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또 1등 당첨자가 많은 복권방은 토요일이 되면 사람들로 붐빈다. 사진=뉴시스

미국에선 복권 1등 당첨자가 나오지 않아 이월된 당첨금이 한화(韓貨)로 조(兆) 단위에 달하는 일도 있다. 한국에까지 이월 당첨금 규모가 소개돼 화제가 된다. 2024년 12월 27일에는 3개월간 누적된 ‘메가밀리언스(Mega Millions)’ 당첨금 12억2000만 달러(약 1조8000억원)를 받게 될 1등 당첨자가 나왔다.

메가밀리언스 당첨금은 전액을 29년으로 나눠 연금처럼 받거나 한번에 현금으로 절반만 받는 방식이 있다. 당첨자가 일시금을 선택할 경우 받는 돈은 5억4970만 달러(약 8114억원)로 줄어든다.

美 사상 최고 당첨금은 3조원

미국 복권 사상 최고 당첨금은 2022년 11월 추첨한 파워볼 복권 20억4만 달러(약 3조원)다. 메가밀리언스 역대 최고 당첨금은 2023년 8월의 16억 달러(약 2조3616억원)였다. 한국 복권 최고 당첨액은 2003년 4월 추첨한 로또 제19회차로 1등 당첨자는 1명, 당첨금은 407억원이었다.

미국판 로또인 메가밀리언스는 1부터 70까지 중 숫자 5개와 1~25 중 숫자 1개를 동시에 맞춰야 1등에 당첨된다. 주 2회 추첨하며, 이론상 1등 당첨 확률은 약 3억260만분의 1이다. 파워볼도 방식은 같지만 1~69 중 숫자 5개와 1~26 중 1개를 택한다. 주 3회 추첨하며 1등 당첨 확률은 약 2억9220만분의 1이다. 두 복권 모두 1게임당 2달러.

당첨자가 없어 상금이 이월돼 조 단위로 당첨금이 누적됐다는 소식을 접할 때면 ‘(만약 내가) 당첨되면 세금 문제는 어떻게 해야 하나, 세금을 너무 많이 떼가는 건 아닐까?’ ‘당첨이 된 미국에서 세금을 떼고 한국에 와 또 떼면 어떡하나. 이중과세 아닌가?’ ‘당첨금을 수령하려면 미국 은행에 계좌가 필요한데 미국 내 주소지는 어떻게 해야 하나?’ 같은 상상을 한다. ‘돈

은 많은데 알아보는 사람은 없는’ 사람이 살기 제일 편하다지 않나. 여기에 당첨자 신원이 공개되지 않는 주(州)는 어디인지, 어느 주가 세금은 덜 떼는지 찾아보기까지 한다.

당장 복권에 당첨되려면 복권부터 사야 하는데, 미국 복권은 현지에서만 구매할 수 있다. 왕복 비행기표만 백만원 이상 드는데 여기서부터 엄두가 나지 않는다. 태평양 건너에서 전해지는 ‘조 단위 누적 당첨액’ 소식은 이렇게 언제나 망상(妄想)에 가까운 상상을 유발하고, 매번 비슷한 경로로 자연스레 소멸한다.

가끔 복권을 사지만 내세울 액수의 당첨금을 ‘맞은’ 적은 없다. 꼭 당첨을 노려서라기보다, 숫자나 무늬를 덮은 ‘스크래치 잉크’를 긁어내는 손맛에 즉석식 복권도 몇 장씩 사곤 한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복권을 자주, 많이 사서 긁으면 확률이 높아질까? 취재 때문에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데, 전국에서 복권을 사 모은 뒤 한번에 모두 확인해 보면 어떨까?’

수학적으로는 어리석은 발상이다. 일주일에 한 번씩 새로운 복권을 추첨하므로 복권을 아무리 많이 사도 그 하나하나는 ‘독립 실행’에 가깝다. 당첨 확률이 유의미하게 달라지지 않는다. 동전을 90번 던져 모두 뒷면이 나왔다고 해도, 91번째에 앞면이 나올 확률이 더 높아지진 않는다. 앞면이든 뒷면이든 확률은 언제나 2분의 1로 같다. 그러나 사람은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판단만 하며 살지 않는다. 그럼에도 ‘장기적으로 복권을 모아 한번에 긁어보자’고 생각한 가장

큰 계기는 일확천금의 유혹보다 ‘복권 발행처가 밝히는 당첨 확률’이 실제와 얼마나 일치하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1만원어치 복권을 긁을 때와 100만원어치 복권을 긁었을 때를 비교하면, 후자가 정규분포에 가까운 수학적으로 더 일관된 흐름, 확률을 보여주지 않을까.

