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예정된 윤석열 검찰총장의 법무부 징계위원회 2차 회의를 하루 앞둔 14일 정치권과 법조계에서는 윤 총장에 대한 징계 수위를 놓고 ‘정직설’이 회자되고 있다. 앞서 해임을 강하게 주장해 왔던 여권 기조를 고려하면 한 발 물러선 분위기다. 강성 성향인 민주당 설훈 의원은 이날 라디오에 출연해 “저보고 하라면 해임하고 싶다”면서도 “여러 가지 상황을 본다면 해임을 안하고 정직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무너지는 文 지지율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전례 없이 큰 폭으로 떨어지며 연일 역대 최저치를 기록하고 있는 정치적 상황이 우선 정직설에 무게를 싣고 있다. 문 대통령은 이날 리얼미터 조사에서 역대 최저치인 36%대 지지율을 기록했다. 코로나 악화와 부동산 민심에 따른 영향과 더불어 정치권과 법조계에서는 “추미애 장관을 위시한 여권의 무리한 윤석열 찍어내기 역풍이 여론에 미치는 영향이 만만치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14일 YTN-리얼미터 여론 조사 결과에 따르면, ‘범여권 주도로 공수처법 개정안이 통과된 것에 대한 생각’을 묻는 조사에 절반이 넘는 54.2%가 잘못된 일이라고 답했다. 잘했다고 말한 응답자는 39.6%에 그쳤다. 앞서 지난 4일 YTN-리얼미터 여론 조사에서는 ‘추 장관과 윤 총장 간 갈등 해결 방안’을 묻는 질문에 44.3%가 “추 장관만 사퇴해야 한다”고 답했다. “윤 총장만 사퇴해야 한다”는 응답은 30.8%에 그쳤다.
코로나 상황과 부동산 정책 실패에 따른 민심 반등이 쉽지 않아 보이는 상황에서 윤 총장 징계 수위를 가장 높은 해임으로 결정해 찍어낼 경우 정치적 후폭풍이 상당할 것이기 때문에 여권이 해임보다는 한 단계 아래인 정직 징계로 수위를 조절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정직 6개월이면 사실상 해임과 같은 효과
윤 총장의 임기는 내년 7월까지다. 통상 임기 한 두달 전 청와대는 검찰총장 후보 추천위원회를 통해 차기 검찰총장 후보자를 지명한다. 이후에는 검찰총장 후보자 인사청문회 정국으로 들어간다. 이 때문에 굳이 윤 총장을 해임하지 않더라도 정직 6개월의 징계를 내리면 사실상 해임에 준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검사징계법상 정직 징계는 6개월이 최대 수위다.
정직 3개월의 처분을 내리더라도 사실상 윤 총장은 ‘식물 총장’으로 전락한다. 사실상 지휘권을 박탈당하기 때문에 현재 여권이 우려하고 있는 월성 원전 수사 역시 속도를 내기 힘들다. 지난 주 이미 국회에서 공수처법이 통과된 이상 그 사이 공수처가 출범하면 공수처를 통해 검찰이 가지고 있던 월성 관련 수사를 공수처로 이관시킬 수도 있다. 모두 정직 처분을 받은 윤 총장의 직무 범위를 넘어서는 일이다.
◇향후 행정 소송 ‘재량권 남용’ 패소 우려
윤 총장은 징계 수위가 어떻게 나든 징계 취소 행정 소송을 예고한 상태다. 이미 여권으로서는 이달 초 추 장관의 직무 집행 정지 조치 효력이 서울행정법원에서 뒤집히는 패배도 경험한 바 있다. 징계위 날짜를 지난 2일에서 4일로 연기하고 또 다시 10일로 연기한 뒤 이날 하루 결론을 내지 않고 15일 2차 회의까지 열기로 한 것도 법조계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이 강조한 절차적 정당성을 최대한 확보해 향후 예상되는 소송 과정에서 문제가 될 부분을 최소화 하려는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법원이 징계 취소 소송에서 가장 주안점을 두고 보는 것은 징계 재량권을 남용했는지 여부다. 이명박 정부를 상대로 해임 무효 소송을 냈던 KBS의 정연주 전 사장 역시 법원에서 대통령의 징계 재량권 남용이 인정돼 승소했다. 윤 총장 징계위원 중 한 명인 이용구 법무차관 역시 과거 친정권 성향 검사인 임은정 대검 감찰정책연구관의 정직 처분 취소 소송을 변호하며 “중징계 처분은 비위 정도가 극심한 경우에만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해 법원에서 승소 판결을 받아낸 바 있다.
법조계 관계자는 “윤 총장에 대한 법무부의 6가지 징계 사유 역시 사실 관계가 확인되지 않거나 해임에 이르기까지 심각한 비위라고 볼 수 없다는 의견이 많다”며 “여권이 향후 소송에서 패소할 것을 우려해 징계 수위를 해임에서 정직으로 낮출 수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