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 당시 북한 인민군이 국군 부상병과 우리 측 민간 환자 최소 330명 이상을 총살한 ‘서울대병원 학살 사건’에 대해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가 ‘집단 학살’로 8일 규정했다. 진실화해위는 정부에 북한 당국의 공식 사과 요구 및 피해 구제책 마련 등을 촉구할 예정이다. 정부의 이번 사건 규명은 전쟁 전후 민간인·군인 희생의 진상을 규명하겠다며 설립된 독립 조사 기관인 진실화해위가 지난 2005년 출범한 지 20년 만에야 이뤄졌다.

이 사건은 서울대병원 간호 보조원으로 일하면서 사건을 목격한 고(故) 유월임씨 조카 최롱(82)씨가 지난 2022년 6월 진실 규명을 신청해 그해 9월 조사가 시작됐다. 진실화해위는 미 극동사령부 ‘한국전쟁범죄조사단(Korean War Crimes Division·KWC)’이 북한 포로 심문 및 사건 목격자 진술 등을 종합해 작성한 80쪽짜리 결과 보고서와 현장 조사 및 기타 문헌 자료를 비교·대조하는 방식으로 이 사건을 확인했다.

8일 오후 서울 중구 진실화해위원회에서 열린 제104차 전체위원회에서 박선영 위원장이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박성원 기자

이번 사건에서 유일하게 실명(實名)이 확인된 희생자는 조용일 소령이다. 육사 2기로 육군병참학교 부교장이었던 조 소령은 사건 당시 병원 경비 임무 수행 중 실종됐다. 유해도 지금까지 수습하지 못하고 있다. 조 소령의 딸 조성희씨는 지난 2010년 본지 인터뷰에서 “그해 6월 25일 아침 일찍 아버지가 비상전화를 받고 급히 출근했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며 “밀고 내려온 인민군들이 사람들을 잡아다가 인민재판을 열어 많은 사람들 앞에서 총으로 쏴 죽였다”고 했다. 이날 진실화해위는 북한 인민군들이 희생자들을 매장했다는 서울대병원 뒷산에 대한 정부의 유해 발굴이 필요하다고 권고했다.

이 사건 전말은 KWC 보고서 등으로 외부에 이미 공개돼 있었다. 1963년 서울대병원 후문에는 ‘이름 모를 자유전사(自由戰士)비’라는 제목의 위령비도 건립됐지만, 그러나 국가보훈부가 이 위령비를 현충 시설로 지정한 건 사건 60여 년이 지난 2012년이었다.

8일 오후 서울 중구 진실화해위원회에서 열린 제104차 전체위원회에서 박선영 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박성원 기자

당초 진실화해위는 지난달 25일 소위원회에서 희생자 규모를 1000명으로 추정해 안건을 통과시켰다. 서울대병원 병상이 800개에 달했고 병상은 물론 복도까지 환자들로 가득했다는 증언 및 공식 문건 등을 기반으로 한 추정치였다. 그러나 이날 전체회의에서는 희생자를 ‘최소 330명 이상’이라고 규정했다. 진실화해위 관계자는 “희생자를 200명 수준으로 규정한 미군 KWC 보고서는 전범(戰犯) 재판 기소를 염두에 두고 작성됐기 때문에 희생자 규모가 과소 평가된 측면이 있다”며 “당시 입원 환자가 1000여명이고, 그중 330명 이상이 희생된 것으로 조정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