9개월 동안 전국에서 복권 수집

9개월 동안 전국에서 수집한 복권 모음. 왼쪽은 낙첨, 오른쪽은 당첨된 복권이다.

2024년 4월부터 약 9개월간 복권을 사봤다. 지역은 주로 수도권이지만 부산, 광주 등까지 다양했다. 종류는 ㈜동행복권에서 발행하는 복권 중 인터넷 전용을 제외하고 실물로 살 수 있는 즉석식 복권 ‘스피또’ 3종(500원, 1000원, 2000원), 연금복권720(이하 연금복권·1000원), 로또6/45(이하 로또·1000원)로 모두 5종이었다. 취재차 간 곳에서 동행복권 복권방이 보이면 대부분 들어가 샀다.

초반에는 ‘긁는 맛’을 느끼고 싶어 즉석복권을 많이 샀다. “팔고 남은 즉석복권을 긁었더니 1000만원에 당첨됐다”는 복권방 주인 말을 듣곤 한동안 즉석복권을 집중적으로 사기도 했다. 각각 주 1회 추첨하는 연금복권과 로또는 당첨 여부를 그때그때 확인하지 않고 수집만 했다. 로또 번호는 수동·반자동·자동 중 99% ‘자동’으로 선택했다. 가끔 꿈에 나타난 숫자가 불현듯 떠오르면 일부를 고른 후 나머지는 ‘반자동’을 택했다. 취재차 가고 오는 길에 로또를 살 때면 타고 온 버스 번호를 고르기도 했다. 수집한 복권은 침대 머리맡에 놓아뒀다. 집에서는 복권을 사놓기만 하고 왜 긁지는 않느냐는 소리도 들었다. 복권이 계속 쌓이니 “복권 살 돈 아끼는 게 복권 당첨되는 것보다 낫겠다”고도 했다.

물론 가끔은 내가 사놓은 복권이 당첨됐는지 궁금하다. 즉석복권은 긁어야만 당첨 여부를 알 수 있으니 어찌할 수 없지만, 로또는 공식 사이트에 접속해 ‘당첨자 배출 복권방’ 목록을 살펴봤다. 어떤 번호로 로또를 샀는지는 몰라도 언제 어디서 복권을 샀는지는 대충 알고 있으니 목록을 훑어봤다. 복권을 종류별로 샀지만, 누적 구매액을 일일이 기록하진 않았다. 100만원 이상 되지 않을까 추측만 하고 있었다.

지난 1월 5일, 그동안 산 복권을 한데 모아놓고 긁을 준비를 했다. 긁기 전에는 1등에 당첨될 경우, 2등에 당첨될 경우별로 지출 계획도 세웠다. 1등에 당첨될 경우에 대비해 유럽에서 한 달 살기에 필요한 비용을 계산하고 여행 경로와 숙소, 항공편까지 알아봐 뒀다.

끌개 주문해 긁어보기도

‘손맛’을 느끼려고 즉석복권부터 긁었다. 긁는 데는 50원짜리 동전부터 시작해 100원짜리, 500원짜리를 써봤다. 처음엔 긁는 맛도 나고 재밌었지만 갈수록 지루해졌고, 긁는 단순 반복 작업이 쉽지도 않았다. 인터넷 쇼핑몰에 1만원짜리 ‘끌개(스크레이퍼)’라는 게 있어서 주문했는데 역시 맘에 들지 않아서 다시 100원짜리 동전으로 계속 긁었다.

1000원짜리 즉석복권은 ‘행운의 숫자’와 나의 숫자 6개 중 하나가 일치하면 당첨인데 직관적으로 숫자를 보고 당첨 여부를 확인하기 쉽다. 2000원짜리는 숫자 대신 ‘행운그림’ 2개가 일치하면 당첨인데, 그림 모양이 비슷해 헛꿈을 꾸게 하는 일도 잦았다. 절반쯤 긁어냈을 땐 두 그림이 비슷해 보이는데 다 긁어내고 보면 다른 그림인 식이다. 이럴 땐 허탈감이 밀려온다. 처음에는 표면을 덮고 있는 스크래치 잉크를 남김없이 긁어냈다. 긁어낸 잉크가루가 흩날리는 바람에 방바닥이 새까매졌다. 한참 해보니 귀찮기도 하고 요령도 생겨, 숫자와 그림, 당첨 액수를 식별할 수 있는 부분만 대충 긁었다.

