 ▲미국인의 북한 여행 금지 조치에 재검토 등이 포함돼 있다. 남·북 간 휴전(休戰) 상태를 끝내고 다음 장으로 넘어가자는 종전선언이 핵심인데, 그러면서도 반대 급부로 북한에 비핵화 등은 요구하지 않았다. 북한이 도발로 그간 여러 합의를 뒤집은 것이나 북한 내 인권 상황 등에 대한 언급도 없다. 이 때문에 117·118대 의회에선 미·북 냉각기 속 공화당 지지를 받지 못해 회기 만료로 자동 폐기됐다. 119대 의회도 공화당이 하원 다수당이라 전망은 밝지 않은 편이다. 지난 회기에선 발의에 참여한 의원 53명 중 공화당 소속은 3명에 불과했다.
다만 취임 사흘 만에 두 차례나 김정은과의 대화 가능성을 시사했고, 미·북 관계 개선을 2기 행정부의 레거시 중 하나로 삼으려는 트럼프의 대북관과 맞물려 한국이 패싱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법안을 공동 발의했던 한국계 앤디 김이 민주당 하원의원에서 상원의원으로 체급이 올라간 것도 변수다. 셔먼은 지난 2023년 3월 “이 법은 미군 철수를 위한 것이 아니다”라고 했지만, 종전선언이 이뤄지면 북한이 한미연합훈련 축소 또는 주한미군 감축·철수를 주장하는 빌미가 될 수 있다. 이로 인한 남남(南南)갈등도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때문에 하원 외교위 동아태소위원장인 영 김 공화당 의원 등은 “평화에 관심 없는 독재자와 종전선언의 평화를 협상할 수 없다” “완전하고 검증가능하고 비가역적인 비핵화(CVID) 없는 종전선언은 안 된다”며 법안을 반대해왔다. 한국에선 민주당 의원 166명이 2023년 3월 이 법안에 대한 지지 의사를 표명했다.
◇ 추진 단체, 트럼프에 훈련 중단 요구… “北보복 유발해”
워싱턴의 한 소식통은 “법안 통과를 주장해 온 일부 단체나 인사 면면도 우려할 만한 부분이 있다”고 했다. 여성 단체인 ‘우먼크로스 DMZ’는 2015년 비무장지대(DMZ) 걷기 행사로 국내에서 ‘종북(從北)’ 논란이 상당했다. 당시 여성 운동가 30여 명이 평양에서 북한 여성들과 ‘평화 토론회’를 벌였고, 김일성 생가(生家)와 경상유치원 같은 체제 선전시설을 방문한 뒤 경의선 육로를 통해 남쪽으로 내려왔다. 우먼크로스DMZ 등은 최근 트럼프에 제재 면제 확대, 미·북 외교 접촉 강화 등을 요구하는 서한을 발송했다. 이들은 “연구에 따르면 대규모 실탄 군사 훈련이 북한의 보복적 대응을 유발할 가능성이 크다”며 합동 군사 훈련 중단도 요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