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연방정부 및 군대에서의 DEI(다양성·형평성·포용성) 정책 프로그램 폐기를 지시한 가운데, 뉴욕주(州) 웨스트포인트에 있는 육군사관학교에서 성별·인종·민족을 중심으로 하는 생도들의 과외 사교 클럽 12개가 잠정 폐쇄된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는 한국계들이 각자의 경험을 공유하며 생도로서의 정체성·소속감을 강화하고 한국계 커뮤니티 내에서의 네트워크를 강화하는 ‘한국계 미국인 세미나(KARS)’ 클럽도 포함된 것으로 나타났다. KARS는 지난 2008년 뉴욕한국문화원 후원을 받아 미 육사 역사상 최초로 한국 문화를 알리는 전통 공연 행사를 주최했던 곳이다.
워싱턴포스트(WP)는 5일 “트럼프 정부가 모든 수준에서 DEI 프로그램을 폐기하는 것을 준수하기 위한 조치”라며 이같이 밝혔다. 육사 부교장인 채드 포스터가 4일 서명한 각서를 보면 여성, 라틴 문화 같은 테마를 중심으로 하는 일부 클럽을 즉시 해체하고, 온라인상의 모든 공개 콘텐츠를 비공개 또는 삭제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또 육사 내 100개가 넘는 클럽·스포츠팀을 관리하는 학생활동국에 “모든 과외 및 사교 클럽 활동이 대통령의 행정명령과 국방부·육군부 지침에 부합하는지 확인하라”고 지시했다. 육사의 2028년 졸업반은 여자 생도 280명, 소수인종 445명을 포함하고 있다. 국적별로 보면 미국 국적자 1230명 외에 한국인 1명을 포함한 국제학생 16명으로 구성됐는데, WP는 “육사가 오랫동안 생도의 다양성을 확보하려 노력했다”고 했다.
트럼프는 취임 후 정부 내 모든 DEI 프로그램 중단을 지시했고 국방부 내 인종·성별에 따른 모든 특혜를 없애는 내용의 ‘미국의 전투력 회복’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폭스뉴스 진행자 출신인 피트 헤그세스 신임 국방장관은 군 내부의 DEI 문제에 대해 누구보다 문제의식이 큰 인사다. 지난달 29일 “DEI 정책이 국방부의 가치와 양립할 수 없다”며 이를 전면 폐기하기 위한 태스크포스(TF)를 만들었다. 육사가 성별·인종·민족을 고리로 뭉친 생도 클럽을 손보려는 것은 이런 기조에 따르기 위한 것이다. 헤그세스는 ‘흑인 역사의 달’이나 ‘프라이드 먼스’ 같은 흑인·성소수자 권익 향상 행사 등도 중단할 것을 지시했다.
육사 내 클럽 활동은 생도들이 새로운 기술 또는 관심사를 개발하는 동시에 리더십 경험을 쌓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웹페이지가 폐쇄된 한국계 미국인 클럽의 경우 한국계 생도들이 육사 생활의 희로애락을 나누고, 먼저 사회에 진출한 선배들과도 돈독한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는 일종의 장이었다. 이번 조치로 폐쇄된 ‘코빈 포럼’은 1976년 만들어졌는데 ‘포트 워싱턴 전투’에서 남편과 함께 싸워 군인 연금을 받은 최초의 여성인 마가렛 코빈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이 클럽 출신인 1981년 졸업생 윌리엄 벅은 WP에 “젊은 여성 생도들이 남자 생도들로부터 인정받는 것이 얼마나 어려웠는지를 기억한다”며 “과거 교수와 생도단이 전적으로 남성으로 구성됐던 시기에 여성들이 리더십을 키우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