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수지 와일스 백악관 비서실장의 딸이 근무하고 있는 회사를 로비스트로 고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지난 24일 백악관에서 한국 기업인으로는 가장 먼저 210억 달러(약 31조원) 대미(對美) 투자 계획을 밝힌 가운데, 삼성전자의 향후 행보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국내 대기업 중 현대차에 버금가거나 이를 상회하는 규모의 투자 발표를 할 수 있는 곳은 삼성전자밖에 없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폐기를 공언한 ‘반도체지원법(CHIPs Act)’ 상의 보조금 수령 문제도 걸려있다.
25일 의회 상·하원에 제출된 기록을 보면 삼성전자는 로비 회사 ‘콘티넨털 스트래티지’를 로비스트로 선임했다. 트럼프 1기 때 미주기구(OAS·미국 주도의 중남미 통합기구) 대사를 지낸 카를로스 트루히요가 설립한 이 회사는 플로리다주(州) 탤러해시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트럼프 재집권과 더불어 매출이 폭증하며 승승장구하고 있는데, 최근에는 워싱턴 DC 사무소를 확대 개편하며 사세 확장을 도모하고 있다. 특히 트럼프 백악관의 실세라 할 수 있는 와일스의 딸인 케이티가 파트너로 근무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와일스의 비서실장 지명 소식이 전해지자 사측은 케이티를 승진시키며 “트럼프의 압도적 승리 기세를 바탕으로 우리가 성장할 수 있는 새로운 길을 열어줄 것”이라고 했다. 한때 트럼프의 러닝메이트로도 거론됐던 바이런 도널즈 공화당 하원의원이 “콘티넨털이 그녀를 영입한 건 행운”이라며 지원 사격을 했다.
콘티넨털에선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의 상원의원 시절 비서실장을 지낸 알베르토 마르티네즈, 플로리다 주의원 출신으로 트럼프 보좌 경력이 있는 트루히요, 뎁 피셔 공화당 상원의원의 보좌관 출신인 데니얼 고메즈 등이 삼성을 대리해 로비스트로 활동하게 된다. 트루히요는 이번 정부 들어 국무부 차관보로도 거론됐던 인물이다. 사측은 “통신, 소비자 가전, 반도체 및 공급망·무역 이슈에 관한 아웃리치를 담당할 것”이라고 했다. 텍사스주 테일러 등에 반도체 생산 시설을 짓고 있는 삼성전자는 지난해 바이든 정부로부터 전체 투자금의 약 12.8%에 해당하는 47억4500만 달러(약 6조9500억원)의 보조금을 지급받기로 했다. 하지만 트럼프가 이 근거가 되는 반도체법 폐지를 여러 차례 시사해 보조금을 받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진 상황이다. 공교롭게도 삼성의 보조금 지원 과정을 대리했던 워싱턴 DC의 로펌 ‘커빙턴 앤 벌링’ 역시 트럼프가 “사법 절차의 무기화에 관여했다”며 벼르고 있고, 이 로펌을 겨냥한 행정명령에도 서명했다.
이런 가운데 삼성전자는 어드바이저리 펌(advisory firm·자문 컨설팅 회사)인 ‘웨스트이그젝 어드바이저스’와 계약을 종료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7년 토니 블링컨 전 국무장관, 미셸 플러노이 전 국방부 차관 등 주로 민주당 인사들이 주축이 돼 설립한 회사로 규제·정책 분석과 전략적 자문 서비스 등을 제공해왔다. 민주당 성향이라는 게 업계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이 때문에 정권 교체에 맞춰 삼성이 트럼프 이너서클에 줄을 대기 위해 대관 전열을 가다듬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2022년 삼성전자에 합류해 북미 지역 대외 협력 담당으로 있는 마크 리퍼트 부사장도 오바마 정부 때 주한 미국대사를 지낸 민주당 인사로 분류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