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이 21일 백악관에서 J D 밴스 미국 부통령이 주재하는 가운데 공식 취임 선서를 했다. 이날 선서식에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도 자리했다. 정권 인수팀의 공동위원장을 지낸 러트닉은 투자은행 ‘캔츠 피츠제럴드’의 성공한 최고경영자(CEO) 출신이다. 트럼프 자신이 직접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관세·무역 전쟁’의 선봉장 역할을 하게 될 인물이기도하다. 트럼프가 대(對)중국 10% 관세, 철강·알루미늄 25% 관세를 이미 부과했고 4월 초 상호 관세까지 예고한 가운데 러트닉의 한마디에 각국이 요동칠 수 있다. 러트닉은 상원 청문회 당시 “한국·일본이 우리의 선량함을 이용했다”고 했다.
이같은 인식은 러트닉과 호흡을 맞추게 될 제이미슨 그리어 무역대표부(USTR) 대표도 마찬가지다. 그리어는 지난 6일 의회 청문회가 있었고, 상원의 인준을 앞두고 있다. 통상·국제무역담당 변호사 출신인 그는 지난해 5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수년간 무역 적자가 지속된다는 건 불공정 거래 관행, 과잉 생산, 보조금, 비(非)시장적 행위, 환율 조작 등 여러 구조적 이유가 있을 수 있다는 뜻” “모든 무역 협정은 미국인의 필요에 맞게 재단(tailored)돼야 한다”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한 문제의식을 드러냈다. 그리어는 트럼프 1기 때 한미FTA 재개정을 이끌어 낸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전 USTR 대표의 비서실장을 지내 ‘수제자(protégé)’라 불리는 인물이다.
◇ 첫 통상 고위 당국자 방문… 누구 만났는지 한 명도 안 밝혀
이런 가운데 트럼프 정부 출범 후 우리 통상 고위 당국자로는 처음 미국을 방문한 박종원 산업부 통상담당 차관보가 17~20일 미국 방문 일정을 마무리했다. 러트닉이 박 차관보가 미국에 온 다음날인 18일에서야 상원 인준을 받아 이 기간 상무부 주요 직위는 공석(公席)이나 대행 체제인 상황이었고, 일부 직위는 조 바이든 정부 때 임명된 이들이 지키고 있었다. 연방 정부 부처에서 ‘대행(acting)’은 외국 고위급을 대상으로 하는 회담·협상에서 공무 수행 능력이 제한되고, 정식 임명 때까지는 로키(low-key·낮은 자세)를 유지할 것을 요구받는다. 상무장관을 포함한 17개 고위직 중 과반인 10개 자리가 대행으로 돼 있다.
박 차관보는 17일 워싱턴 DC 덜레스 국제공항에서 특파원들과 만나 “(미측과의) 협의가 예정돼 있으니 다 끝난 다음에 정리해서 언급하겠다”고 말했다. 산업부는 박 차관보의 4박 5일 일정이 마무리된 21일 발표한 보도자료에서 “백악관, 상무부, USTR 양국 등 정부 관계자를 면담해 상호 관세 조치의 예외를 요청했다”고 주장하면서도 박 차관보가 누구와 만났는지는 한 명도 실명(實名)을 적시하지 않았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한 싱크탱크 연구원 등을 만난 게 확인됐을 뿐이다. 박 차관보의 출장 기간 의회도 2월 휴회(休會)중이었다. 산업부는 지난해 워싱턴 DC의 로펌인 ‘아놀드 & 포터’를 1년 36만 달러(약 5억 1700만원, 10회 분납 조건)에 고용해 대미(對美) 아웃리치에 조력을 받았다. 2020년부터 매년 이 회사를 쓰고 있는데 1년 단위로 계약을 갱신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2~3월 정인교 통상교섭본부장, 안덕근 산업부 장관 등도 미국 방문을 계획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안 장관은 트럼프 정부 출범 전인 지난달 6~10일에도 미국을 방문한 적이 있다.
이웃 국가인 일본은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총리가 이달 7일 아시아 국가 중에서는 처음 트럼프와 정상회담을 가졌다. 총리가 직접 1조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알래스카산(産) 액화천연가스(LNG) 수입 확대를 약속하면서 미·일의 통상 당국자들이 톱다운(top down·하향식) 방식으로 일할 수 있는 여건이 갖춰진 상태다. 알래스카산 LNG의 경우 한국 역시 마이크 던리비 알래스카 주지사, 알래스카주가 지역구인 댄 설리번 상원의원 등이 우리 인사들과 만날때마다 세일즈에 열을 올리고 있다. ‘LNG 교역을 통해 미국이 대(對)한국 무역수지 적자를 줄일 수 있고, 한국은 에너지 안보를 강화할 수 있을 것’이란 논리다. 공화당 주지사 협의회 참석을 위해 워싱턴 DC를 찾은 던리비가 최근 조현동 대사와 만나기도 했다. 윤석열 정부 초반 이미 한 차례 이를 검토한 적이 있지만 ‘미국산 LNG는 카타르, 호주 등에 비해 가격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내부 평가가 있었다고 한다. 트럼프가 주도하는 관세 전쟁의 파고 속 이번에는 한국의 ‘에너지 리더십’이 어떤 결정을 내릴지에도 미 정가가 주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