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미슨 그리어 무역대표부(USTR) 대표가 9일 미 하원 세입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해 있다. /EPA 연합뉴스

“대통령이 관세를 유예한 걸 알고 있나요?” “그렇습니다.” “언제 알았죠?” “몇 분 전에 결정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유예 조치의 기간과 내용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됩니까?” “90일인데 대통령과 아직 얘길 못 해서.” “세계무역질서를 다시 짜면서 대통령과 말도 못 했다고요?”

9일 미국 워싱턴 DC 의회에서 열린 하원 세입위원회 ‘트럼프 행정부 무역정책’ 청문회에 출석한 제이미슨 그리어 무역대표부(USTR) 대표가 민주당 스티븐 호스퍼드 의원이 호통치듯 쏟아지는 질문에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겨우 답했다.

앞서 그리어는 이날 약 두 시간 동안 모두 발언과 답변을 통해 트럼프의 관세 정책과 각국에 물린 상호 관세의 정당성을 옹호했다. 그런데 청문회 도중 트럼프가 중국에만 125%의 추가 관세를 물리고 나머지 국가들에 대한 상호 관세를 90일간 유예키로 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리어가 앞서 발언에서 전혀 언급하지 않은 내용이다. 그러자 호스퍼드는 트럼프의 관세 유예 결정 과정에서 미국 통상 정책을 총괄하는 USTR 대표조차 패싱 됐다는 것을 직감하고 이를 집요하게 파고든 것이다. 호스퍼드의 목소리는 갈수록 격앙되고 거칠어졌다. “그런데 (대통령이) 이런 결정을 트위터(현 X)로 발표한다고요? 누가 책임자요? 당신은 이걸 3초 전에야 알았어요. WTF(What the fuck·제기랄)!”

이날 그리어가 곤욕을 치른 순간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관세 전쟁’이 트럼프 1인에 의해 얼마나 즉흥적으로 이뤄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트럼프가 자신의 소셜미디어인 ‘트루스 소셜’을 통해 중국을 제외한 국가에 대한 상호 관세 90일 유예 방침을 밝혔는데, 무역 수장인 그리어조차 이를 청문회 도중 파악했다는 정황이 TV 화면에 그대로 생중계됐다.

스티븐 호스포드 민주당 하원의원이 9일 세입위원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X(옛 트위터)

호스퍼드는 이날 오전 자신의 사무실에서 트럼프의 철강·알루미늄 관세 부과 조치로 피해를 입은 중소기업 관계자들과 면담한 사실을 언급하며 “미국 국민에게는 인생이 달린 일인데 정부 당국자들은 아마추어 같다”고 했다. 이어 “트럼프의 트윗 하나가 우리 경제를 혼란에 빠뜨리고 붕괴 직전까지 몰아넣었다”며 “이 나라의 안녕을 걱정하는 미국인들에게 정말 미안하다는 말을 전한다”고 했다. 그리어는 다국적 로펌 변호사 출신으로 1기 때 USTR 대표를 지낸 로버트 라이트하이저의 수제자 격인 인물이다. 한편 그리어는 이날 북한·러시아가 관세 부과 대상에서 제외된 것과 관련해 “이미 강력한 제재와 부문별 금수 조처에 직면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날 청문회에서는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이 체결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25% 상호 관세를 부과받은 한국에 관한 얘기도 나왔다. 린다 산체스 민주당 의원은 “두 나라 간 FTA에 따라 한국은 대부분의 미국산 제품에 관세를 철폐했는데도 트럼프는 25% 관세를 부과했다”며 “우리의 친구와 동맹국을 대하는 방식을 보면 정말 충격적이다. 러시아는 프리패스를 얻었는데 9·11 테러 이후 미국 편에 섰던 동맹국들은 타격을 입게 됐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