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지난 3일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하 전교조)에 대한 2013년 박근혜 정부의 ‘법외(法外)노조’ 처분이 위법하다고 판결한 것을 두고 법조계에선 “법의 최후 보루라는 대법원이 되레 법을 흔들고 있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최고 사법기관 대법원이 결론에 짜맞춘 법리 해석으로 사건의 본질을 뒤덮는 판결을 잇따라 내놓아, 우리 사법체계와 법 질서의 안정성을 오히려 해치고 있다는 것이다. 이번 전교조 판결이 그 대표 사례라는 지적이다.
노동조합법 제2조는 ‘근로자가 아닌 자의 가입을 허용하는 경우에는 노동조합으로 보지 아니한다’고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헌법재판소(이하 헌재)와 이 사건 1·2심은 이 조항에 따라 해직 교원 9명을 조합원으로 둔 전교조에 대한 정부의 법외노조 조치가 적법하다고 판단했다. ‘해직 교사 조합원’을 고수하는 전교조의 불법 행위가 이 사건의 본질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김명수 대법원은 전교조에 대한 법외노조 통보 조치가 법이 아닌 하위 시행령에 근거했기 때문에 위법이라며 헌재 판단을 180도 뒤집었다. 이 판결로 본질인 전교조의 불법은 덮이고, 박근혜 정부의 ‘위법’만 부각됐다. 법조계에서 “대법원이 전교조를 위해 법을 창조했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현 정권 들어 대법원이 ‘진보 대법관’들로 채워지면서 이런 ‘코드 사법’ 경향은 더 뚜렷해졌다. 대법원은 최근 항소심에서 불법 정치자금 혐의로 당선 무효형을 받았던 은수미 성남시장 사건에서 검사가 항소 이유를 제대로 적지 않았다면서 항소심을 파기했다. 그 전까지 문제 없던 법원 관례를 갑자기 문제 삼은 것이다. 지난 7월엔 TV 토론회에서 거짓말한 이재명 경기지사에게 ‘적극성이 없었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한 전직 대법관은 “대법원이 시류 영합적 판결로 법의 경계를 스스로 허물고 있다”고 말했다.
대법원의 이번 전교조 판결은 그동안 법외노조 처분 취소를 위해 각종 소송을 벌인 전교조도 생각하지 못한 법리였다. 전교조는 2014년 이 사건 2심이 진행 중일 때 “현직 교원만 교원 노조에 가입할 수 있게 한 교원노조법 2조 등이 노동 3권을 지나치게 침해한다”며 위헌법률심판을 신청했다. 전교조도 현행법하에선 정부의 ‘법외노조’ 처분이 적법하다고 보고, 헌재에서 위헌 판단을 받아 그 근거법 자체를 무효화하려 한 것이다.
이에 대해 헌재는 2015년 “현직 교원이 아닌 사람이 교원노조의 의사 결정에 개입하면 노조의 자주성을 해할 수 있다”며 이 법 조항에 대해 합헌(合憲) 결정을 내렸다. 그런데 김명수 대법원이 ‘시행령에 근거했기 때문에 위법’이라는 법 해석으로 전교조 법외노조 처분을 무효화했다. 법원장 출신 변호사는 “전교조가 대법원의 이번 판결 논리를 알았다면 먼저 헌법소원 등을 냈을 것”이라며 “대법원 판결은 전교조 합법화라는 목적을 위해 법 기술을 부린 ‘기교 사법‘의 전형”이라고 말했다.
대법원이 적용하는 법리가 사람, 단체에 따라 제각각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대법원은 전교조 법외노조 처분 무효 논리로 ‘법률 유보’라는 헌법 원칙을 내세웠는데, 전교조의 노동 3권 같은 기본권을 제한할 때는 법률에 근거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대법원은 지난 6월 한 기업인 사건에선 이 원칙을 적용하지 않았다. 주식회사를 운영하는 이모씨는 2011년 자기 형에게 회사 주식을 75억원어치 양도했는데, 국세청은 이를 ‘특수관계인 간 거래’로 보고 주식 양도가액에 30%를 할증한 금액으로 세금을 물렸다. 그런데 ’30% 할증‘은 소득세법에는 명시돼 있지 않고 하위 시행령에 근거한 것이었다. 이번 ‘전교조 판단’대로라면 이 경우에도 ‘국세청이 이씨의 기본권(재산권)을 법이 아닌 시행령에 근거해 침해했으므로 위법하다’고 판결해야 했지만, 당시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법률의 위임 범위 안에 있는 적법 조치”라고 했다. 한 원로 변호사는 “대법원이 내 편 불이익은 위법이고, 네 편 불이익은 적법이라는 고무줄, 정치 판결을 계속하고 있다”고 했다.
김명수 대법원의 ‘코드 판결’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대법원은 지난 7월 2018년 지방선거 TV 토론회에서 ‘친형 강제 입원’ 논란과 관련한 상대 후보의 질문에 “그런 일 없다”고 거짓말한 이재명 경기도지사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 지시가 상대방의 질문을 직권남용 등 위법을 저질렀느냐고 이해했을 수도 있다’는 게 이유였다. 일선 판사들은 “대법원이 이 지사의 머릿속을 들여다본 관심법(觀心法) 판결을 했다”고 비판했다. 같은 달 대법원은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항소심에서 당선 무효형을 선고받은 민주당 소속 은수미 성남시장 사건도 파기했다. 검사가 항소하면서 1심 양형이 부당한 이유를 구체적으로 항소장에 적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한 고등법원 판사는 “검사가 항소장에 ‘양형부당’이라고 적은 것은 오랜 실무 관례인데 납득할 수 없다”고 했다. 이 역시 대법원이 그동안 문제시되지 않았던 지엽적 절차를 문제 삼아 본질인 은 시장의 ‘불법 정치자금' 혐의를 덮은 사례라 할 수 있다.
김명수 대법원은 작년 11월엔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을 ‘악질 친일파’ ‘썩은 돌대가리’로 규정한 다큐멘터리 ‘백년전쟁’에 대해 “주요 내용이 객관적 사실과 합치돼 문제가 없다”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작년 3월 ‘여순 사건’에 대해 71년 만에 재심 개시 결정을 내렸다. 1948년 당시 전남 여수·순천 지역의 반란군과 협조했다는 이유로 가족이 사형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유족의 요구를 받아준 것이다. 이 자체는 문제가 없다. 다만 이를 뒷받침할 만한 관련 수사 기록이나 재판 기록이 없었다. 재심은 확정 판결의 효력을 없애는 절차여서 새로운 사실이나 수사 기관의 고문 등이 명확히 확인됐을 경우에만 제한적으로 허용된다. 그런데 대법원은 ’22일 만에 사형이 선고되고 집행된 점 등을 볼 때 불법 체포 감금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는 추정을 재심 사유로 삼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