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9월 김명수 대법원장이 본인 임명 동의안에 대한 국회 인준 표결을 앞두고 임성근 부장판사에게 직접 야당 의원을 상대로 한 로비를 부탁했으며, 대법원장 청문회 준비팀 차원에서도 야당 의원 명단을 만들어 조직적으로 움직인 것으로 8일 전해졌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8일 오후 서초동 대법원에서 퇴근하고 있다. 2021.2.8 연합뉴스

본지 취재에 따르면, 당시 대법원장 청문회 준비팀은 법원행정처 전·현직 판사들에게 각자 출신 지역과 대학이 겹치는 야당 의원들을 할당해 ‘인준안 찬성 로비’를 벌이도록 지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한 청문회 준비팀은 2017년 9월 21일 김 대법원장 임명 동의안이 국회를 통과한 직후 해당 자료가 저장된 법원행정처 PC의 하드디스크를 디가우징(강한 자력으로 데이터를 완전 삭제하는 일)했다고 복수의 법원 관계자가 전했다.

법조인들은 “행정처 소속이 아닌 현직 판사에게 ‘정치인 접촉’을 지시한 것은 직권남용에 해당하고, 공적 업무 자료인 청문회 자료를 마음대로 삭제한 것은 공공 기록물 폐기죄가 될 수 있다”고 했다.

당시 김 대법원장의 청문회 준비팀은 2017년 8월 구성됐고 법원행정처 부장판사(팀장) 1명과 평판사 3명 등 총 4명이 참여했다. 그 가운데 팀장을 포함한 3명은 김 대법원장이 회장을 지낸 진보 성향 법관 모임인 우리법연구회와 국제인권법연구회 소속 판사였다.

청문회 준비팀이 ‘대야(對野) 로비’ 총력전을 벌인 것은, 김 대법원장의 인준 표결 열흘 전인 2017년 9월 11일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의 임명 동의안이 국회에서 부결되는 일이 벌어졌기 때문으로 전해졌다. 법원 관계자는 “당시 헌재 소장 인준 부결 소식에 김 대법원장 청문회 준비팀에 비상이 걸렸다”고 말했다.

청문회 준비팀은 그 직후 당시 야당인 자유한국당, 국민의당, 바른정당 의원들의 출신 지역과 고교·대학 등을 분석한 ‘접촉 리스트’를 만들었다고 한다. 이후 이들과 출신지 등이 겹치는 전·현직 행정처 판사를 물색, 해당 판사들에게 “야당 의원들에게 연락해 찬성표를 던지도록 설득해달라”고 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치 독립이 핵심인 일선 재판부 판사들에게까지 국회의원 ‘전담 마크’를 시킨 것이다.

행정처 출신이었던 A 판사는 “청문회 준비팀에서 야당 의원들 컨택트(연락) 지시가 있었다. ‘연락해서 설득하라’는 취지였다”고 말했다. B 판사는 “준비팀의 지시로 고등법원 부장판사급부터 평판사급 행정처 판사까지 거의 총동원돼 학연, 지연이 있는 야당 의원 설득에 나섰다”고 했다.

당시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이던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은 8일 본지 통화에서 “당시 이민걸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과 임성근 서울고법 부장판사가 전화를 걸어 ‘김 후보자가 우리한테 사법부 독립을 반드시 지킬 것이라고 했다. 찬성표를 찍어달라’고 했다”고 말했다. 당시 법사위원이었던 여상규 전 국민의힘 의원은 “행정처 판사들이 ‘김명수 후보자는 인간적으로 괜찮은 사람이니 찬성 표결을 해달라’고 했다”고 말했다.

김 대법원장 임명 동의안이 2017년 9월 21일 역대 최저 찬성률(53.7%)로 국회를 통과한 직후 청문회 준비팀은 청문회 준비 과정에서 사용한 법원행정처 PC의 하드디스크를 디가우징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청문회 준비팀에 있었던 한 관계자는 “관례적으로 대법원장 청문회가 끝나면 사용한 컴퓨터는 디가우징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야당 의원 명단을 준비팀에서 만든 적도 없고, 김 대법원장이 국회의원 접촉과 PC 디가우징을 지시한 적도 없다”고도 했다.

그러나 법원 관계자들은 “청문회 관련 자료를 디가우징한 건 이때가 처음”이라고 말했다. 또한 법원 내부에선 “당시 판사들이 찾아왔다고 하는 야당 의원이 한둘이 아니다. 모두 김 대법원장의 지시 없인 불가능한 일”이란 말이 나오고 있다.

실제 김 대법원장은 본인의 국회 인준 표결 이틀 전에 당시 서울고법 소속이던 임성근 부장판사에게 직접 “야당 의원들을 설득해 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당시 임 부장판사는 김 대법원장 요청에 따라 야당 의원 서너 명을 접촉했고 그 결과를 김 대법원장에게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변호사는 “헌법과 법률상 독립된 판사에게 정치권 접촉을 지시한 것은 직권남용, 공적 업무 수행 과정에서 만든 청문회 자료를 복원 불가능하게 삭제한 것은 공공 기록물 폐기죄 소지가 다분하다”고 말했다. 대법원은 “사실관계를 확인 중”이라고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