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3일 백악관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UPI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3일 중국에 대한 관세율을 낮출 가능성이 있느냐는 질문에 “향후 2~3주 안에 중국에 대한 관세 수준을 결정할 수 있다”며 “중국과도 특별한 협상을 할 수 있다”고 했다. 중국에 부과한 누적 관세율 145%에 대해 전날 “매우 높은 수치”라며 조정 가능성을 시사한 데 이어 하루 만에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향후 2~3주”라는 구체적 시점까지 거론했다. 중국과 관세 전면전을 불사할 듯하더니 갑자기 유연해진 것이다.

중국을 ‘약탈자’라고 거칠게 비난하면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연락해 부탁하지 않으면 관세를 낮추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였던 트럼프의 변화에 대해 CNN은 “중국이 트럼프의 관세에 대응해 125% 보복 관세를 부과하는 등 강경하게 나오고 시진핑이 연락해 올 조짐도 보이지 않자 트럼프가 (협상 테이블로 나오라는) ‘미끼’를 던진 것”이라고 전했다. 협상의 달인이라 자랑해 온 트럼프가 전략적 ‘밀고 당기기’를 하고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강한 미국이 돌아왔다’며 중국을 맹공해 온 트럼프가 한 발씩 물러서는 모습을 보이자 시진핑이 트럼프를 오히려 애태우게 만들며 한 수 위 전략을 구사 중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소셜미디어엔 트럼프가 시진핑의 전화를 애타게 기다리거나 트럼프가 자신의 책 ‘거래의 기술’을 읽는 동안 시진핑이 중국 병법서 ‘손자병법’을 읽는 등 트럼프가 시진핑에게 밀리는 듯한 모습을 합성한 이미지가 쏟아지고 있다.

그래픽=송윤혜

지난 1월 ‘2기’ 대통령 취임 후 사실상 전 세계를 대상으로 관세 전쟁을 벌여온 트럼프는 최근 잇달아 관세를 유예하거나 예외를 두며 물러서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관세 인상 후 미국 주식·국채·통화(달러) 가치가 동반 하락하고 많은 미국 기업이 물가 상승을 우려해 관세 유예를 요청하면서 생기는 일이라고 현지 언론들은 보도했다.

트럼프는 지난 2월 중국산 제품 전체에 관세 10%를 추가하면서 “시진핑과 통화할 예정”이라고 했다. 이달 초 각 무역 상대국에 상호 관세 적용을 90일 유예하면서 중국에 대한 관세율만 추가 인상했을 때도 “우리는 그들(중국)의 전화를 기다리고 있다”면서 협상에 기대감을 드러냈다. 그러나 시진핑은 트럼프에게 대화 요청을 하지 않았고, 미·중의 무역 협상도 시작되지 못했다. 이런 가운데 트럼프가 대중(對中) 관세를 내릴 수 있다고 먼저 발언하는 등 태도를 누그러뜨린 데 대해 CNBC는 “전 세계를 상대로 상호 관세 폭탄을 터뜨렸을 때의 전투적 수사(修辭)와는 극명한 차이가 있다”고 했다.

'관세 전쟁'에서 느긋한 중국과 다급해진 미국을 풍자한 이미지들. 왼쪽부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전화를 학수고대하는 트럼프 미 대통령, 트럼프가 거듭 관세를 올려도 끄떡 않는 시진핑, 저서 '거래의 기술'을 펼쳐 든 트럼프 옆에서 전쟁론의 고전 손자병법을 읽는 시진핑을 묘사했다. /X(옛 트위터)

트럼프는 관세 인상으로 인한 물가 상승의 영향을 많이 받는 품목에 대한 관세도 잇따라 유예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23일 소식통을 인용해 “트럼프가 펜타닐(마약성 진통제) 문제 대응 차원에서 중국산에 부과한 징벌적 관세 등에서 자동차 부품을 제외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보도했다. “미국의 자동차 제조사들이 높은 관세가 수입 부품 가격을 올려 비용 부담을 가중시킨다며 여러 경로로 유예를 요청한 데 따른 조치”라고 FT는 전했다.

미 정부는 앞서 스마트폰·컴퓨터·반도체 관련 품목을 상호 관세 부과 대상에서 일단 제외한다고 지난 11일 발표했다. 중국에서 생산해 들여오는 아이폰(애플의 스마트폰) 등의 물가가 지나치게 상승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나온 조치다. 트럼프는 관세를 올림으로써 애플이 공장을 미국에 세워 아이폰을 만들 경우 일자리가 늘어나고 경제가 활성화된다고 주장했지만, 전문가들은 미국의 높은 인건비를 감안하면 아이폰 가격이 지금보다 세 배 수준으로 올라 경쟁력을 상실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트럼프가 벌이는 관세 전쟁에 대한 국내외 비판이 만만치 않다는 점도 무시하기 어렵다. 관세 정책의 불확실성으로 트럼프 취임 후 S&P500 지수는 14%, 기술주 위주의 나스닥은 18% 하락했고 미국 내에선 관세 직격탄을 맞은 기업과 소비자를 중심으로 반(反)트럼프 정서가 고조되고 있다. 뉴욕과 워싱턴 DC 등 대도시를 비롯해 미국 곳곳에선 주말마다 트럼프를 비난하는 시위가 열리는 상황이다. 23일 공개된 로이터·입소스 여론조사에선 트럼프의 경제 정책을 지지한다는 응답이 전체의 37%에 그쳤다. 이는 “집권 1·2기를 통틀어 최저치”라고 로이터는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