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밤 서울 마포구 공덕동의 한 아파트 전경. 늦은 밤까지 옥상 조명이 환하게 켜져 있다. 근처 아파트 주민들은 “불빛 때문에 잠을 설치고 있다”고 했다./한영원 기자

“스타워즈 ‘광선 검’ 같은 빛줄기가 안방까지 들어오는데 잠이 오겠냐고요.”

경기도 수원 인계동의 한 아파트 주민 전인규(31)씨는 2년 전부터 밤을 잃었다며 한숨을 쉬었다. 전씨 집에서 도로 하나를 두고 25m 떨어진 3000여 세대 신축 아파트 옥상·외벽에 설치된 조명 때문이다. 전씨는 “씻고 나와 자려는데 훤한 거실을 보면 울화가 치민다”고 했다. 전씨와 같은 단지에 사는 이종근(49)씨는 참다못해 한 달 전 안방과 서재에 암막(暗幕) 커튼을 달았다. 그는 “눈이 부셔 제대로 잠을 못 잔 지 오래”라며 “구청에 민원 전화도 수십 번 넣었는데 소용이 없어 체념하고 산다”고 했다.

전국 신축 아파트 주민들 사이에서 ‘빛의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매일 밤 외부 조명이 뿜어내는 강렬한 인공 불빛이 건너편 단지 주민들을 잠 못 들게 하면서 곳곳에서 부글부글 끓고 있는 것이다. 일부 아파트 조명 밝기는 1000칸델라(1칸델라는 촛불 하나만큼의 밝기)를 넘는 경우도 있다. 이는 도심 번화가 네온사인 평균 밝기(120칸델라)의 8배 이상이다. 본지는 지난달 24일부터 지난 6일까지 서울 및 광교·검단 등 신축 아파트 15개 단지를 둘러봤다. 그 결과 “야간 불빛이 층간 소음보다 더 견디기 힘들다”고 호소하는 주민들과 “우리 돈으로 아파트 내에서 불 켜겠다는 데 어쩔 거냐”는 양측 공방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었다. 이들 사이에 낀 지자체들은 뾰족한 대책 없이 쩔쩔매고 있다.

인천 서구 검단신도시에 있는 400여 세대 A 아파트는 최근 맞은편 B 아파트 조명 때문에 소송 직전까지 갔다. B 아파트 옥상 조명이 밤새 켜져 있어 A 아파트 주민들이 ‘불 좀 꺼달라’고 했지만 요지부동이었다. 민원이 쏟아지자 서구청은 지난 2월 저녁 7시 30분 조도(照度) 측정기를 들고 B 아파트로 출동했다. 그러나 이 사실을 미리 안 B 아파트가 조명을 미리 꺼버려 허탕 쳤다. 구청 관계자는 “간담회를 열어 밤 11시 이후엔 조명을 끄기로 막판에 합의해 대규모 소송전을 겨우 막았다”고 했다.

외부 불빛이 창문을 통해 집 안으로 들어오는 ‘침입광’은 숙면을 방해한다. 이러한 상황이 장기간 이어지면 면역력이 낮아지면서 질병 위험도 높아진다. 밝은 조명으로 인한 피해를 미국에선 ‘빛 공해(light pollution)’라고 부른다. 빛 공해가 심한 곳에서 살 경우 암 발병 위험이 증가한다는 국내 조사도 나왔다.

이웃 단지가 아닌 ‘내 단지’ 조명으로 빛 피해를 보는 경우도 있다. 서울 수색동 신축 아파트에 사는 이희규씨는 화단에 줄지어 세워져 있는 높이 1.5m 정원등 때문에 매일 밤이 힘들다. 매일 오후 7시가 되면 켜지는 정원등이 1층에 살고 있는 이씨 집안을 훤히 비추기 때문이다. 잠 못 드는 밤이 길어지면서 이웃 단지 간 ‘맞조명’까지 켜가며 신경전을 벌이는 곳도 있었다. 외벽 조명을 24시간 켜두자 맞은편 아파트에 항의하기 위해 똑같이 밤새 조명을 켜는 식이다.

환경부에 따르면 전국에서 ‘빛 공해’로 접수된 민원은 2019년 6605건에서 2023년 7594건으로 4년 만에 15% 증가했다. 특히 검단신도시(2018), 계양신도시(2019)가 들어선 인천과 광교신도시(2019), 위례신도시(2020)가 조성된 경기도 수도권에서 민원 접수가 각각 239건에서 354건, 1221건에서 1631건으로 48%, 33.6%씩 늘었다.

그래픽=양진경

이웃 주민들과 갈등을 감수하면서까지 ‘야간 조명’을 고집하는 이유에 대해 물었다. 상당수가 ‘아파트 브랜드 가치’ 때문이라고 했다. 수도권 신도시 아파트 주민 이모(40)씨는 “아파트 로고에 밝은 조명을 비추면 아파트가 더 세련돼 보이지 않느냐”며 “(조명이) 아파트 가격 상승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반면 조명 비용을 아파트 전 세대가 나누다 보니 고물가 시대에 부담된다는 주민도 적지 않다.

환경부는 지난 2013년 ‘인공조명에 의한 빛 공해 방지법’을 만들고 과도한 조명으로 피해를 끼친 측에 과태료 처분을 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강제 조치로 이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지난 2023년 전국에서 쏟아진 빛 공해 민원 7594건 중 실제 과태료 처분이 내려진 건 3건뿐이다. 과태료도 20만~30만원 수준에 불과하다. 환경부 관계자는 “되도록이면 이웃들 간 대화를 통해 중재로 이끄는 게 최선”이라고 했다.

영국은 지난 2005년부터 인공 조명이 이웃 주민들의 숙면과 휴식을 심하게 방해하거나 건강에 악영향을 미친다고 지자체가 판단할 경우 조명 밝기를 낮추도록 시정 명령을 내리거나 아예 조명을 없애도록 하는 법을 만들었다. 미국 애리조나주는 150와트 이하 백열 전구와 70와트 이하 조명을 제외하고는 모든 실외 조명 기구를 금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