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플로리다 중부의 도시 세인트피터즈버그에는 ‘변태 마을(pervert park)’이라고 불리는 곳이 있다. ‘팔리스 이동식 주택 단지’라고 쓰인 표지판을 시작으로 이어지는 2000㎡ 넓이의 트레일러 파크에 출소한 성범죄자들이 모여 산다. 얼핏 평범해 보이지만 거리마다 다닥다닥 붙어 있는 집들은 모두 주택이 아니라 컨테이너 박스이거나, 캠핑카처럼 트레일러를 이용한 이동식 주거지로 되어 있다. 120~130명의 이곳 ‘주민’들은 모두 자발적으로 몰려들었다. 미국에서 성범죄자에게 가장 가혹한 규제를 가하는 곳 중 하나인 플로리다의 엄격한 주거제한 규제를 따르려면 여기밖에는 살기에 적합한 장소가 없기 때문이다. 강력한 규제 때문에 수백 명의 출소 성범죄자들은 살 곳을 구하지 못하고 노숙을 하는 일도 흔한데, 이들을 위해 기독교단체가 만든 ‘미라클 빌리지’라는 주거단지도 있다.
정부가 2023년 핵심 추진과제로 선정한 ‘한국형 제시카법’이 도입되면 한국도 위와 비슷한 현상이 벌어질 가능성이 커진다. 법무부는 지난 1월 26일 고위험 성범죄자가 아동 및 교육 시설 반경 500m 이내에 살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은 ‘2023년 5대 핵심 추진과제’를 윤석열 대통령에게 보고했다고 밝혔다. 이 ‘제시카’ 법안은 2005년 미국 플로리다주에서 발생한 아동 성폭행 사건으로 사망한 9세 피해자의 이름에서 따왔다. 미국에서는 이미 30개 이상 주에서 시행 중인데, 법무부는 한국 사정에 맞게 제한 범위를 조정하고 세부 내용을 다듬어 전자장치부착법 개정안을 5월 중 국회에 제출하겠다는 방침이다.
법무부가 제시한 법안 내용의 핵심은 유치원이나 초·중·고등학교 등 미성년자 교육시설 반경 500m 이내에 재범 우려가 큰 성범죄자가 살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대상은 범행을 반복했거나 13세 미만 아동에게 범죄를 저지른 자로 한정한다. 미국의 다른 주에 비해서도 규제가 특히 엄격한 플로리다는 2000~2500피트(약 600~700m) 이내로 거주 제한 구역을 정했는데, 면적 차이를 감안하더라도 우리 법무부가 제시한 제한 구역 범위는 상당히 좁은 편에 속한다.
이 때문에 법이 시행되면 출소한 성범죄자들은 거주지 선택에 상당한 제약이 가해질 수밖에 없다. 서울시처럼 교육 시설이 촘촘히 있는 곳은 아예 거주가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범죄자들이 지방으로 몰릴 수도 있고, 미국의 ‘변태 마을’처럼 성범죄자 거주지가 새로 집단적으로 형성되며 ‘게토화(ghetto·지역의 낙후 및 격리)’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수도권과 달리 인구 감소 지역으로 꼽힌 전북, 경북 등 지방의 경우 산지를 제외하고도 상당히 많은 부분이 500m 제한에 걸리지 않는다.
성범죄자 이웃으로 둔 주민들은 적극 찬성
각각 2020년, 2022년 출소한 성범죄자 조두순과 박병화도 법이 시행되면 주거지를 옮겨야 한다. 조두순이 사는 경기 안산시 와동 자택은 150m도 안 되는 거리에 유치원이 있다. 자택 입구 바로 앞에서 골목을 한 개만 넘어가면 도로 전체가 어린이 보호구역으로 되어 있다. 박병화가 사는 경기 화성시 봉담읍 자택도 500여m만 가면 초등학교가 나온다.
