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정 사상 처음으로 현직 검찰총장 징계를 논의하기 위한 법무부 검사징계위원회가 10일 과천 법무부 청사에서 열렸으나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징계위는 오는 15일 다시 회의를 열고 윤석열 검찰총장 징계 여부와 수위를 논의하기로 했다.

오전 10시 30분 시작된 징계위는 일부 징계 위원의 불참과 자진 회피로 전체 위원 7명 가운데 정족수를 가까스로 채운 4명으로 진행됐다. 징계위에는 징계 청구권자인 추 장관을 제외하고 이용구 법무차관이 당연직 위원으로, ‘추미애 라인’으로 불리는 심재철 법무부 검찰국장과 신성식 대검 반부패강력부장이 내부 위원으로 참여했다. 외부 위원으로는 정한중 한국외대 로스쿨 교수와 안진 전남대 로스쿨 교수 2명이 나왔다. 또 한 명의 외부 위원인 최태형 변호사는 불참했다. 정 교수는 추 장관을 대신해 징계위원장 직무대행을 맡았다.

윤 총장 측은 신성식 부장을 제외한 위원 4명에 대해 기피 신청을 했지만 징계위는 이를 모두 기각하고 회의를 강행했다. 위원장을 맡은 정 교수는 최근 민주당이 주도한 세미나와 언론 인터뷰에서 윤 총장을 강하게 비판한 인물이다. 안 교수는 민주당 공천심사위원으로 활동했다. 두 사람 모두 현 정권 법무부의 법무·검찰개혁위원 출신이다.

또 이 차관은 원전 수사 주요 피의자인 백운규 전 산업부 장관의 변호인이었다. 윤 총장의 핵심 징계 사유였던 ‘판사 문건’의 ‘제보자’ 심 국장은 다른 위원에 대한 윤 총장 측 기피 신청을 기각하는 표결에 참여한 뒤 자기 차례가 되자 스스로 징계위 참여를 회피했다.

윤 총장 측은 “징계위원장 자격이 없는 추 장관이 회의 소집을 한 것은 검사징계법 위반”이라며 위원장 직무대행이 다시 절차를 밟아 진행할 것을 주장했으나 거부당했다. 징계위는 법무부 측과 윤 총장 측 의견 진술을 차례로 들은 뒤 오후 8시 종료됐다.

기피신청 당한 위원들이 기피신청 기각… 대법 판례마저 무시했다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법무부 검사징계위원회가 한 차례 연기 끝에 10일 열렸지만 시작부터 위원들이 친정부 ‘코드’ 인사로만 구성됐다는 ‘편파성’ 논란에 휩싸였다. 이날 참석한 검찰 내·외부 징계 위원 5명은 모두 친정권 성향이 뚜렷한 인물들이었다. 회의 개최에 앞서 한 징계위원이 사퇴해 친여 성향 인사로 대체됐으며, 친여 인사로 보기 어려웠던 법관 출신 최태형(변호사) 징계위원은 스스로 불참했다. 징계위는 이날 오후 7시 59분까지 진행됐지만 주로 징계위 절차와 구성의 적법성을 놓고 공방을 벌이다가 결국 15일 다시 회의를 열기로 했다.

추미애와 최측근 심재철 - 작년 12월 9일 추미애(오른쪽) 당시 법무장관 후보자가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준법지원센터에 마련된 장관 인사청문회 준비단 사무실로 출근하고 있다. 왼쪽은 현 법무부 검찰국장인 심재철 당시 준비단 대변인. /고운호 기자

이날 윤 총장 측 변호인은 신성식 대검 반부패부장을 제외하고 이용구 법무차관, 정한중(위원장 대행) 한국외대 교수, 안진 전남대 교수, 심재철 검찰국장 등 징계위원 4명에 대해 기피 신청을 했다. 그러자 심재철 국장은 윤 총장 신청을 기각하는 표결에 참여한 뒤 스스로 ‘회피 신청’을 하면서 징계위에서 빠졌다고 한다.