1000원짜리는 최소 당첨 금액이 1000원, 2000원짜리는 2000원이니 어쩌다 그 액수가 걸리면 그 복권은 본전을 건진 셈이다. 복권당 당첨 금액은 한 번만 표기돼 있어서, 1000원이나 2000원 당첨된 게 먼저 보이면 살짝 짜증이 나기도 했다. 더 긁어봤자 더 나올 게 없기 때문이다. 본전이나마 건지고도 불만을 느끼는 이 인간 심리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확률 가중치 왜곡

이런 나의 ‘심보’가 나도 궁금해서 며칠 동안 공부를 해봤다. 행동경제학과 심리학에서는 이런 심리를 크게 ▲전망이론(Prospect Theory) ▲후회 회피(Regret Avoidance) ▲손실 회피(Loss Aversion) ▲확률 가중치 왜곡으로 설명한다. 전망이론은 본전 당첨이 객관적으로 손실이 아님에도 더 큰 당첨금에 대한 기대와 비교해 손실로 인식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 후회 회피는 ‘더 큰 당첨금을 놓쳤을지도 모른다는 후회’를 피하고자 불만을 느낄 수 있다고 본다. 손실 회피도 후회 회피와 유사하다. 본전을 찾아 손실은 피했지만, 기대했던 이득을 얻지 못해 불만을 갖는다는 해석이다. 확률 가중치 왜곡은 사람들이 작은 확률은 과대평가하고 높은 확률은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큰 당첨금에 대한 기대가 비현실적으로 높아지기에 본전만 갖고는 만족하지 못한다는 의미다.

연금복권은 회차당 1조(組)부터 5조까지 조별로 200만 매, 총 1000만매가 복권방과 인터넷에서 500만매씩 동등하게 판매된다. 1등에 당첨되려면 조번호와 나머지 0~10 중 고른 6개, 모두 7개 숫자가 일치해야 하므로 당첨 확률은 500만분의 1이다. 통상 복권방에선 6개 숫자가 같고 조만 다른 5장을 한 묶음으로 판매한다. 그중 한 장이 1등에 당첨되면 나머지 4장도 ‘보너스’(조만 다르고 6개 번호 일치)에 당첨되기 때문이다. 보너스 당첨 확률은 100만분의 1이다. 물론 낱장으로 살 수도, 인터넷에서 일일이 번호를 지정할 수도 있다.

연금복권은 마지막 자리가 가장 중요

연금복권과 로또(1~45 중 6개)는 회차별로 일일이 번호를 대조하지 않고도 용지에 인쇄된 QR코드로 당첨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연금복권은 맨 뒤부터 연속으로 1개, 2개, 3개… 식으로 당첨금이 있으므로 당첨을 확인할 때 가장 중요한 숫자는 마지막 자리 숫자다. 처음에는 복권을 일일이 사진 찍어 QR로 확인하다가 나중에는 요령이 생겨, 끝자리가 다르면 더 찍지 않고 낙첨으로 제쳐놨다. 예를 들어 당첨 번호가 ‘1조 123456′인데 내 복권이 ‘1조 123457′이면 그냥 꽝이기 때문이다.

9개월 동안 쌓아둔 복권은 총 1381매였다. 즉석복권 500원짜리 4매(2000원), 1000원짜리 152매(15만2000원), 2000원짜리 128매(25만6000원), 연금복권 668매(66만8000원), 로또 429게임(42만9000원)으로 총 구매액은 152만7000원, 한 달 평균 약 17만원, 주당 약 4만원을 지출했다. 틈틈이 복권을 긁고 정리하고 당첨금을 확인하는 데 사흘이 걸렸다.

500원짜리 즉석복권 당첨금은 ▲1등 2억원(당첨 확률 400만분의 1) ▲2등 100만원(20만 분의 1) ▲3등 5000원(66.7분의 1) ▲4등 500원(3분의 1)인데, 4매 중 4등 하나에 당첨됐다. 2000원 지출 중 500원을 건져 당첨률 4분의 1, 손실률 75%다.

1000원짜리 즉석복권은 당첨금이 ▲1등 5억원(500만분의 1) ▲2등 2000만원(100만분의 1) ▲3등 1만원(181.8분의 1) ▲4등 5000원(40분의 1) ▲5등 1000원(3분의 1)이다. 152매를 구입했을 때, 복권 발행처가 밝힌 확률에 따라 수학적으로 기대할 수 있는 당첨금은 7만7976원(1등 152원, 2등 304원, 3등 8360원, 4등 1만900원, 5등 5만160원)으로 예상 원금 손실 7만4024원, 기대손실률 48.7%다.

