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홍역으로 3명이 잇따라 사망하면서 ‘홍역 비상’이 걸렸다. 홍역은 고열·기침·발진 증상에 폐렴·뇌염 같은 합병증을 일으키는 전염병으로, 예방 접종을 제때 하면 막을 수 있다. 그런데 갑자기 홍역 확진자가 늘고 있는 것은, 코로나를 거치며 확산된 ‘백신 무용론’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그러자 백신 불신론자로 잘 알려진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 보건복지부 장관이 돌연 입장을 바꿔 백신 접종을 권고하고 나섰다.
6일 AFP통신에 따르면, 최근 텍사스주에서 홍역으로 8세 어린이가 사망했다. 지난 2월엔 같은 주에서 6세 아동이 사망했다. 텍사스에서만 499건의 감염 사례가 확인됐다. 뉴멕시코에서도 한 성인이 홍역 양성을 보이다 사망했다.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따르면 미국 22주에서 총 642건의 확진 사례가 보고됐다. 사망한 3명 모두 홍역 백신 미접종자로 확인됐다. 홍역으로 미국에서 사망자가 발생한 것은 10년 만의 일이다.
미국 홍역 발병 환자의 97%는 백신 미접종자로 알려졌다. 코로나 때 확산된 백신 불신론으로 접종 시기를 놓친 아이들이 많았기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다. 미 언론들은 ‘백신 회의론’을 전파한 케네디 책임론까지 거론하고 있다. 케네디 때문에 홍역 백신 접종률이 지역 내 바이러스 확산을 막기 위해 필요한 95% 수준으로 회복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비판이 커지자 케네디는 자신의 소셜미디어 X에 “홍역 확산을 예방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MMR(홍역·볼거리·풍진) 백신”이라며 접종을 권고했다. “3월 초부터 CDC 팀을 텍사스에 배치해 홍역 대응 역량을 강화하고, MMR 백신과 기타 의약품을 공급하고 있다”고도 했다. 케네디는 이날 텍사스 케인즈 카운티에서 열린 8세 소녀의 장례식에도 직접 참석했다.
백신 불신론자인 케네디는 앞서 백신이 자폐증을 유발한다는 의학적으로 입증되지 않은 주장을 폈고, 당국에 이에 대한 검토를 지시하는 등 백신에 대한 불안감 조장에 앞장서왔다는 비판을 받았다. 또 지난달엔 폭스뉴스에 “홍역 유행은 영양실조 때문”이라며 비타민A가 풍부한 식이 보조제를 섭취하는 임상시험을 진행할 계획이라 밝혔다. 액시오스는 “예방 접종을 받지 않은 어린이 홍역 환자를 검사한 결과, 다수의 어린이가 비타민A 독성으로 인해 간에 문제가 발생한 경우가 종종 포착됐다”며 “홍역 환자들이 다닌 병원 최고 의료 책임자들은 환자들이 홍역 바이러스 치료·예방 목적으로 비타민A를 사용했다고 시인했다”고 전했다.
앞서 트럼프 정부가 백신 관련 보건복지부 예산을 삭감하고 직원 1만명을 해고하는 등 강도 높은 구조조정에 들어간 터라 이번 사태가 트럼프 정부 감염병 관리의 첫 시험대가 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미국은 트럼프 정부 출범 후 164국에서 700개 이상 실험실을 운영하며 홍역 사례를 추적하는 세계보건기구(WHO)에서 탈퇴했고, 개도국에 홍역 백신 구매 등을 지원하는 세계백신면역연합(GAVI)에 대한 지원도 중단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날 전용기에서 기자들과 만나 “지금까지는 비교적 소규모 감염”이라면서도 “상황이 심각해지면 강력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