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이 되어도 새하얀 벚꽃 터널도, 꽃비도 볼 수 없다면… 여러분의 작은 관심이 쓰러져가는 벚나무를 일으켜 세웁니다! 꽃은 다시 피고 추억은 이어지도록 따뜻한 고향을 만들겠습니다.’

지난 1일 행정안전부의 ‘고향 사랑 기부제’ 사이트인 ‘고향 사랑 e음’에 ‘벚꽃 소생 프로젝트: 진해의 희망을 피우다!’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늙고 병든 벚나무에 수액을 놓기 위해 기부금을 모으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 글은 ‘진해 군항제’로 유명한 경남 창원시가 올렸다. 창원시 관계자는 “진해에 있는 벚나무 36만 그루 중 14만 그루가 60살이 넘어 자꾸 죽고 예전만큼 꽃을 피우지 못하고 있다”며 “특별 관리가 필요한데 예산이 부족해 애향심(고향을 사랑하는 마음)에 호소하게 됐다”고 했다. 창원시는 2027년까지 5억원을 모금한다는 계획이다.

고향 사랑 기부제는 자기 고향 등에 기부하면 특산품을 답례로 주는 제도다. 기부자는 연말에 세액공제 혜택도 받을 수 있다.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자는 취지로 2023년 도입됐다.

작년 6월부터 지역의 특정 사업에도 기부할 수 있게 문호를 개방하면서 지자체마다 다양한 사업을 시도하고 있다. 전남의 한 지자체 관계자는 “예전에는 기부금을 유치하기 위해 어떤 답례품을 줄지 고민했는데 이젠 기부자들의 관심을 모으고 애향심을 자극할 사업을 구상하고 있다”고 했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243개 지자체가 고향 사랑 기부제로 모금한 돈은 총 892억원이다. 2023년(650억원)보다 37% 증가했다.

올해는 1인당 연간 기부 한도가 500만원에서 2000만원으로 4배가 돼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창원시 관계자는 “요즘 지자체들은 정부의 긴축 재정 기조와 불경기 때문에 죽을 맛”이라며 “안 그래도 살림이 팍팍한 지자체들 입장에선 새로운 수입원이 생긴 것”이라고 했다.

충남 청양군은 작년 6월 청양 정산 초·중·고의 탁구부를 후원해달라는 모금을 벌였다. 넉넉지 않은 예산 탓에 탁구채 하나 제때 바꿔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청양군 관계자는 “우리 고향의 아이들이 탁구 국가대표의 꿈을 이어갈 수 있게 도와달라고 호소했다”며 “전국 각지에 살고 있는 청양 출신들이 불같이 참여해 두 달 만에 목표액 5000만원을 넘겼다”고 했다. 청양군은 지난달 18일부터 2차 모금에 나섰다.

전북 부안군은 고향 사랑 기부금 7900만원을 모아 작년 11월 국립 새만금 간척 박물관에 ‘꿀벌 호텔’을 설치했다. 부안군은 우수한 꿀벌 품종을 길러 내는 ‘꿀벌 격리 육종장’이 있는 꿀벌의 고장이다. 하지만 최근 이상기후 현상 등으로 꿀벌이 사라지면서 인공 서식지인 ‘꿀벌 호텔’ 조성에 나섰다.

서울 은평구는 독거노인 등에게 보약을 지어 드리기 위해 고향 사랑 기부제를 활용했다. 작년 7월부터 5개월 만에 목표한 1000만원이 모였다. 은평구 관계자는 “이 돈으로 은평구에 사는 어르신 20명에게 50만원 상당의 보약을 지어드릴 계획”이라고 했다. 은평구는 대형 프로젝트 대신 소소한 사업을 잇따라 성공시키고 있다. 고향 사랑 기부금을 모아 은평구에 사는 소아암 환자들에게 가발(총 2000만원)을 사주고 폐지를 수집하는 노인들에게 식사권(총 1000만원)을 지급했다.

행안부 관계자는 “내 고향에 기부해 특산품도 받고 세금 혜택도 보자는 취지에서 시작했는데 이제는 지역의 문제를 함께 해결하는 플랫폼 역할도 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반면에 호응이 적어 울상인 곳도 있다. 경기 안성시가 작년 12월 “폭설 피해를 당한 주민들을 도와 달라”면서 시작한 모금에는 현재까지 1400여 만원이 모였다. 올 2월까지 5억원을 모으겠다고 했는데 2.7%밖에 모이지 않은 것이다.

기부자를 위한 답례품은 다양해지고 있다. 청년층이 떠나 ‘지역 소멸’ 위기에 놓인 전남 영암군은 고향에 사는 부모님의 일상을 촬영, 편집해 전송해주는 ‘부모님 일상 영상’을 답례품으로 내놨다. 경남 합천군은 ‘벌초 대행 도우미 할인권’, 부산시는 ‘공공 텃밭 분양권’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