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와 직접 종전 협상에 나서자 미국과 우크라이나 정상 간 공개 설전이 벌어질 정도로 두 나라 관계가 얼어붙고 있다. 특히 자국이 배제되는 상황에 반발하는 젤렌스키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트럼프가 허위 정보와 왜곡을 일삼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트럼프는 19일 자신의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올린 글에서 젤렌스키에 대해 “지지율이 아주 낮고 선거도 거부하고 있는 독재자이면서 그저 그런 성공을 거둔 코미디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빨리 움직이지 않으면 나라를 잃게 될 것”이라며 미·러 주도 종전 협상에 순응할 것을 압박했다. 앞서 트럼프는 전날 기자회견에서도 “우크라이나 지도자(젤렌스키)의 지지율은 4%에 머물고, 나라는 선거를 치르지 않은 계엄 상태”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젤렌스키가 수도 키이우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트럼프를 향해 “허위 정보의 거품 속에 살고 있다”고 날을 세우자 다시 젤렌스키에 대한 비난 수위를 높인 것이다.
그러나 트럼프 발언에는 거짓말과 왜곡이 적지 않다고 CNN 등 영미권 외신들이 지적했다. 우선 트럼프는 젤렌스키의 지지율이 4%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면서도 구체적 근거는 제시하지 않았다. 반면 우크라이나 국제사회학연구소가 지난 4~9일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젤렌스키의 지지율은 57%로 직전 조사(작년 12월)보다 5%포인트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트럼프가 젤렌스키를 ‘선거를 치르지 않은 독재자’라고 공격하는 것도 우크라이나 정치 상황을 비틀어 악용한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젤렌스키는 지난해 5월 임기가 종료됐으나 전시 상황에 따른 계엄령을 기반으로 임기를 연장해왔고, 국제사회도 이를 합법적 상황으로 인정하고 있다. 이 때문에 트럼프 주장은 젤렌스키 정부를 대화 상대로 인정하지 않고 향후 친러 정권 수립을 꾀하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속내와 부합하는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미국과 우크라이나의 관계 경색은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으로 어느 정도 예견된 상황이었다는 평가다. 트럼프는 지난해 대통령 선거 유세 때부터 “취임하면 24시간 안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내겠다”고 공언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불법 행위로 규정한 전임 조 바이든 행정부는 푸틴 정권 인사들에게 각종 제재를 가했고, 우크라이나를 군사·경제적으로 꾸준히 지원했다.
그러나 2기 임기를 시작한 트럼프가 러시아와의 담판으로 전쟁을 끝내려는 행보를 본격화하고, 젤렌스키가 반발하면서 이번 전쟁은 중대 고비를 맞고 있다. 지난 3년 동안 서방을 이끌며 우크라이나의 항전(抗戰)을 지원한 미국이 트럼프 취임 후 오히려 러시아와 손잡고 우크라이나를 압박하는 구도로 급변하는 모양새다. 트럼프는 소셜미디어에서 “젤렌스키는 시작했어도 안 되고, 이길 수도 없는 전쟁에 미국이 3500억달러(약 503조 2650억원)를 쓰게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이는 미 의회가 승인한 우크라이나 지원 금액인 1750억 달러(252조원)와는 차이가 있다.
젤렌스키에 대한 트럼프의 적대감이 노골화되고 있는 것은 종전 협상을 타결하는 데 걸림돌로 인식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코노미스트는 “트럼프 팀은 젤렌스키가 사라지기를 원한다”며 “현재까지는 우크라이나에 최악의 시나리오로 흘러가고 있다”고 했다.
이런 상황에 대해 트럼프가 소속된 공화당 내에서도 비판이 나오고 있다고 의회 전문지 더 힐이 보도했다. 톰 틸리스 상원의원은 “젤렌스키와 푸틴에 도덕적 동등성을 부여하는 것에 우려한다”고 했고, 수전 콜린스 상원의원은 “우리는 이 전쟁의 선동자가 도발을 감행한 푸틴이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했다. 트럼프 1기 때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맡았지만 이후 트럼프 비판자가 된 존 볼턴 전 보좌관은 X에 “역대 미국 대통령의 발언 중 가장 수치스러운 것 중 하나”라 했고, 티머시 스나이더 예일대 교수는 “트럼프가 우크라이나에서 선거를 보고 싶다면 러시아 침략자들을 몰아내면 된다”고 말했다.
젤렌스키는 20일 키이우에서 키스 켈로그 특사를 만날 예정이다. 젤렌스키 입장에선 켈로그와의 회동이 종전에 관한 트럼프의 입장을 일방적으로 통보받는 자리가 될 수 있다. 그는 면담에 앞서 “미국과 유럽이 함께하면 평화는 더욱 견고해질 수 있다”며 “미래는 푸틴에게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도 다음 주 워싱턴 DC를 방문해 트럼프와 정상 회담을 가질 예정이다. 이번 회동은 종전 협상에서 유럽 안보의 핵심인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국가들이 배제됐다는 불만이 팽배한 상황에서 이뤄지는 것이다. 텔레그래프는 “스타머가 전후 우크라이나 안보를 위해 최대 3만명의 유럽 평화유지군을 파병하는 방안을 제시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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