기자는 152 매 중 52매가 당첨됐다. 3등 2개(2만원), 4등 3개(1만5000원), 5등 47개(4만7000원)로 총 8만2000원이었다. 등수별 당첨률은 3등 1.32%, 4등 1.97%, 5등 30.9%로 발행처가 밝힌 확률과 근사했다. 손실 금액은 7만원으로 손실률 약 46%.

2000원짜리 즉석복권 당첨금은 ▲1등 10억원(500만분의 1) ▲2등 1억원(166만분의 1) ▲3등 1000만원(20만분의 1) ▲4등 2만원(363분의 1) ▲5등 4000원(14.3분의 1) ▲6등 2000원(3.6분의 1)이다. 128매를 구입했을 때 발행처가 밝힌 확률에 따른 기대당첨금은 총 11만4764원(1등 256원, 2등 76원, 3등 640원, 4등 7040원, 5등 3만5840원, 6등 7만912원), 기대손실률 55.2%다.

기자는 128매 중 5등 9매(3만6000원), 6등 36매(7만2000원)로 45매가 당첨됐다. 총 당첨 금액 10만8000원, 등수별 당첨률은 5등 7%, 6등 28.1%로 발행처가 밝힌 확률과 근사했다. 손실률은 약 57.81%였다.

최고 당첨액은 5만원 총 8회

로또 4등과 5등에 당첨됐다. 당첨금은 5만5000원. 큐알 코드로도 복권 당첨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연금복권 당첨금은 ▲1등 월 700만원×20년(500만분의 1) ▲2등 월 100만원×10년(250만분의 1) ▲3등 100만원(11만1111분의 1) ▲4등 10만원(1만1111분의 1) ▲5등 5만원(1111분의 1) ▲6등 5000원(111분의 1) ▲7등 1000원(11분의 1) ▲보너스 월 100만원×10년(100만분의 1)이다.

668매를 구입했을 때 기대당첨금은 16만5931원(1등 2만2444원, 2등 3206원, 3등 6012원, 4등 6012원, 5등 3만60원, 6등 3만60원, 7등 6만120원, 보너스 8016원), 예상 손실률 75.2%다.

연금복권은 658매 중 89매가 당첨됐다. 5등 5매(25만원), 6등 14매(7만원), 7등 70매(7만원)로 총 당첨 금액은 39만원, 등수별 당첨률은 5등 0.76%, 6등 2.13%, 7등 10.68%였다. 손실률 40.73%로, 5등 5장이 무더기로 당첨된 덕에 반타작 이상을 했다.

로또 1~3등 당첨금은 그 회차 총 판매액과 지급액에 따라 가변적이다. 기대확률은 1등 약 815만분의 1, 2등 약 136만분의 1, 3등 3만5724분의 1이다. 이하는 정액으로 4등 5만원(733분의 1), 5등 5000원(45분의 1)이다.

1등 20억원, 2등 3000만원, 3등 150만원이라고 가정했을 때 기대당첨금은 7만9221원(1등 1029원, 2등 939원, 3등 1738원, 4등 2만7885원, 5등 4만7628원), 기대손실률은 81.5%로 기자가 산 5가지 복권 중 밑질 확률이 가장 높다.

로또 429게임 중에서는 18게임이 당첨됐다. 4등 3개(15만원), 5등 15개(7만5000원)로 총 당첨 금액 22만5000원, 등수별 당첨률은 4등 0.72%, 5등 3.58%, 손실률 46.3%로 기댓값보다 선방했다.

1381매 152만7000원어치를 사서 당첨금 80만5000원, 손실은 72만2000원으로 총 손실률은 47.28%였다. 5만원짜리가 연금복권에서 5장, 로또에서 3장 나온 덕에 손실을 크게 줄였다.

복권 긁기 전 세운 ‘유럽 한 달 살기 계획’은 말 그대로 계획으로 끝났지만 몇 가지 교훈을 얻을 수 있었다.

‘일확천금은 쉽게 오지 않는다. 그럼에도 복권에 당첨되려면, 우선 복권은 사야 한다. 단, 많이 구매한다고 더 많이 당첨되진 않는다. 당첨 여부를 손쉽게 알려면 연금복권이나 로또를 권한다.’

전문가들은 “복권을 건강하게 즐기기 위해선 소득의 1% 미만만 투자해야 한다”고 한다. 일주일에 만원어치 정도라면 일확천금의 기대 속에 한 주를 살아가는 원동력 삼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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