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을 방문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측과 가까운 주요 싱크탱크 관계자들을 다수 만난 국내 장관급 인사 3명은 “미 인사들을 만난 결과, 현재 트럼프의 관심사에서 한국이 벗어나 있는 것은 오히려 나쁘지 않은 상황”이라며 “미 인사들은 한미일 협력 관계에서 한국의 추후 정치 상황에 따라 한국이 중국·러시아 쪽으로 이탈할까봐 오히려 걱정하는 분위기”라고 했다. 트럼프가 한국을 ‘패싱’하는 게 아니라, 한국의 조기 대선 상황을 가정했을 경우 차기 한국 정권 성향에 따라 오히려 한미일 협력 관계에서 한국이 먼저 멀어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덕구 니어재단 이사장(전 산업부 장관), 윤병세 전 외교부 장관, 김성한 전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 등 3명은 6일 미 워싱턴DC에서 한국 특파원들과 간담회를 갖고 “현재 한국이 권력 공백 상태이지만 미국의 미움을 받아 타깃이 되고 있는 상황은 전혀 아니다”며 “트럼프가 먼저 언급한 한국과의 조선 분야 협력을 포함해 인도·태평양 정책에서도 미국은 절대 한국을 패싱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주요 미국 싱크탱크 관계자, 정책 전문가들의 트럼프 2기 상황 진단 결과를 종합하면 트럼프가 현재 국내 제조업 부활을 꾀하고 있는 점, 중국과의 패권 경쟁에 나서고 있는 점 등을 고려할 때 미국의 동맹국 중 유력한 협력 파트너는 한국이 될 수밖에 없는 객관적 측면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 이사장은 “현재 미국은 러·중 사이에서 왔다갔다 하지 않는 확고한 우방국을 영국, 호주, 일본, 한국 정도로 보는 것 같다”며 “트럼프는 국내 제조업을 살리려고 하는데 이중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대량 생산을 할 수 있는 제조업 파트너가 될 수 있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고 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에너지 대란으로 경기 침체에 빠진 독일과 대량 생산에서 특수 생산 쪽으로 무게추가 기운 일본을 제외하고 전세계에서 중국과 한국이 여전히 제조업 기반 경쟁력이 있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때문에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의 입장에서 한국이 파트너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정 이사장은 분석했다.
정 이사장은 “국내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을 트럼프가 밀어붙일까 걱정하는 분위기지만, 미 전문가들은 현재 미국 제품이 거의 무관세라 더 이상 미측에서도 FTA 관련 요구할 만한 사항이 없다고 보고 있었다”며 “과도한 공포와 두려움의 분위기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윤 전 장관은 “트럼프 취임식 당일 해외 국가 중에서는 유일하게 ‘쿼드(Quad·미국, 일본, 호주, 인도 4개국이 참여하는 비공식 안보 협의체)’ 회원국 외교장관들이 참석했다. 오늘은 일본 이시바 총리가 방미를 하고 다음 주에는 인도 모디 총리가 트럼프와 정상회담을 한다”며 “결국 트럼프가 기존 중국에 대응하는 인·태 전략을 중시한다는 것을 알 수 있고, 한국은 여기에서 미국을 도와줄 수 있는 핵심 우방국”이라고 했다. 윤 전 장관은 “현재 트럼프의 ‘레이다망’에 한국이 없는 게 나쁜 게 아니다”며 “트럼프 입에서 한국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민감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없다”고 했다.
김 전 실장은 “현재 트럼프의 레이다 스크린에 중남미를 포함한 서방이 집중돼 있지만 여기에 한국이 잡히는 것은 시간 문제이긴 할 것”이라며 “그럼에도 조선업 같은 분야에서 미국의 총체적 부실 상황을 도와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동맹국을 한국으로 보고 있는 분위기”라고 했다. 김 전 실장은 “국내에서 윤석열 대통령, 바이든 전 미국 대통령, 기시다 전 일본 총리 사이에서 확립된 한미일 협력 관계에 대한 우려가 나오고 있지만 미측 인사들은 ‘미일 입장은 걱정하지 말라’고 한다”며 “오히려 한국의 조기 대선을 가정했을 경우 한미일 협력에 부정적인 차기 정권이 들어설 가능성에 대해 미국 입장에서 걱정이 된다고 반문을 하더라”고 했다.
김 전 실장은 트럼프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북미 협상 가능성과 관련 “2019년 하노이 북미 회담 결렬을 통해 북한이 핵포기 의사가 없다는 사실을 트럼프가 알고 있는 상황에서 트럼프가 다시 한번 비핵화 협상을 관철할 의지가 있는지, 현 상황 관리에 나서려고 할지 현재로서는 확실하게 결론을 내리기 힘든 상황”이라고 했다.
윤 전 장관은 “루비오 국무장관, 왈츠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등 트럼프의 외교안보팀은 그나마 워싱턴에서도 안정감이 있다고 보는 편”이라며 “최근 백악관에서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가 여전히 목표라고 밝힌 만큼 그 입장이 현재로서는 맞을 것”이라고 했다. 윤 전 장관은 “트럼프 1기 때는 오바마 정권 인사들이 일부 남아 있어서 한반도를 포함한 국제 외교 정책에 대한 검토가 빨라 트럼프 취임 두달여만에 북한 정책이 나왔다”며 “트럼프 2기는 ‘딥 스테이트(트럼프가 선출 권력에 저항하려 한다고 주장하는 전문 관료 그룹)’를 모두 제거하고 인력 교체가 많은 상황이라 북한 정책 수립도 1기에 비해 늦게 나올 것으로 본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