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지난 7월 9일 극단적 선택을 하기에 앞서 자신의 성추행 혐의를 사실상 시인하는 언급을 측근들에게 한 것으로 검찰 수사에서 드러났다. 또 피해자 편에 서야 할 여성 단체 박 전 시장의 성추행 피소 예정 사실을 여당 의원에게 흘리고 이게 다시 박 전 시장에게 전달된 사실도 밝혀졌다. 서울북부지검은 30일 이 같은 내용의 박 전 시장 피소사실 유출 의혹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검찰에 따르면, 박 전 시장은 피해자로부터 고소당한 지난 7월 8일 오후 11시 시장 공관에서 가진 간부회의에서 ‘피해자와 문자를 주고받은 것이 있는데, 문제를 삼으면 문제가 될 소지가 있다’고 했다. 또 이튿날인 9일 시장 공관을 나선 다음 오후 1시 24분 임순영 서울시 젠더특보에게 ‘아무래도 이 파고는 내가 넘기 힘들 것 같다’는 텔레그램 메시지를 보냈다. 검찰은 서울시 관계자를 비롯해 50여명을 소환 조사하고, 박 전 시장과 관련자 23명의 휴대전화 통화 내역을 분석한 결과 이같이 파악됐다고 밝혔다. 전날 경찰은 사망한 박 전 시장에 대해 ‘공소권 없음’으로 수사를 종결하며 성추행이 있었다는 사실관계조차 밝히지 않아 피해자 측 반발을 자초했다.
검찰은 피소사실 유출 경로로는 여성 단체 인사들과 시민운동가 출신인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지목했다. 피해자 측 김재련 변호사는 지난 7월 8일 경찰에 고소장을 제출하기에 앞서 평소 알고 지내던 한국성폭력상담소 B 대표에게 피해자 지원을 부탁했다. B 대표는 이를 한국여성단체연합 C 공동대표와 논의했고, 다음 날 오전 C 공동대표는 같은 단체 D 공동대표에게 이를 알렸다. 이어 D 공동대표는 남 의원에게, 남 의원은 다시 임 젠더특보에게 전달해 박 전 시장에게까지 보고됐다. 남 의원은 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를 지낸 시민운동가 출신이다. 당시 남 의원은 곧장 자신의 보좌관이었던 임순영 서울시 젠더특보에게 전화를 걸어 ‘박원순 시장 관련 불미스러운 얘기가 도는 것 같은데 무슨 일이 있냐’고 물었다.
이후 서울시는 급박하게 움직였다. 임 특보는 오후 3시쯤 박 전 시장과 독대하면서 ‘시장님 관련해 불미스럽거나 안 좋은 얘기가 돈다는 것 같은데 아시는 것이 있으시냐’고 물었고, 박 전 시장은 ‘그런 것 없다’고 답한 것으로 조사됐다. 그로부터 1시간 30분 뒤, 서울경찰청에 박 전 시장 성추행 관련 고소장이 접수됐다.
박 전 시장은 이날 밤 11시쯤 공관에서 임 특보 등 보좌진과 회의를 갖고 ‘피해자와 4월 사건 이전에 문자를 주고받은 것이 있는데, 문제를 삼으면 문제가 될 소지가 있다’는 취지로 답했다. 피해자가 폭로했던 성추행 혐의를 인정하는 듯한 언급이었다.
이튿날 오전 박 전 시장은 ‘모든 분에게 죄송하다’는 메모를 남긴 채 공관을 나섰다. 오후 1시 24분 임 특보에게 ‘아무래도 이 파고는 내가 넘기 힘들 것 같다’는 텔레그램 메시지를 보냈고, 비서실장과 통화에선 ‘이 모든 걸 혼자 감당하기 버겁다’고 했다. 2시간쯤 뒤 휴대전화 신호가 끊겼다. 박 전 시장은 다음 날인 10일 오전 0시 1분 서울 북악산 숙정문 인근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그러나 검찰은 피소 예정 사실을 주고받은 여성 단체 관계자와 남 의원, 임 특보를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로 처벌하지는 않는다고 밝혔다. 검찰 관계자는 “성폭력특별법상 비밀준수 의무 위반 혐의는 수사 기관에만 적용되기 때문에 여성 단체들끼리 정보를 주고받은 것은 처벌 규정이 없다”며 “남 의원과 임 특보도 업무와 관련된 공적인 경로로 취득한 정보가 아니라 사적으로 얻은 것인 만큼 처벌에서 제외됐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