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범계 법무장관이 수사지휘권을 발동해 ‘한명숙 불법 정치자금 수수 사건’ 수사팀의 ‘재소자 위증(僞證) 교사’ 의혹을 “대검 부장회의에서 다시 심의하라”고 지시한 가운데, 한 전 총리 사건을 수사했던 양석조 대전고검 검사가 과거 자신도 재소자의 거짓 주장으로 “‘검사가 회유·협박을 했다'는 오해를 받았다”며 “이런 일이 모든 검사들에게 있을 수 있다는 현실이 너무 안타깝다”고 했다.
양 검사는 이날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에 글을 올려 재소자의 거짓 주장을 통해 자신이 오해를 받았던 경험을 전했다. 그는 “한 지자체장을 뇌물로 구속기소 한 뒤, 사기 구속 사건을 맡게 됐다”며 “그런데 구속된 피의자가 자신을 ‘검사님이 기소했던 지자체장에게 3억원을 건넸던 전달책이다' ‘제 처가 사진을 보관 중인데 그것까지 조사하시면 어떻겠느냐'고 말했다”고 했다. 양 검사는 당시 “‘내용이 사실이면 고발장을 제출하라'고 말한 후 지자체장 재판에 신경을 쓰고 있었다'”고 했다.
그는 “이후 사기사건 재소자는 본인의 첫 재판에서 “담당 검사가 본인에게 ‘지자체장 뇌물사건을 불라고 회유와 협박을 했다. 불어주면 풀어준다고 했다’고 뜬금없는 이야기를 했고 이를 한 지역신문 기자가 기사화했다”고 했다. 양 검사는 “그 다음은 뻔한 순서였다”며 “지자체장 뇌물사건 공판에서 변호인이 해당 기사를 제시하며 ‘이런 의혹이 있으니 해당 재소자를 증인으로 신청하겠다. 표적수사임을 입증하겠다’고 말했다”고 덧붙였다.
양 검사는 그러면서 한 전 총리 사건을 꺼냈다. 그는 “재소자가 말을 바꾸기 전 구치소에서 ‘말을 바꾼다더라’는 소문이 무성했고, 수사팀은 ‘이렇게 객관적인 증거가 많은데 그게 가능하냐’고 소문을 무시했다”며 “그런데 진짜로 말을 바꿔 수사팀은 소문의 근원지인 재소자 조사가 불가피했다”고 했다.
그는 그러면서 “당시 부장 주재 수사팀 회의서 부장이 ‘누가 재소자 조사할래’라고 했는데, 남은 건 2명의 검사였다”며 “말석인 후배 검사를 위해서라면 ‘제가 하겠습니다’라고 해야 했는데, 재소자 조사의 추억으로 그리하지 못했다”고 했다. 양 검사는 “그래서 말석 검사가 조사를 담당하게 됐고,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고생하고 있다”며 “미안하고 죄송하다”고 했다.
박 장관이 역대 5번째 수사지휘권을 발동한 이 사건은 한 전 총리에게 불법 정치자금 9억원을 건넨 혐의를 받은 고(故) 한만호 한신건영 대표가 재판에서 진술을 번복하자 검찰 수사팀이 한 대표의 ‘감방 동료’ 김모·최모씨를 법정 증인으로 내세워 ‘한 대표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취지의 진술을 하도록 회유·협박했다는 게 골자다. 지난해 4월 최씨는 법무부에 이 같은 내용을 진정했는데 대검은 지난 5일 이를 무혐의 처분했다.
그 사이 최씨의 공소시효는 완성돼 끝났고 김씨의 공소시효 만료는 오는 22일로 다가왔다. 공소시효 완성을 닷새 앞두고 박 장관은 대검 부장회의에서 다시 심의하라며 수사지휘권을 발동한 것이다. 이날 조남관 검찰총장 직무대행은 박 장관의 수사지휘를 수용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