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낙태죄(罪) 자체는 유지하되 임신 14주까지는 낙태를 허용하는 법률 개정안을 7일 입법 예고한다. 헌법재판소가 작년 4월 임신 초기 낙태까지 처벌하도록 한 형법상 낙태죄에 대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고 올 연말까지 관련 법 조항을 개정하라고 한 데 따른 것이다. ‘태아 생명권’과 ‘여성의 자기 결정권’이라는 상호 충돌하는 가치를 놓고 여성 단체와 종교계 등에서 찬반(贊反) 논란이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법무부에 따르면, 7일 입법 예고될 형법·모자보건법 개정안은 임신 초기인 14주까지는 임산부의 임신 중단(낙태)을 처벌하지 않는 것이 골자다. 성범죄, 산모 전염병 등에 따른 임신·출산 등 특정한 사유가 있는 경우엔 임신 중기(中期)인 24주까지도 임신 중단이 가능하다는 내용도 포함된다. 정부는 입법 예고가 되는 날부터 40일 이상 의견 수렴을 거친 뒤 국회에 법안을 제출하게 된다.
헌재는 태아가 모체를 떠나 생존할 수 있는 시점을 ‘임신 22주 내외’로 판단했다. 22주 이후로는 조기 출산을 하더라도 태아가 생존할 수 있는 만큼, 이를 생명권 출발의 기점으로 판단하고 낙태 허용 최대 기한으로 정했다. 이번 정부 개정안은 헌재 결정보다 낙태 허용 기한을 더 좁힌 셈이다. 헌재의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작년 중순부터 검찰은 임신 12주 내에 성범죄 등 불가피한 사정으로 낙태를 한 피의자에 대해선 기소유예 처분을 내려왔다. 기소유예는 혐의가 인정되지만 여러 상황을 감안해 피의자를 재판에 넘기지 않는 것이다.
정부는 그간 낙태죄 처벌 조항을 삭제할지, 아니면 낙태죄는 유지하되 특정 임신 기간을 넘겨 이뤄진 낙태를 처벌할지를 논의해왔다. 정부 관계자는 “14주라는 ‘주수(週數) 기준’에 따라 낙태를 허용하기로 한 이번 방안은 일종의 절충안”이라며 “암암리 이뤄지는 낙태를 일부 합법화해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하면서 태아의 생명권도 보호하자는 취지”라고 했다. 보건복지부의 ‘인공 임신중절 수술 실태조사’(2018)에 따르면 한국의 낙태율은 가임기 여성 1000명당 15.8건으로 나타났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셋째로 높다.
정부안에 대해 ‘낙태죄 전면 폐지’를 주장해 왔던 여성 단체들은 반발하는 분위기다. ‘모두를 위한 낙태죄폐지 공동행동’의 나영 공동집행위원장은 “국제기구에서도 (낙태) 규제 조항 폐지를 요구·권고하는 상황에서 한국 정부가 형법 유지를 선택한 것 자체가 후퇴”라고 했다. 반면 종교계는 ‘사실상의 낙태 전면 허용’이라고 반대하고 있다. 최정윤 낙태반대운동연합 사무처장은 “낙태를 허용하는 기간을 임신 14주까지로 정한 것은 전면 허용이라고 봐야 한다”고 했다. 김동석 산부인과의사회 회장은 “낙태 상담을 하다가 낙태 기준 날짜를 넘기는 경우 등 예외적인 부분에 대한 보완이 필요한데 의료계 의견은 충분히 수렴되지 않았다”고 했다. 정부 관계자는 “입법 예고안을 토대로 국회에서 추가적인 논의가 이뤄질 것”이라고 했다.
미국은 주(州) 정부마다 임신 12~24주 사이에서 낙태를 허용하고 있다. 아시아에서는 일본이 1948년부터 낙태를 허용했다. 대개 낙태 시술 지정 병원에서 받고, 해당 병원은 시술을 정부에 보고해야 한다. 독일·덴마크·이탈리아·스페인 등은 임신 12주까지 허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