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연구진이 돼지 장기 이식 시 발생하는 면역 거부 반응에서 착안해 면역 체계를 속여 암세포를 공격하게 하는 새로운 치료법을 개발했다. 아직은 연구 초기 단계지만 여러 종류의 암에 광범위하게 적용될 수 있다는 점이 장점으로 꼽힌다.
17일(현지 시각) 네이처지에 따르면, 중국 광시의대 자오용샹 교수 연구팀은 암세포를 돼지 장기 등 외부 조직처럼 인식하게 만들어 면역 체계의 거부 반응을 유도하는 방식으로 암세포 성장을 억제하는 데 성공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이 연구 결과는 과학저널 ‘셀(Cell)’에 게재됐다.
연구팀은 암세포에서만 증식하는 바이러스를 이용해 암세포를 감염시키고 사멸하도록 하는 기술인 종양 용해성 바이러스 요법을 활용했다. 연구팀은 뉴캐슬병 바이러스(NDV)를 이용해 암세포를 돼지 장기와 유사하게 인식하도록 변형시켰다. 이 바이러스는 알파 1, 3-갈락토실트랜스퍼라제 효소를 전달해 암세포 표면에 돼지 세포와 유사한 당 구조를 만들어냈다. 이런 방식으로 암세포를 외부 조직처럼 보이게 만들어 인체의 면역 체계가 공격하도록 유도했다.
연구팀은 먼저 간암에 걸린 원숭이 10마리를 대상으로 실험을 진행했다. 치료를 받지 않은 5마리는 평균 4개월 만에 사망한 반면, 바이러스 치료를 받은 5마리는 6개월 이상 생존했다.
이러한 실험 결과를 바탕으로 간, 식도, 직장, 난소, 폐, 유방, 피부, 자궁경부 등에 암 진단을 받은 암 환자 23명을 대상으로 연구를 확대했다. 2년간의 추적 관찰 결과, 환자 2명은 종양이 축소됐지만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환자 5명은 종양 성장이 멈췄다. 일부 환자는 초기에 호전을 보였으나 이후 종양이 다시 성장했다. 어떤 치료 효과도 보지 못한 사람은 2명이었고, 또 다른 2명은 실험 시작 약 1년 만에 실험을 포기했다. 연구팀은 “치료에서 큰 혜택을 보지 못한 사람들의 경우, 암이 너무 진행되어 치료가 너무 느리게 진행되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암 전문가들은 새로운 암 치료 방식에 관심을 보이면서도 아직은 효과를 단정 짓기엔 이르다고 평가했다. 브라이언 리치티 맥마스터대학 교수는 “이 치료법이 다양한 암 종류에 걸쳐 효과를 보인 점은 매우 이례적”이라며 “소량의 바이러스 감염만으로도 자가 지속적 면역반응이 일어나 이 치료 방식이 광범위하게 적용될 수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마스무두르 라만 애리조나주립대학 교수는 이 치료법의 잠재력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추가 연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특히 치료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환자군 선별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사무엘 워켄헤 캐나다 온타리오 궬프대학 교수는 이 치료법과 면역관문억제제(암세포의 비활성화를 막아 면역반응을 활성화시켜 암을 공격하는 치료제)의 병용 가능성을 제시하며 “두 치료법의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연구진은 향후 2상 및 3상 임상 시험을 통해 치료법의 안전성과 효과를 추가로 검증할 계획이다. 특히 바이러스의 환경 배출 가능성과 건강한 조직에 대한 면역 반응 등 안전성 관련 문제들을 중점적으로 연구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