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김포에서 재택근무 중인 중학교 이모(28) 교사는 요즘 일과 시간 중엔 편하게 화장실조차 가지 못한다. 급하게 필요한 잡화를 사러 잠깐 나가는 일은 아예 엄두도 못 낸다. 불시에 걸려온 전화를 못 받았다가 자신이 근무하는 학교가 ‘재택근무 부실 이행 학교’로 찍힐까 봐서다.

/일러스트=이철원

집이 ‘감옥 아닌 감옥’처럼 변한 것은 이달 중순 행정실장으로부터 한 가지 공지를 받고 나서부터다. 3명으로 구성된 도교육청 감사 요원들이 불시에 학교 행정실로 찾아와 재택근무를 잘하는지 확인한다는 내용이었다. 감사 요원들이 행정실장에게 재택 중인 교사들의 집으로 전화를 걸어 집에 있는지 확인하게 하고, 휴대전화만 가진 교사에게는 영상통화를 걸어 전화를 받는 곳이 자택인지 확인한다는 것이었다. 그 전화를 제대로 받지 않으면 학교가 ‘재택근무 부실 이행’으로 기록된다고 했다. 이 교사는 “근무 규율이 필요한 건 당연하겠지만 지나치게 경직되게 적용해 사생활을 침해한다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기업과 학교, 공공기관이 과도하게 재택근무 상태를 점검하는 것에 피로감과 불편함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지난달 말부터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3차 확산세로 재택근무가 확대되고 있다. 일부 기관과 기업은 다양한 방법으로 직원들 근무 행태를 감독하고 있다. 시간대별로 ‘업무 일지’를 작성하도록 하거나, 일정 시간 이상 사내 메신저를 이용하지 않으면 저절로 꺼지도록 만들어 근태를 확인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직장인들은 “업무 성과로 평가하면 될 것을 근태 확인으로 해결하려 한다”며 “지극히 형식적인 통제”라는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서울에 있는 한 중견기업 구매팀에서 근무하는 고모(42)씨는 요즘 날마다 시간대별로 어떤 일을 했는지 ‘업무일지’를 작성해 회사에 제출한다. 재택근무를 하면서 도입된 제도다. 많은 전화 통화와 빠른 의사 결정이 필수인 구매팀 업무 특성상 근무 중 일지 작성은 어렵다. 결국 일지는 업무 종료 후 1시간 동안 작성한다. 고씨는 “재택근무를 하면서 쓸데없는 일이 오히려 더 늘었다”고 말했다.

사생활 간섭이 심해졌다는 불만도 나온다. 지난달 말부터 경기 부천 자택에서 재택근무를 하는 직장인 류모(35)씨는 출근한 오전 9시 직후와 퇴근하기 직전 오후 5시 30분, 하루 2번 팀 화상회의를 가진다. 하루는 부팀장으로부터 “너무 편하게 회의에 참여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라는 핀잔을 들었다. 류씨가 다소 편안한 옷차림에 평소 하지 않던 안경을 쓴 채 회의에 참가했기 때문이다. 류씨는 “화상회의 때 ‘표정이 안 좋다’ ‘어제 과음했느냐’ 같은 업무와 무관한 이야기로 참견하는 상관과 선배들이 많아서 불편하다”고 말했다.

대기업의 한 인천 지사에서 근무하는 한 직장인은 “우리 부장님은 2시간 동안 이용하지 않으면 자동으로 꺼지는 사내 메신저 접속 여부로 업무를 하고 있는지 판단한다”며 “정신없이 일하다가 메신저가 꺼진 줄 몰랐는데 부장님한테 ‘일 않고 뭘 하느냐’는 전화를 받은 적이 있다”고 말했다. 수도권의 한 공사(公社) 직원은 “사내 메신저 상태가 ‘접속 중’으로 돼 있는데 답장이 바로 오지 않으면 문책을 받는다”며 “과잉 조치라는 생각이 안 들 수 없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코로나 사태로 갑자기 재택근무가 확대됐지만 업무 성과 위주로 직원을 평가하는 체계를 제대로 구축하지 않아 벌어지는 일들이라고 지적했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직원이 눈앞에 보이지 않으니 집에서 놀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라며 “집이든, 카페든, 회사든 주어진 업무를 얼마나 완전하게 수행하는지만 평가하면되지 집에서 어떤 모습으로 일하는지를 평가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