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산청에서 발생한 산불 9일째인 29일 산림 당국이 마지막 남은 화선인 지리산권역 주불 진화를 목표로 진화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사진은 이날 오전 6시경 산청군 황점마을 일대의 모습./연합뉴스

“경사도 30도 지형에서 초속 6m 바람이 불면 바람이 없는 평지 조건과 비교해 약 79배까지 불이 더 빨리 확산합니다. 지리산 현장은 이보다 더 하죠.”

경남 산청에서 발생한 산불이 9일째 이어지는 가운데 지리산으로 번진 불길이 잡힐 듯 잡히지 않고 있다. 헬기가 물을 뿌리고 간 산자락에는 여전히 흰 연기가 연신 피어오르고 있다.

육군 39사단 장병들이 29일 새벽 경남 산청군 산불 현장에서 산불 진화 작업을 펼치고 있다. /육군 제39보병사단

산림청 국립산림과학원 소속 권충근 박사는 “지리산 현장의 경사가 매우 급한데다, 진화 요원이 접근할 진입로(임도)가 없어 어려움이 크다”고 했다.

29일 경남 산청 산불현장통합지휘본부에서 지리산 산불이 지속하는 원인을 설명하고 있는 권충근 박사. /산청=김준호 기자

경사가 심한 곳에서 발생한 산불은 확산 속도가 가속화된다고 한다. 이는 불길이 상승하는 성질이 있기 때문.

권 박사에 따르면 경사도 30도 지형에서 초속 6m 바람이 불 경우 바람이 없는 평지에서 발생한 불에 비해 확산 속도가 79배 빠르다. 급한 경사에서는 불길이 더욱 위로 빠르게 올라가고, 바람까지 강하게 불면 더욱 빨라질 수밖에 없다. 산림청은 산불 브리핑 때마다 “경사는 곧 풍속과 비슷하다”고 설명하고는 했다.

지리산으로 번진 산불 현장은 환경이 열악하다. 천왕봉 턱밑까지 접근한 불길을 잡기 위해 방화선을 구축하러 갔던 한 산불진화대원은 “손으로 땅을 짚어서 가야 할 정도로 가파르다. 경사도가 40도가 넘는 구간도 많다”면서 “바람도 순간적으로 초속 15m 안팎으로 불고, 계곡 쪽에는 돌풍이 불 때도 있다”고 했다.

지난 26일 밤부터 27일 새벽 사이 산림청 공중진화대, 산림청 산불재난특수진화대가 산청군 시천면 동당리에서 지리산 국립공원 방향과 민가로 옮겨가는 불길을 저지하기 위해 사투를 벌이고 있다. 이곳은 큰 경사와 두터운 낙엽층, 산죽(키작은 대나무)으로 인해 진화에 어려움을 겪는 지역이다./산림청 제공

두터운 낙엽층도 지리산에 번진 불이 계속 살아나는 데 일조하고 있다. 국립산림과학원 연구진이 지난 28일 밤부터 29일 새벽 사이 지리산 산불 현장을 직접 조사한 결과 현장에 쌓인 낙엽층 깊이는 최대 1m 정도였다. 성인 허리 높이다. 권 박사는 “1ha로 보면 300~400t의 연료량이 쌓여 있는 셈이다”고 했다.

여기에 두터운 낙엽층 내부로 바람에 날린 불씨가 침투하면서 새롭게 불이 붙는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현장에는 활엽수인 굴참나무와 침엽수인 소나무가 빽빽하게 자라고 있다고 한다. 남송희 국제산림협력관은 “헬기가 공중에서 물을 아무리 뿌려도 고밀도의 숲 때문에 실제로 지표면까지 물이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면서 “공중진화대 등 사람이 직접 들어가 불을 끌 수밖에 없다”고 했다.

육군 39사단 장병들이 29일 새벽 경남 산청군 산불 현장에서 산불 진화 작업을 펼치고 있다. /육군 제39보병사단

산불 현장까지 인력과 장비가 접근할 진입로도 부족하다. 사실상 길을 새로 뚫으면서 현장에 접근하는 상황이다.

산림청은 “급경사지와 고밀도의 숲 구조로 효과적인 진화가 어렵고, 진입로 부족으로 진화대원과 장비 투입에 어려움이 크다”면서 “이번 산불을 계기로 대용량 산불진화 헬기 등 장비 확대, 적절한 수목 밀도를 조절하는 숲 가꾸기, 임도 추가 개설, 전문진화요원 양성 등의 필요성이 확인됐다”고 했다.

28일 오전 11시30분 경남 산청 산불 진화를 위해 투입된 육군과 공군의 치누크 헬기가 인근 산청양수 상부댐에서 물을 담고 있다./산청=김준호 기자

한편, 지리산으로 번진 산청 산불은 오후 3시 기준 진화율이 99%다. 남은 불길은 약 1km다. 지리산 천왕봉(1915m)과 직선거리로 4.5km까지 근접했던 불길은 총력전을 벌여 약 2km 뒤로 후퇴시켰다고 한다. 진화율은 높지만 바람에 불씨가 이리저리 날리는 비산화(飛散火) 때문에 안심하기는 이른 상황이다. 산림청 소속 공중진화대·특수진화대 등 전문 진화 인력을 중심으로 지상에서 잔여 불길을 제거하는 중이다.

공중에서는 주한미군·육군·공군의 치누크 헬기를 비롯한 54대의 헬기가 지리산국립공원 안으로 번진 불길을 잡기 위해 물 폭탄을 쏟고 있다. 경남도 관계자는 “9일째 얼마나 물을 퍼날랐는지, 저수지 물이 말라갈 정도”라고 했다.

28일 오전 11시30분 경남 산청 산불 진화를 위해 투입된 육군과 공군의 치누크 헬기가 인근 산청양수 상부댐에서 물을 담고 있다. /김준호 기자

이번 불로 인한 피해 면적은 1858ha다. 지리산국립공원 내 산림 132ha도 불에 탄 것으로 추정된다. 축구장 184개 크기다.

지난 22일 불을 끄러 현장에 투입된 창녕군 소속 산불진화대원 등 4명이 숨지고, 10명이 다쳤다. 이제까지 2135명의 이재민이 발생했고, 주택 등 83곳이 불에 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