윤 총장 측은 “정·안 교수 두 명에 대해 ‘여권 편향 이력’ 등을 이유로 기피 신청한 건의 경우, 심 국장이 표결 전 회피를 했다면 의결 정족수(3명)를 못 채우는 상황이었다”며 “징계 절차를 농단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법조인들은 “심 국장의 회피는 스스로 자격이 없다고 인정한 것”이라며 “추 장관이 ‘판사 문건’ 제보, 대검 압수수색 관여 등 누가 봐도 기피 사유가 뚜렷한 심 국장을 징계위원으로 투입한 이유를 알 것 같다”고 했다. 검찰 관계자는 “심 국장이 빠진 이후 거수기 역할을 하는 편향 인사 4명이 모여 ‘인민재판’을 진행한 셈”이라고 했다.

◇”기피 위원이 기피 결정 못 해” 대법원 판례 무시

윤 총장 측이 기피 신청을 하자 징계위는 표결로 이를 기각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과정에서 윤 총장 측은 “기피 대상인 4명은 공통적으로 ‘윤 총장을 징계해야 한다’는 예단을 가진 인물”이라며 기피 여부를 결정하는 표결에 참여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친정권 성향 인사들로 구성된 검찰총장 징계위

윤 총장 측은 그 근거로 2013년 9월 사립학교 교원에 대한 파면 처분을 다룬 대법원 판결을 제시했다고 한다. 당시 대법원은 “기피 대상자들의 기피 원인이 공통되는 성격이면 자신뿐 아니라 타인의 기피 결정에도 참여할 수 없다”며 “이를 위반한 징계 처분은 그 자체로 무효”라고 판단했다.

이 판례가 적용되면 기피 의결을 할 자격이 있는 인물은 기피 신청 대상이 아닌 신성식 부장 혼자 남게 된다. 검사징계법은 재적 위원 과반(4명) 출석과 출석 위원 과반 찬성으로 의결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윤 총장 측 요구는 결국 징계위원들을 다시 구성하라는 요구인 셈이다.

그러나 징계위는 “윤 총장 측이 기피 신청권을 남용한다”는 취지로 모두 기각했다. 이 과정에서 심재철 국장은 기각 결정 심의에 참여한 뒤 스스로 ‘회피 신청’을 했다고 한다. 한 법조인은 “심 국장의 ‘꼼수 회피’는 추후 윤 총장이 불복 소송을 제기하면 문제가 될 것”이라고 했다. 그에 앞서 윤 총장 측은 징계위원장이 아닌 추 장관이 징계위 절차를 진행한 것은 위법하다며 징계위를 다시 열어달라고 요구했으나 이 역시 기각당했다.

◇”징계위원 5명 모두가 친정권 인사”

징계위원 면면이 이날 알려지자 검찰 안팎에서는 “중징계를 정해놓고 위원회를 구성한 것”이라는 거센 비판이 나왔다. 징계위 출석 위원 5명 중 4명이 호남 출신, 그중 2명이 전남 순천고 출신인 것도 문제로 지적됐다.

징계위원장 대행을 맡은 정한중 교수는 징계위 참석에 부담을 느낀 서울 모 대학 교수의 대타로 투입됐다. 변호사인 정 교수는 민변 출신으로 윤 총장과 ‘조국 수사’를 공개적으로 비판한 인물이다. 그는 지난 8월 범여권 인사들과 함께 ‘검찰 개혁 세미나’에 참석, “윤 총장이 검찰 개혁에 저항하는 것은 전관예우 때문”이라고 했다. 조국 수사에 대해선 “(조 전 장관 아내) 정경심 동양대 교수를 급하게 기소해 검찰이 덫에 빠졌다”고 했으며 2012년 민주통합당(현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한 이력도 있다. 특히 정 교수는 지난달 언론 인터뷰에서 “(국감에서) 윤 총장이 ‘정치하겠느냐’는 질문에 명확히 부정하지 않은 것은 검찰청법 취지에 어긋난다”는 주장도 했다. 추 장관이 윤 총장 징계 사유로 내세운 ‘정치적 중립성 위반’이 타당하다는 예단(豫斷)을 가진 것으로 볼 대목이었다.

안진 전남대 교수도 친여 인사로 분류된다. 안 교수는 2010년 지방선거에서 민주당 광주시당 공천심사 위원으로 참여했고, 현 정부 출범 후 들어선 법무부 검찰개혁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한 법조인은 “추 장관이 정한 답에 맞춰 답안지를 작성할 인물들로 징계위를 채운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