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다큐멘터리 〈100세까지 살기: 블루존의 비밀〉을 보면, 세계 장수촌 백세인들 중 누구도 일을 손에서 놓지 않는다. 그들에게 일은 생계나 습관을 넘어 삶의 의미이자 존재의 이유다.

일본 오키나와의 노인들에게 일은 ‘이키가이(生き甲斐)’― 살아가는 보람이었다. 코스타리카의 백세 목수, 일본 나가노현의 노인들, 과거 한국 농촌의 백세 노인들에게도 공통점은 하나. “매일 부지런히 일한다”는 것이었다.

이 사실은 우울증 극복에도 귀한 통찰을 준다. 더 이상 ‘할 일’이 없다고 느낄 때, 우울과 허무가 찾아온다. 반대로 매일 할 일이 있는 사람에게는 우울이 끼어들 자리가 없다. 니체는 말했다. “왜 살아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은 어떤 상황도 견딜 수 있다.”

우울증에 걸리면 흔히 “그냥 편히 쉬라”고 권하지만, 몸은 쉬어도 머리가 남아돌면 그 여분의 에너지가 오히려 부정적인 생각으로 향할 수 있다. 특히 50~60대 은퇴 후 ‘이젠 내게 할 일이 없다’는 상실감은 루미네이션을 심화시켜 우울증을 부추긴다. 나 역시 그랬다.

블루존 지역인 '코스타리카 니코야'에서 직접 말을 타고 목동일을 하는 100세 노인 라미로씨. 그는 평생 "게으름"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다고 한다. /넷플릭스 캡처
블루존 지역인 '코스타리카 니코야'에서 직접 말을 타고 목동일을 하는 100세 노인 라미로씨. 그는 평생 "게으름"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다고 한다. /넷플릭스 캡처

나에게 맞는 일을 찾는다는 것

4050 직장인들이나, 이미 은퇴한 베이비붐 세대에게도 공통된 감정이 있다. 열심히 살았지만 성취와 공허, 피로와 허무가 교차된다는 점이다. 그들은 어느 시점, 삶을 되돌아보며 질문에 직면한다.

“나는 정말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했는가?”

누구에게나 내면 깊은 곳에 ‘내가 해야 할 일’, 혹은 ‘내가 이 세상에 온 이유’ 같은 것이 있다. 사람들은 그것을 ‘소명’, ‘업(業)’, 또는 ‘카르마’라 부른다. 이것을 따라 살아간 사람은 대개 건강하고 행복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은 흔들리고 병들기 쉽다.

실제로 캐나다의 정신과 의사 기 코르노는 젊은 시절 연극을 하고 싶었지만 부모의 반대로 의사가 되었고, 결국 말기암에 걸렸다. 그는 자신의 책 《생의 마지막 순간에 마주하게 되는 것들》에서 이 병이 억눌린 욕망에서 비롯되었을 수도 있다고 고백한다.

진짜 자신의 길을 택한 사람들

일찍 자신의 길을 찾은 이들은 행복한 삶을 누린다. 한강, 김현아, 손흥민, 봉준호, 임영웅, 이병헌. 그들은 타고난 재능에 노력과 시대적 행운까지 겹쳐 한국을 대표하는 스타가 됐다. 만약 그들이 다른 직업을 택했더라면 지금처럼 빛났을까?

세상에는 스스로 원하는 일을 찾지 못한 사람들이 많다. 공부도 잘했고, 남들이 부러워할 직업을 가졌지만, 자신에게 맞지 않는 삶을 살아온 사람들. 내가 아는 판검사, 의사, 고위공무원 중에도 내면은 공허한 이들이 있다. 이런 사람을 ‘성불사’(성공했지만 불행한 사람)라 부르기도 한다.

세계 장수촌을 돌며 장수인들의 비결을 탐사보도한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100세까지 살기: 블루존의 비밀〉 홍보 포스터

‘쓰레기 줍기’로 길을 찾은 한 여성

나에게 깊은 울림을 준 한 여성이 있다. 유학파 영어강사였던 그녀는 마흔에 직장을 그만두고, 쓰레기를 줍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새벽과 밤에만 나섰지만, 매일 쓰레기를 줍는 그 순간, 자연 앞에서 고개를 숙이는 듯한 경건함을 느꼈다고 했다. 그녀에게 그 행위는 환경정화이자 마음수행이었고, 20년 넘게 ‘나홀로 실천’을 이어오며 몸과 마음 모두 치유되었다고 한다.

“나, 전생에 티베트 승려였을지도 몰라요.”

과거의 나였다면 이해 못했겠지만, 지금의 나는 그 말에 진심으로 공감할 수 있다. 나 역시 신문사, 청와대, 기업을 거쳐 결국 우울증이라는 큰 벽 앞에서야 다시 인생을 설계하게 된 내 여정도 다르지 않다.

내면의 소리가 격렬하다는 것은, 변화의 에너지가 그만큼 강하다는 뜻이다.

“당신이 진짜 원하는 일을 하라”

이제는 백세 시대, 인생 3모작 시대다. 언젠가 누구나 은퇴의 순간을 맞는다. 그때 ‘안전한 틀’에 머물 것인가, 아니면 가슴 속 목소리를 따라 나아갈 것인가.

“진짜 원하는 일을 하라. 그 일에 몰두하면 우울은 들어올 틈이 없다. 마음속 불안과 절망은 행동으로 치유된다. 삶의 의미를 찾으라. 그것이 내일을 여는 힘이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어떤 고민 속에 있든, 자신만의 길을 찾길 진심으로 응원한다. 그것이 나를 살리고, 세상도 살리는 길이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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