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항공사 기장과 부기장이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과 탄핵에 대한 정치적 견해 차로 주먹다짐을 벌여 운항 업무에서 배제되고 결국 파면됐던 사실이 8일 알려졌다.

항공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19일 인천발 호주 브리즈번행 노선 운항을 마친 대한항공 소속 기장과 부기장은 호주 현지 호텔에서 휴식을 취하며 정치 관련 대화를 나누다 주먹다짐을 벌였다.

평소 정치 성향이 달랐던 이들은 같은 달 3일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와 14일 탄핵소추안 국회 가결 등을 주제로 대화를 나눈 것으로 전해졌다.

말싸움이 쌍방 폭행으로 번지면서, 호주 경찰까지 현장에 출동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다툼으로 기장은 부상을 당해 현지 병원으로 옮겨졌고 부기장도 다쳤다고 한다. 이 때문에 두 사람은 다음 운항 일정에 투입되지 못했다. 대한항공 측은 “두 사람 모두 다음 날 운항 일정이 없었고, 즉각 인근 공항에서 대체 조종사를 보내 운항에는 지장이 없었다”고 밝혔다. 비행기 조종석(cockpit) 내에서 기장과 부기장은 철저한 상하 관계다. 공군사관학교를 졸업한 조종사 출신도 많기 때문에 군 선후배인 경우도 많다.

대한항공 측은 지난달 초 이 사건과 관련해 중앙상벌위원회를 열고 관련자들에게 중징계 처분을 내렸다. 사건에 연루된 기장과 부기장은 파면됐고, 당시 현장에 있던 같은 팀 기장 1명은 3개월 정직 처분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8시간 이상 장거리 비행은 기장 2명과 부기장 1명이 한 팀으로 편성된다.

회사 측은 승무원이 현지에 체류하며 다음 비행을 준비하는 레이오버(lay over) 기간에 충분한 휴식을 취해야 함에도 안전 관련 문제가 생겼고, 불미스러운 소동으로 회사의 품위를 손상시켰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대한항공 측은 “동일 사안이 재발하지 않도록 사내 지침을 다시 강조하고 내부 교육도 진행했다”고 밝혔다.

한편 파면 처분을 받은 조종사들은 회사의 결정에 불복해 지방노동위원회에 진정서를 제출할 계획으로 전해졌다. 조종사들은 지방노동위와 중앙노동위를 거쳐서도 복직이 어려울 경우 소송도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동료 조종사 약 700명도 “징계 수위가 과하다”는 취지의 서명 운동을 벌인 후 회사 측에 의견을 전달했다. 파면은 최고 수위의 징계로, 불명예 퇴직인 만큼 퇴임 후 일부 복지에 제한이 있고 타사 취업에도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대한항공 조종사 노동조합 관계자는 “경영진이 본보기 차원에서 단호하게 결정했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파면까지 된 것에 대해서는 조종사 사회에서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