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박범계(오른쪽) 법무부 장관과 조남관 검찰총장 직무대행이 투명 차단막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날 회의에서는 ‘LH 직원들의 신도시 투기 의혹’과 관련한 수사 협력 방안이 논의됐다. /이태경 기자

조남관 검찰총장 직무대행은 18일 박범계 법무장관의 수사 지휘권 발동에 대한 후속 조치로 대검 부장(검사장급) 7명뿐만 아니라 전국 일선 고검장 6명까지 참여하는 ‘대검 부장회의’를 19일 오전 10시에 소집했다.

전날 박 장관은 최근 대검이 ‘한명숙 불법 정치자금 수수 사건’ 수사팀의 ‘재소자 위증(僞證) 교사’ 의혹을 무혐의 처리한 것에 대해 ‘대검 부장회의를 소집해 다시 심의하라’는 지휘권을 발동했다.

조 대행은 이날 입장문을 통해 “이번 사건 처리 과정에서 미흡하다는 장관님의 지적을 겸허히 수용하겠다”며 “다만 사건 처리 경험과 식견이 풍부하고 검찰 내 집단 지성을 대표하는 일선 고검장들을 부장회의에 참여하도록 해 심의의 완숙도를 높이겠다”고 밝혔다.

박 장관의 수사 지휘를 수용하는 모양새를 취하면서도 친(親)정권 성향 검사장들이 다수 포진한 현 대검 부장단만으로는 심의의 공정성을 확보할 수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는 분석이다. 검찰 내부에선 “6명의 일선 고검장은 ‘윤석열 징계 반대’ 성명을 발표했던 간부들”이라며 “조 대행이 사실상 반기(反旗)를 든 셈”이라고 했다. 박 장관은 이날 조 대행으로부터 관련 보고를 받고 “그렇게 하시라”고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두고 검찰 안팎에선 “박범계 장관의 수사 지휘를 수용해 법무부와 정면충돌을 피하면서도 대검 부장회의의 공정성 시비를 차단하는 묘안” “박 장관이 허를 찔렸다”는 반응이 나왔다. 신성식 반부패·강력부장, 이종근 형사부장, 이정현 공공수사부장, 한동수 감찰부장 등 친정부 성향 간부가 다수를 차지하는 대검 부장회의가 고검장 6명 투입으로 구도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한명숙 수사팀 위증교사 의혹’기소 여부 심의할 대검 부장회의 참석자 (조남관 대행 주재)

전날 수사지휘 발동 이후 검찰 안팎에서는 “대검 부장으로만 구성된 회의 결론은 공정성을 담보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왔다. 부장회의는 조남관 직무대행 주재로 신성식·이종근·이정현·한동수 부장, 고경순 공판송무부장, 이철희 과학수사부장, 조종태 기획조정부장 등 검사장 7명이 기본으로 참여한다.

이 중 신성식·이종근·이정현·한동수 부장은 지난해 윤석열 전 검찰총장 징계를 직간접적으로 관여·주도했다. 당시 윤 전 총장 징계 청구 사유 중 하나가 ‘한 전 총리 사건 감찰 방해’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들은 이 사건에 대해 예단(豫斷)을 가졌을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여기에 고경순 부장은 추미애 전 법무장관의 대학 후배다.

대검 부장회의는 출석 인원 과반수 찬성으로 결론을 도출한다. 대검 부장들의 이 같은 인적 구성을 감안할 때 “회의는 해보나 마나” “박 장관이 친여 성향 대검 간부들을 믿고 교묘하게 책임을 부장회의에 떠넘겼다”는 비판이 검찰 내부에서 나왔었다.

대검 예규 ‘합리적 의사결정을 위한 협의체 등 운영에 관한 지침’은 ‘대검 부장회의는 검찰총장·대검 차장검사·대검 부장으로 구성한다’고 하면서도 ‘사안에 따라 대검 부장 일부만 참석하게 하거나, 고검장·지검장 등을 참석하게 해 회의를 구성할 수 있다’고 돼 있다. 박 장관도 이날 대구지검 상주지청을 방문한 자리에서 “(규정상) 문제가 없다”고 했다.

이번에 참석하는 일선 고검장들은 조상철(서울)·오인서(수원)·강남일(대전)·장영수(대구)·박성진(부산)·구본선(광주) 고검장 등 6명이다. 이들은 지난해 11월 추미애 당시 장관을 비판하며 윤 전 총장의 직무정지를 재고해달라는 성명을 냈고 최근에는 여권의 ‘중대범죄수사청’ 입법에도 사실상 반대 의견을 냈다. 이 때문에 19일 대검 부장회의를 통해 박 장관 등 여권이 원하는 ‘기소 의견’이 나오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19일 회의에선 오는 22일이 공소시효 만료일인 한만호 전 대표의 감방 동료 김모씨가 “위증 교사가 없었다”고 진술한 점, 지난해 법무부에 ‘위증 교사’ 진정서를 냈던 또 다른 감방 동료 최모씨가 “위증 교사는 없었다”는 취지로 진술을 번복하는 의견서를 검찰에 제출한 점 등이 쟁점이 될 것으로 알려졌다.

대검 부장회의 결론에는 법적 기속력이 없어 조 대행이 반드시 따를 필요는 없다. 압도적으로 기소 결론이 나오지 않는 한 조 대행이 무혐의 판단을 유지할 가능성이 거론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