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미국 대통령과 나이브 부켈레 엘살바도르 대통령이 14일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EPA 연합뉴스

14일 백악관에서 열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나이브 부켈레 엘살바도르 대통령의 정상회담은 마치 부켈레의 원맨쇼 같았다. 부켈레는 이날 불법 이민자 추방, DEI(다양성·형평성·포용성) 정책 폐기, 트랜스젠더(성전환자)의 여성 스포츠 참여 금지, 주류 언론 비판 등과 관련해 트럼프가 듣고 싶어 하는 말만 골라서 하며 환심을 샀다. 정치 매체 폴리티코는 “두 지도자의 브로맨스(남자들의 우정)가 멈출 기미가 없었다”고 했다.

2019년 처음 당선된 부켈레는 강력한 범죄 소탕 정책으로 트럼프 지지자들도 좋아하는 해외 정상이다. 인구 10만명당 살인 희생자 수가 2015년 세계 최고 수준인 106.3명에서 2019년 38명으로, 지난해에는 1.9명으로 떨어졌다. 이 과정에서 인권을 탄압한다는 비판도 받았지만 부켈레는 확연히 낮아진 범죄율을 앞세워 지난해 85% 득표율로 재선에 성공했다.

특히 부켈레는 미국에서 600만달러(약 85억원)를 지원받는 ‘교도소 아웃소싱’으로 트럼프의 불법 이민자 추방을 돕고 있다. 미 정부가 테러 단체나 갱단 조직원으로 지목해 쫓아낸 이들을 자국의 악명 높은 ‘세코트(CECOT·테러범 수용 센터)’에 수용한 것이다.

부켈레는 “미국의 범죄, 테러 문제를 돕고 싶다”며 “사람들은 내가 많은 사람을 감옥에 가뒀다지만 다르게 말하면 수백만의 무고한 시민을 해방시킨 것”이라고 했다. 이에 트럼프가 “누가 그런 대사를 써줬냐”며 “내가 좀 사용해도 되느냐”고 말해 J D 밴스 부통령을 비롯한 배석자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트럼프는 부켈레에게 “당신과 함께 일하게 돼 감사하다”며 “엘살바도르 국민에게는 멋진 대통령이 있다. 매우 젊었을 때부터 알았는데 (아직도) 10대처럼 보인다”고 했다.

부켈레는 회담에서 ‘행정 오류로 부당하게 추방된 일부 이민자를 미국에 돌려보낼 것이냐’는 질문에 “질문이 말이 안 된다”며 “어떻게 테러리스트를 미국으로 밀입국시키느냐”고 했다. 질문을 던진 CNN 기자를 가리켜 트럼프가 “CNN은 만날 틀리기 때문에 먼저 질문을 받지 않겠다”고 하자, 부켈레가 비판적 언론을 싫어하는 트럼프의 심기를 간파하고 기자에게 면박을 준 것이다. 부켈레가 트럼프에게 “불법 이민의 95%가 감소했는데 왜 그 수치가 언론에 나오지 않느냐”고 묻자 트럼프가 흡족한 표정으로 “CNN은 우리나라를 싫어해서 좋은 수치를 내보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답하기도 했다.

부켈레는 회담 내내 트럼프를 웃게 했다. 취임 후 트랜스젠더의 여성 경기 참여를 금지시킨 트럼프가 “당신네(엘살바도르)는 남자가 여자 경기에서 뛰게 하느냐”고 묻자 “그건 폭력”이라고 했다. 엘살바도르 내각 상당수가 여성인 데 대해서는 “모두 능력으로 장관직에 오른 사람들”이라며 “절대 DEI에 따른 기용이 아니다”라고 했다.

14일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나이브 부켈레 엘살바도르 대통령 간 정상회담이 열리고 있다. /EPA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