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풍, 사모펀드 MBK파트너스와 경영권 분쟁을 겪은 고려아연이 미 행정부와 의회 등을 상대로 하는 워싱턴 DC의 로비 시장에서 ‘큰손’으로 등극한 것으로 나타났다. 고려아연은 최근 ‘머큐리 퍼블릭 어페어스(MPA)’와 50만 달러(약 7억1300만원)짜리 계약을 맺었는데, 이는 연방로비공개법(LDA)을 적용받는 기업이 1분기(1~3월) 체결한 계약 중 단일 거래 기준 9번째로 높은 금액인 것으로 나타났다. MPA는 트럼프 정부 실세인 수지 와일스 백악관 비서실장이 과거 로비스트로 근무했던 곳이다.
플로리다주(州)가 주요 무대인 MPA는 트럼프 재집권을 전후해 사세를 크게 불린 곳이다. 트럼프 당선의 1등 공신인 와일스가 이곳 로비스트 출신이고, 트럼프 정부에서 플로리다 출신들이 약진한 것이 승승장구하는 비결이 됐다. 올해 1분기에 체결한 계약 규모만 도합 520만 달러에 이른다. 워싱턴 DC의 주미 한국대사관도 지난해 11~12월 MPA와 단기 계약을 체결했지만,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 계엄·탄핵 정국이 이어지면서 빛이 바랬다. MPA는 2024년 2월 고려아연의 로비스트로 최초 등록했고 현재까지 총 다섯 차례 계약을 갱신한 것으로 나타났다. 분기 25만 달러 수준이었는데, 가장 최근에는 50만 달러로 금액이 두 배나 뛰었다.
이는 워싱턴 DC 내에서도 손에 꼽힐 만한 큰 거래라 로비 업체들의 이목이 집중됐다. 고려아연보다 큰 규모로 계약을 체결한 곳은 US스틸 인수를 추진 중인 일본제철(170만 달러), 미국을 대표하는 반도체 기업인 퀄컴(68만 달러) 등 여덟 곳에 불과했다. 미 의회에 등록된 신고 내역을 보면 MPA가 고려아연에 대해 “핵심 광물, 재활용, 청정 에너지 보조금 관련 문제”를 담당한다고 돼 있다. 고려아연 담당인 로비스트 셰리 부스토스는 2013~2023년 민주당 하원의원을 지냈고, 데이비드 비터는 공화당 소속으로 2005~2017년 상원의원과 1999~2005년 하원의원을 모두 지낸 인물이다.
이런 가운데 고려아연의 100% 미국 자회사인 페달포인트 홀딩스 역시 지난달 4만 달러에 ‘임프레션 스트래티지’를 신규 로비스트로 선임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는 브라이언 마스트 하원 외교위원장,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가까운 것으로 알려진 잭 넌 하원의원의 비서실장을 지내 의회에서 잔뼈가 굵은 브래드 스튜어트가 로비스트로 뛰고 있다. 트럼프 정부 출범 후 중국과의 무역 전쟁이 다른 분야로까지 확장하면서 미 정가에서도 고려아연 사태를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다. 트럼프가 강조하는 핵심 광물 공급망의 안전망을 확보하는 데 한국만한 파트너가 없기 때문이다. 한국은 지난해 7월 미국이 주도하는 대중 견제 협의체인 ‘핵심광물안보파트너십(MSP)’의 의장국을 1년 임기로 수임(受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