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위헌 결정에 따라 낙태 시술을 한 산부인과 의사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법원에서 헌재 판단을 근거로 낙태 시술에 무죄 확정판결을 내린 건 이번이 처음이다.
대법원 2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업무상촉탁낙태 혐의로 기소된 산부인과 의사 A씨의 상고심에서 징역 6개월 및 자격정지 1년형에 대해 선고유예한 원심을 깨고 무죄로 파기자판(원심 법원으로 파기환송하지 않고 스스로 판결)했다고 12일 밝혔다.
◇대법원 무죄 판례 근거로 하급심 무죄 이어질 듯
A씨는 2013년 9월 미혼모 B씨의 부탁을 받고 낙태 시술을 한 혐의로 재판을 받아왔다. 당시 B씨는 낙태 수술을 알선하는 브로커의 소개를 받고 A씨의 병원을 찾은 것으로 조사됐다. 1·2심은 B씨의 건강상 이유로 낙태 시술을 시행했다는 A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유죄로 판단했다.
다만 B씨의 건강이 실제로 좋지 않았고 A씨가 반성하고 있는 점 등을 고려해 선고유예 판결을 내렸다. 선고유예는 범행의 정도가 가벼워 선고를 미루고 일정 기간이 지나면 선고를 하지 않는 판결이다. 그러나 2심 선고 후 헌재가 낙태죄에 위헌 결정을 내렸고 이에 따라 대법원은 직권으로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대법원은 “위헌 결정을 받은 조항은 소급해서 효력을 상실하기 때문에 무죄를 선고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2019년 헌재 “낙태 처벌은 여성의 자기결정권 제한”
헌재는 2019년 4월 낙태죄 조항이 위헌이라고 판단하고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그러면서 2020년 12월 31일까지 낙태죄 처벌을 규정한 형법 269조 1항 및 270조 1항을 개정하라고 결정했다.
법적 공백에 따른 혼란을 막기 위해 지난해 말까지 대체 입법 기한을 주고 한시적으로 낙태죄 효력을 유지한 것이다. 그러나 정부와 국회는 지난해 개정 시한 내 입법을 하지 못했고, 낙태죄 조항은 대체 입법 없이 올해 1월 1일부터 폐지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