이 때문에 인근 주민 및 학생들은 법안 추진 소식에 반색을 표했다. 지난 2월 7일 화성시 봉담읍에서 만난 22세의 수원대학교 재학 여성은 “집이 서울 강북 쪽이라 통학이 2시간30분쯤 걸리지만 매일 오가며 통학한다. 여기서 자취할 생각은 전혀 없다”고 잘라 말했다. “특히 (박병화가 사는) 그 위쪽 원룸촌에 사는 여자 친구들은 거의 한 명도 못 봤다. 성범죄자 한 명 때문에 학교 주변 일대가 뒤숭숭한데, 차라리 강력한 법이 통과돼서 어느 한 곳에 몰아넣어 버리는 게 여러 사람 위해 더 낫지 않나 싶다.”
조두순이 이사가려 했던 경기 안산시 선부동에서 공인중개사무소를 운영하는 최모씨도 비슷한 입장을 보였다. 그는 특정 지역이 낙후될 수도 있다는 우려에 대해서는 “지금도 한 명 때문에 동네 전체가 다 죽는데 그럼 이건 특정 지역이 낙후되고 있는 게 아니냐”라고 반박했다. 최씨는 “(조두순이 지금 사는) 와동에 가보셨냐. 그 사람 한 명 산다고 동네 분위기가 말이 아니다”라며 “어차피 그 사람들이 나와 살아야 한다면 애들 키우는 북적북적한 데 말고 다른 곳에 가서 살아야 상식적으로 말이 된다”고 말했다.
‘다 사람 사는 곳’이라지만, 실제로 신상이 공개된 강력 성범죄자 거주지에 가보면 그들의 존재감은 확연히 드러난다. 동네 곳곳에 내걸린 퇴출 요구 현수막을 제외하고라도, 화성 봉담읍과 안산시 와동 모두 지자체 소속 청원경찰과 지구대 경찰이 각각 주기적으로 순찰을 돈다. 성범죄자 자택 앞 골목 앞뒤로는 치안센터가 각각 한 개씩 있어 24시간 경찰이 상주한다. 경찰들은 뻥 뚫린 유리창으로 주변을 감시하는데 인근 전신주에도 모두 CCTV가 서너 개씩 달려 있다. 이렇게 엄격하게 감시하는 인력을 따로 두면서 산발적으로 동네를 고립시키는 것보다 차라리 규제에 걸리지 않는 특정 지역만 집중적으로 관리하는 게 낫지 않겠냐는 게 주민들의 입장이다.
“제시카법도 부족… 보호수용제 논의해야”
사실 거주지를 제한한다고 해서 재범률을 실질적으로 낮출 수 있을지는 아직도 설왕설래를 거듭하고 있다. 김대근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미국에서도 효과성이 엄밀하게 검증된 것은 없다. 우리나라도 전자발찌 등을 손괴하고 범죄를 저지르는 그런 사건도 많지 않나”라며 “단순히 거주 제한으로 범죄를 막을 수 있다고 보기에는 좀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효과성 입증보다 먼저 법안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효과성만 따지고 법안을 도입하기보다는 인근 주민의 실질적이고 합리적인 불안을 해소해주기 위한 법안 추진도 필요하다”(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선임연구 위원)는 의견이다.
재범 방지 등 실질적 정책 효과를 기대하려면 제시카법을 넘어 보호수용제도 도입까지 논의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보호수용제는 재범 위험성이 높은 흉악범은 형기가 끝나도 교정시설로 보내 다시 일정기간 격리시키는 제도로,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기도 했다. 승재현 위원은 “정말 위험한 사람들에게 필요한 건 치료 목적의 격리”라며 “재범의 위험이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형기를 더 높이거나 치료나 감호 등 더 적극적인 법적 조치를 취할 수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실제 독일이나 오스트리아, 스위스 등의 국가에서는 보호수용제와 같은 범죄자 사후 격리 방식을 시행하고 있다. 재범을 일으킬 개연성이 의학적으로 충분히 소명된 사람에 한해서 정신병원, 사회치료시설 등에 일정 기한 수용하며 치료를 병행하는 식이다. 미국 워싱턴주에서는 페리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 맥닐섬에 이러한 마을을 조성하고 주법원의 허가하에 출소 성범죄자에 대한 민간 감금 방식을 허용하고 있다. 이 치료시설은 출소자가 어느 정도 회복이 됐다고 판단되면 보다 느슨한 주거제한이 있는 시설로 이들을 내보내는데, 그때마다 인근 주민들의 반대 시위가 이어진다는 현지 언론 보도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