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누구나 인생에서 넘어지는 순간을 경험한다. 그리고 요즘처럼 힘든 시절, 몸과 마음이 지친 이들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거창한 처방이 아니라 자연과 다시 연결되는 일일지 모른다.
10여 년 전, 심한 우울증으로 고통받던 나는 병원 치료와 운동으로 어느 정도 회복했지만, 여전히 마음 깊은 곳엔 공허함이 남아 있었다. 운동이 끝나고 나면 또다시 인생의 무게와 과거의 상처가 몰려왔다.
운동만으로 채워지지 않는 그 허기를 채워준 것은 ‘자연’이었다.
자연이 내민 손길
금요일 오후면 나는 집으로 가지 않고, 당시 다니던 회사의 양평 연수원으로 향했다. 남한강이 흐르고, 산이 병풍처럼 둘러싼 곳이었다. 그곳에서 주말 내내 자연 속에 파묻혀 살았다.
아침이면 나무숲을 걷고, 낮에는 산에 오르거나 강변을 따라 트레킹을 했으며, 밤이면 별을 바라보았다. 숲길을 걷는 동안 나는 의도적으로 사색을 자제했다. 생각을 비우는 것, 오직 자연을 느끼는 것에 몰입했다.
그때 비로소 마음이 ‘숨을 쉰다’는 느낌을 받았다.
조선 실학자 정약용이 유배지에서 평안을 찾았던 것도, 장자가 말한 ‘무심(無心)의 공덕’도 아마 이런 상태였을 것이다.
“무심의 고요함으로 안정을 지키고, 그윽한 적막 속에서 쉬노라.”
자연 속에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그 자체로 치유가 되었다.
자연이 바꾼 마음
양평의 산과 강에서 얻은 평화는 내 행동반경을 점점 넓혔다. 용문산, 산음휴양림, 유명산, 중미산 등 심산유곡을 헤매며 자연의 기운을 온몸으로 받아들였다.
때로는 지평리 보리밥, 옥천 냉면, 이포 막국수 등 지역 맛집을 찾아 소소한 기쁨을 누리기도 했다.
자연은 내게 몸의 활력과 마음의 생기를 동시에 되찾게 했다.
가을과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자 나는 다시 매일 아침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다. 어느 날 아침, 출근길 차 안에서 문득 심장이 설렜다. 소풍 가는 아이처럼 가슴이 뛰었다. 사무실로 가는 길이 설레고, 남산과 덕수궁이 전혀 새롭게 보였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차갑고 딱딱했던’ 내 마음이 ‘따뜻하고 부드럽게’ 변하고 있었다.
그날 일기에 이렇게 적었다.
“긴 터널을 빠져나오고 있는 느낌이다. 저 멀리 터널 밖 환한 빛이 보인다.”
우울증이 시작된 지 1년 반 만에 찾아온 소중한 변화였다.
자연과 친해지는 법
자연과의 교감은 특별한 것이 아니다. 누구나 쉽게 시작할 수 있다.
가까운 자연을 찾아라: 공원, 둘레길, 한강, 북한산, 청계천. 서울만 해도 자연은 곳곳에 펼쳐져 있다.
맨발 걷기를 시도하라: 땅과 직접 접촉하면 피로물질이 줄고, 스트레스가 완화된다. 책 《어싱(Earthing):땅과의 접촉이 치유한다》 연구에 따르면 활성산소가 감소해 심신 건강이 좋아진다.
넓은 하늘이나 먼 경치를 바라보라: 우리는 종일 스마트폰, 컴퓨터 화면, 빌딩과 아파트 숲에 둘러싸여 시야가 좁아진 채 살아간다. 넓은 하늘이나 원경을 바라보면 뇌파가 안정되면서 심신도 이완된다. 뇌신경학자 레스 페미는 이를 ‘오픈 포커스(open focus)’ 기법이라고 명명했다. (책 ‘오픈 포커스 브레인’ 참조)
경외감을 가지고 산책하라: 길가의 작은 꽃이나 구름 하나에도 ‘경외심(awe)’을 품어보라. 어린이의 마음처럼 마치 처음 보듯, 호기심을 가지고 바라보라. 마음이 가라앉고 우울감이 완화된다.
식물과 교감하라: 작은 화분을 가꾸거나, 나무와 대화해보자. 사무실에 있는 화분도 좋다. 마음이 순화된다.
UCLA 생리학 교수였던 발레리 V. 헌트(1917~2014)는 인간에서 나오는 에너지와 전자기장이 자연 속에서 활성화된다고 밝혔다. 해변이나 산속에 있으면 몸이 살아나는 이유다.
자연 속에서 우리는 본래의 자신을 되찾고, 더 건강한 삶을 만들 수 있다.
지금 힘들다면 자연으로 돌아가라. 그곳에 치유의 답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