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경 옹기 대표가 20일 본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워싱턴=김은중 특파원

이달 초 미국 워싱턴 DC 듀퐁서클 인근에 한국 음식점인 ‘옹기(ONGGI)’가 문을 열었다. 수도 워싱턴 DC에서도 치킨, 비빔밥, 김밥, 코리안 바베큐 등 캐주얼하게 즐길 수 있는 한국 음식이 인기이지만 객단가 100달러(약 14만2000원)가 넘어가는 하이엔드 한식 업장이 문을 연 것은 코로나 팬데믹 직전인 2020년 문을 닫은 ‘우래옥’ 이후 5년 만이다. 이 무모(?)하고도 위대한 도전에 나선 사장님은 음식점 창업은 이번이 처음이라는 전직 한국어·한국 문화 강사이자 인지공학 전공자인 김태경(48)씨다. 김씨는 한국계 미국인으로 결혼 후 13년 동안 한국에 살면서 ‘장맛’에 반해 동해 바다와 해남 땅끝 마을까지 전국을 돌아다녔다고 한다.

세계 정치의 수도라는 워싱턴 DC에서는 음식이 생각보다 중요하다. 상·하원 의원들과 정부 실력자, 로비스트 들은 캐피톨힐(의회 의사당) 주변에 밀집해 있는 스테이크 하우스에 모여 국사(國事)를 논한다. 조지타운대 앞 카페 밀라노, 오스테리아 모짜 같은 고급 레스토랑에 가면 저녁마다 정치인이나 셀러브리티의 얼굴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주요국 간 중요한 양자(兩者) 회동이 이뤄지기도 하는데, 2011년 이명박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우래옥에서 불고기로 만찬을 같이했다. 월도프 아스토리아 호텔(옛 트럼프 인터내셔널 호텔) 안에 있는 일식당 ‘스시 나카자와’는 인당 190달러부터 시작하는 스시 오마카세 요리를 내고 수백~수천 달러짜리 사케를 취급한다. 이렇게 한식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 그간 워싱턴 DC 안에는 없었다. 뉴욕에선 꽃(COTE), 아토믹스(ATOMIX) 등이 미슐랭을 휩쓸며 한식 파인 다이닝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것과도 대비가 됐다.

지난 2011년 이명박 대통령(오른쪽)과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이 한식당 우래옥에서 비공식 만찬을 즐기고 있는 모습. /조선일보DB

옹기는 주요국 재외 공관이 밀집해 있는 이른바 ‘엠버시 로우(Embassy Row)’ 근처에 위치해있다. 주미 한국대사관에서도 걸어서 10분 거리다. 개점 첫 주 조현동 주미대사가 대사관 관계자들을 데리고 식당을 찾았고, 지난해 넷플릭스 ‘흑백요리사’로 국내에서 스타덤에 오른 에드워드 리 셰프도 직접 방문해 “식당 운영이 생각보다 쉽지는 않다”며 김씨에게 여러 조언을 남겼다고 한다. 리씨도 지난해 중앙역인 유니언 스테이션 근처에 비건 한식을 표방하는 ‘시아(SHIA)’를 열었는데, 규모가 크지 않고 레스토랑의 지속가능을 시험하는 일종의 실험실에 가까운 업장이다. 옹기는 점심에 30~40달러대의 비빔밥, 김치찌개, 갈비 등을 취급한다. 저녁에는 칠절판, 삼색전, 잡채 등으로 구성된 5코스 한정식이 주력으로 가격이 115달러다. 비건 인구가 상당한 워싱턴 DC의 특성에 맞서 비건 옵션도 제공한다.

지난 20일 본지와 만난 김 대표는 “워싱턴 DC 안에서 프랑스, 이탈리아는 물론 인도, 파키스탄 같은 나라의 음식들도 제대로 즐길 수 있는 식당이 많은데 한식은 그럴 수 있는 곳이 없었다”며 “동양 문화에 관심이 많고 한국 음식에도 거부감이 없는, 30~40대 영 프로페셔널에 초점을 맞춘 식당을 콘셉트로 하고 있다”고 했다. 최대 1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식당 안에는 실제로 옹기들을 볼 수 있는데 한국에서 토종 된장, 고추장, 조선 간장 등을 들여와 최적의 비율로 각 요리에 배합하고 있다. 매주 1번 10명이 넘는 스태프들이 김치를 담그는데 그날 가면 ‘셰프 스페셜’로 보쌈을 맛볼 수 있다. 김 대표가 “한식에 대한 사랑이 어마어마한 멘토”라 표현한 서울 중구의 ‘달개비’ 함재연 대표가 메뉴 구성에 상당한 조언을 해줬다고 한다. 워싱턴 DC 내 다른 한국 음식점과 달리 프라이빗 룸이 2개나 있는 것도 특징이다.

미국 워싱턴 DC의 '옹기' 외부 모습. /워싱턴=김은중 특파원
미국 워싱턴 DC의 '옹기' 내부 모습. /워싱턴=김은중 특파원

옹기는 단순한 한식당을 넘어 한국 문화를 수도 워싱턴 DC에서 전파하는 가교(架橋) 역할을 목표로 하고 있다. 다음 달 ‘아시안 태평양계(APPI) 문화 유산의 달’을 맞아 한국 소주를 소개하는 이벤트를 준비하고 있고, 한식을 더 밀도있게 즐길 수 있는 쿠킹 클래스와 반찬 구독 서비스 등도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식당 한 켠에 있는 바에서는 ‘고메 바이트(Gourmet Bites)’라 불리는 치킨 윙 같은 가벼운 안​줏 거리와 함께 안동 소주, 여보 소주(Yobo Soju) 같은 한국식 주류를 취급하고 있다. 매주 수요일에는 전직원이 모여 한국 음식에 대해 더 깊이 연구하는 ‘스터디 데이’도 갖고 있다고 한다. 김 대표는 “레시피대로 따르면 대개 결과물이 비슷하게 나오는 양식과 달리 한식은 만드는 사람의 정성이 너무 중요하고, 손끝에서 맛이 나오는 예민하고도 어려운 음식”이라며 “손님을 조카, 자식처럼 생각하며 맛있는 한식을 정성 있게 준비하는 이모 같은 마음으로 모든 팀이 매진하고 있다”고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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