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실형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한 서울고법 형사1부 재판장인 정준영(53·사법연수원 20기) 부장판사는 재판에서 ‘치유 사법' 등 새로운 시도를 한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는 이번 이 부회장 관련 재판이 시작된 2019년 이 부회장에게 ‘당당한 경영’ ‘신(新)경영’을 주문했었다. 이 부회장 부친인 이건희 회장의 과거 ‘삼성 신경영’을 언급하면서 이런 당부를 했다. 판사가 형사재판을 하는 법정에서 이런 언급을 하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었다.
그는 삼성에 실효적 준법감시제도 마련 등을 제안하면서 이를 양형에 반영하겠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었다. 뇌물로 인정된 액수가 크게 늘어나자 정 부장판사는 “실효적 준법경영체제를 확립하라”고 주문한 것이다.
이에 삼성은 지난해 준법감시위원회를 출범했고, 특검은 ‘재벌 봐주기’라고 비판하며 재판부 기피를 신청했다.
그러나 결국 재판부는 준법감시위의 실효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날 재판부는 “실효적인 준법감시는 법적 평가로부터 시작되는 것인데, 앞으로 발생 가능한 새로운 유형 위험에 대한 위험 예방 및 감시 활동 하는데까지는 이르고 있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며 “삼성그룹에서 콘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조직에 대한 준법 감시 방안이 구체적으로 제시되어 있지 않다”고 했다. 이어 “과거 정치권력에 뇌물을 제공하기 위해 사용했던 허위 용역계약 방식을 독립된 법적 위험으로 평가할 필요 있는 등 제도 보완해야 할 점이 있다”고 했다. 재판부가 이 부회장에게 징역 2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하면서 파기환송심은 약 1년 4개월 만에 마무리됐다.
정 부장판사는 1997년 서울중앙지법 민사부 수석부장판사 배석 시절 한보그룹과 웅진홀딩스 등 파산 사건의 주심을 맡아 처리했고, 서울회생법원 초대 수석부장판사를 지내는 등 법원 내에서 ‘파산·회생’ 전문가로 통한다.
인천지법 근무 당시 형사재판 제도인 ‘국민참여재판’을 민사재판에 적용한 ‘배심조정’ 제도를 처음 시행했고, 파산부 시절에는 유동성 위기를 겪는 중소기업에 신속히 자금을 지원하는 ‘패스트트랙 프로그램’ 도입에 핵심 역할을 했다.
그는 형벌보다는 재발 방지나 치료에 중심에 둔 ‘치유 사법’을 내세우며 2019년 살인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은 60대 남성의 항소심에서 치매전문병원 입원을 조건으로 보석을 허가했다.
정 부장판사는 지난해 이명박 전 대통령의 항소심에서 1심보다 무거운 징역 17년을 선고했고, 이 형은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에게는 무죄를 선고한 1심과 달리 실형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자택을 공매에 넘긴 검찰에 대해서는 일부 위법하다며 압류 취소를 결정하기도 했다.
서울 출신인 정 부장판사는 청량고·서울대 사법학과를 졸업하고 1988년 30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1994년 서울지법 북부지원 판사로 임관한 뒤 전주·인천·서울지법·서울고법 등을 거쳐 법원행정처, 대법원 재판연구관 등을 거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