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일 각 나라별로 상호 관세를 부과하며 구체적인 산식을 공개하지 않았다. “각 나라가 미국에 부과하는 관세의 절반만큼만 상호 관세를 부과한다”고 했는데, 이날 트럼프가 근거로 든 한국의 대미(對美) 관세율 50%는 사실이 아니다. 이런 가운데 X(옛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를 중심으로 백악관의 ‘관세율’ 계산이 지난해 기준 미국의 무역 적자를 미국의 수입액(외국 입장에선 수출액)으로 나눈 값이라는 얘기가 확산하고 있다. 이 산식에 따르면 무역 적자가 작아질수록 ‘관세율’도 거기에 비례해 낮아지는 구조다.
이날 트럼프가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손에 든 차트를 보면 한국의 대미 관세율은 50%라 돼 있다. 백악관은 이에 대해 각국이 미국에 부과하는 관세, 보조금·환율 등 비(非)관세 장벽을 두루 고려해 산출한 숫자라 밝히면서도 구체적인 산식이나 근거는 공개하지 않았다. 그런데 상호관세 발표 직후 경제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트럼프가 제시한 관세가 단순히 미국의 무역 적자를 총수입액으로 나눈 값 같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지난해 미 인구조사국(USCB) 자료를 보면 미국의 대(對)한국 무역 적자액은 약 655억 달러, 대한 수입액은 1315억 달러였는데 이를 토대로 하면 49.8%(약 50%)가 나온다.
이는 차트 상위에 있던 다른 나라를 기준으로 계산해봐도 들어맞는다. 미국은 지난해 유럽연합(EU)에서 약 2350억 달러 무역 적자를 봤고, 총 수입액은 6050억 달러였다. 이렇게 하면 38.8%인데 트럼프가 든 차트에 EU의 대미 관세율은 39%로 기재돼 있었다. 중국에서는 4380억 달러를 수입했고 2950억 달러의 무역 적자를 봤는데 이 경우 트럼프식 관세율은 67.3%(차트에는 67%로 기재)가 된다. 일본에서는 1480억 달러를 수입해 680억 달러의 적자를 봤고, 베트남에서는 1230억 달러를 수입해 1360억 달러의 적자를 기록했다. 트럼프가 제시한 두 나라의 대미 관세율은 각각 46%와 90%였다. 필리핀(34%), 이스라엘(33%), 인도(52%) 등을 봐도 이 산식이 들어맞는다.
애틀랜틱과 뉴요커 등에 기고하는 제임스 수로위키는 이날 X에서 “그들은 (주장대로) 실제로 관세율과 비관세 장벽을 계산하지 않았다”며 “이 가짜 관세율이 어디서 나오는지 알아냈다. 모든 국가에 대해 무역 적자를 가져와서 그 나라가 우리(미국)에게 수출한 금액으로 나누었다”고 했다. 그는 한국을 콕 집어 “우리와 자유무역협정(FTA)을 맺고 있어 50% 관세를 부과하지 않고 있다”고 했는데, 산업부에 따르면 한국은 2007년 한미FTA 체결 후 대부분 상품을 무관세로 교역하고 있다. 미국산 수입품에 대한 평균 관세율이 지난해 기준 0.79% 수준이지만 이날 트럼프 정부 고위 당국자는 “우리의 최혜국대우(MFN) 관세는 3.5%인데 한국은 13%를 부과하고 있다”고 사실이 아닌 주장을 했다.
논란이 계속되자 캐럴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결국 소셜미디어에 USTR의 상호 관세 산출 공식을 공유했다. 이 공식엔 가격 탄력성 등 다른 수치가 몇 개 포함됐긴 하지만 크게 보면 미국의 무역 적자를 상대국으로부터의 수입액을 나누는 방식으로 상호 관세를 계산했다고 돼 있다.
정부 당국자는 이날 브리핑에서 “경제자문위원회(CEA)가 국제 무역·경제 문헌과 정책 관행에서 매우 잘 확립된 방법론을 이용해 숫자를 계산했다”며 “그들이 사용한 모델은 우리가 특정 국가와 가진 무역 적자는 모든 불공적 무역 관행, 부정 행위의 합산이라는 개념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공개된 실제 산출 공식엔 무역 적자와 수입액만 있을 뿐 ‘비관세 장벽’ 등은 포함되지 않았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트럼프 정부가 상호 관세 계산에 쓴) 이런 방식은 세계무역기구(WTO)의 평균 관세 계산법과는 전혀 맞지 않는 개념이고 ‘관세’의 근거가 될 수 있을지조차 불투명하다”고 말했다.
한편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은 폭스뉴스에 출연해 “모든 국가에 보내는 충고는 보복에 나서지 말라는 것”이라며 “순순히 받아들인 뒤 어떻게 상황이 전개되는지 지켜보라. 만약 보복 조치를 한다면 상황은 더 악화하겠지만, 보복 조치가 없다면 더 올라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