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일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미국으로 들어오는 모든 수입품에 기본 10% 관세를 부과하고, 약 60여 교역국엔 이보다 높은 관세를 매기는 ‘상호 관세’를 부과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자유무역협정(FTA) 체결국인 한국에 대해선 25% 관세를 부과하기로 했다.
트럼프는 1977년 제정된 국제비상경제권법(IEEPA)를 동원해 “각국이 미국에 부과하는 관세의 절반만큼을 부과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트럼프가 공개한 차트를 보면 한국은 미국에 50%에 상당하는 관세를 부과하고 있기 때문에 미국은 이에 대한 반대 급부로 25%를 부과하는 것으로 돼 있다. 한국은 미국과 FTA를 체결했기 때문에 사실상 양국간 관세가 0%에 가깝다. 하지만 트럼프는 교역 상대국의 관세뿐 아니라 검역, 규제, 통화정책 등 비관세 장벽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상호 관세를 정하겠다고 밝혀 왔고, 이날 발표한 상호 관세도 이에 따라 산정됐다고 미 정부는 밝혔다. 그동안 미국이 한국의 ‘비관세 장벽’으로 지목한 것은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 30개월령 이상 소고기에 대한 수입 제한 등이었다.
트럼프는 이날 한국이 자동차의 81%를 자국에서 생산하고, 미국산 쌀에 대해 물량에 따라 최대 500% 이상의 관세를 부과하는 것을 언급하며 “어떤 경우는 적국보다 우방이 더 나쁘게 우리를 대우했다”고 했다. 한국은 세계무역기구(WTO) 협상에 따라 수입 쌀에 대한 의무 수입 물량(약 41만t)엔 5%, 이를 초과하는 쌀에 대해 고율 관세(513%)를 부과하게 되어 있는데 이 또한 불공정 무역이라고 지목한 것이다.
일각에선 각국의 비관세 장벽을 모두 조사해 상호 관세를 산정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지적이 일어왔는데, 이날 공개된 상호관세의 계산법은 실제로 비관세 장벽과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었다. 미 백악관 대변인이 공개한 미 무역대표부의 산식에 따르면 이날 발표된 각국 상호 관세율은 지난해 교역 대상국에 대한 미국의 무역 적자를 해당국이 미국이 수출한 금액으로 나눈 비율에 따랐다. 예를 들어 미국은 한국에 대해 지난해 660억달러 무역 적자를 봤는데, 이를 수입액 1315억달러로 나누면 50%가 된다. 한국에 대한 상호 관세 25%는 이를 반으로 나눈 것이다.
트럼프가 발언 도중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에게 인계받은 차트를 보면 중국은 34%, 유럽연합(EU)은 20%, 일본은 24%, 인도는 26%, 대만은 32%, 베트남은 46% 등이었다. 발효 시점은 10% 기본 관세가 5일, 국가별 관세가 9일부터다. 예를 들어 한국 수출품은 5일부터 10% 관세가 부과되고, 9일부터는 관세율이 25%로 오른다. 중국은 기존의 평균 관세 약 20%에 이미 트럼프가 더한 20%의 추가 관세가 부과되고 있는데, 이날 상호 관세 발표로 미국의 중국산 수입품엔 평균 약 74%에 달하는 관세가 매겨지게 됐다. 미국 소비자 입장에선 중국산 수입품 가격이 그만큼 높아지는 셈이기 때문에 낮은 가격을 경쟁력으로 삼았던 중국산 상품의 수입이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한편 무역확장법 232조를 적용해 이미 추가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한 자동차, 철강, 알루미늄, 구리, 목재 등은 적용받지 않는다. 25% 관세가 적용되는 자동차 및 자동차 부품에 대한 관세는 사전 예고대로 3일 0시1분부터 부과되기 시작했다. 트럼프는 “이번 관세는 말 그대로 상호주의적인 것이고 우리는 오히려 관대했다”며 “관세가 0%가 되기를 원하면 미국에서 생산하면 된다. 이미 전례 없는 수준으로 외국 기업들이 미국에 투자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현대차가 최근 210억 달러(약 31조원) 대미(對美) 투자를 발표한 것도 언급했다.
트럼프는 “지난 수십 년 동안 미국은 무역 장벽을 낮췄지만, 다른 나라들은 우리에 대해 관세를 부과하고 비관세 장벽을 세웠다”며 “끊임없는 경제 전쟁에 직면한 미국은 더 이상 일방적인 항복을 할 수 없고, 다른 나라와의 무역 적자를 감당할 여유도 없다. 이 나라의 노동자들을 우선적으로 보호할 것”이라고 했다. 이날 현장에는 J D 밴스 부통령,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 존 튠 상원 원내대표 등을 비롯해 트럼프 정부 내각 주요 인사들이 모두 참석했다. 민주당 지지 성향이 강한 미 최대 운수 노조 ‘팀스터스’ 관계자들도 여럿 보였다. 또 전미자동차노조(UAW) 소속 디트로이트의 자동차 노동자 등이 무대에 올라와 “트럼프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로널드 레이건이 내 생애 최고 대통령일 줄 알았다”며 “관세 부과에 따른 결과가 앞으로 어떻게 펼쳐질지 매우 흥분된다”고 했다.
트럼프는 “중국과 다른 무역 파트너들에 악의는 없다”면서도 “그들은 미국을 약탈하고 강탈했다. 미국은 수십 년 동안 지속된 불공평한 대우를 중단해야 한다”고 했다. 또 중국을 예로 들며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과 중국에 대해 큰 존경심을 갖고 있다”면서도 “그들은 우리를 엄청나게 이용하고 있다”고 했다. 러트닉 상무장관은 소셜미디어 X에 “오늘부터 세계는 우리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했다”며 “노동자들은 마침내 공정한 대우를 받게 될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는 이날 약 40분 연설을 마친 뒤 백악관 청중이 기립 박수를 하는 가운데 관련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트럼프의 상호 관세 부과에 대해 유럽연합(EU)을 비롯해 중국, 캐나다 등 주요 국가들이 보복 조치 방침을 밝히며 그동안 미국이 주도해온 자유무역 기반의 국제 통상 질서가 급격하게 변화할 전망이다. 한국의 지난해 대미 수출액은 전년보다 10.4% 증가한 1278억 달러였고, 미국 무역 수지는 557억 달러 흑자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한국은 미국의 무역 적자국 8위에 올라 있다. 한국이 국가적 리더십 공백 상태인 상황에서 글로벌 관세 전쟁이 격화되면서 수출 중심의 경제 체제인 한국의 대응에 비상이 걸리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