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與圈)의 각종 ‘정치 공세’ 길목마다 예상치 못하게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이 등장하며 여권 입장을 난처하게 만들고 있다. 이 지검장이 아군(我軍)인 줄 알았는데 사실상 적군(敵軍) 역할을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정치권과 법조계 일각에서는 “민주당의 ‘X맨’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민주당은 최근 박형준 국민의힘 부산시장 후보 딸의 입시 비리 의혹을 제기해 왔다. 박 후보 아내가 2008년 딸의 홍익대 미대 입시 채점을 잘 봐달라는 청탁을 홍대 교수에게 했고 2009년 검찰 수사까지 진행됐지만 이명박 정권 당시 실세였던 박 후보의 배후 압력 때문에 무혐의 처리된 것 아니냐는 것이 골자다.
딸의 입시 비리 혐의로 아내가 1심 재판에서 이미 징역 4년형을 받고 구속돼 있는 조국 전 장관조차 페이스북에 박 후보 자녀의 입시 비리 의혹을 비판하는 게시물을 올릴 정도였다.
하지만 정작 2009년 수사 결과 해당 의혹을 무혐의 처리한 검사가 당시 서울서부지검 형사5부장이었던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은 23일 “민주당이 그토록 옹호하는 이성윤 지검장이 무혐의로 결론 낸 사건을 놓고, 아무런 증거도 없이 박형준 후보 탓이라고 뒤집어씌우고 있다”며 “당시 수사 결과에 불만이 있으면 이 지검장에게 따지라”고 했다. 여권의 박 후보 입시 비리 의혹 공세는 이후 주춤한 모양새다.
이 지검장은 최근 수사 지휘권을 발동했다가 무혐의 결정이 나는 바람에 박범계 법무장관을 머쓱하게 만들었던 ‘한명숙 불법정치자금 사건’의 ‘위증 교사 의혹’에도 등장해 여권을 난처하게 만들고 있다.
박 장관의 지휘권 발동에도 불구하고, 지난 19일 대검이 “한명숙 사건 수사팀의 위증 교사 의혹은 근거가 없다”며 무혐의 결정을 내리자 박 장관은 10년 전 한명숙 사건 관련 검찰 수사 전 과정에 대한 대대적인 감찰에 나서겠다고 ‘뒤끝’을 보였다. 당시 수사팀이 한명숙 전 총리에게 돈을 준 고(故) 한만호 전 한신건영 대표의 동료 재소자들을 반복해서 검찰청에 불러 조서도 남기지 않고 출정 조사를 하는 등 무리한 수사를 벌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2010년 당시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2부에서도 한만호씨의 동료 재소자들을 검찰청에 불러 10여회 이상 출정 조사를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금조2부장이 이성윤 지검장이었다. 박 장관 말대로라면 이 지검장 역시 감찰 대상에 포함된다.
이는 지난해 국회 국정감사에서도 문제가 됐다. 박주민 민주당 의원이 “한만호 동료 수감자들이 한 전 총리 사건 담당 부서뿐만 아니라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부인 935호실에서도 자주 출정 조사를 받았다고 한다. 감찰이 필요하다”고 하자, 추미애 당시 법무장관은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당연히 조사돼야 한다”고 맞받아쳤다. 두 사람 모두 이 지검장이 당시 금조2부장이었다는 사실을 모르고 이 같은 대화를 주고 받은 것으로 보이는 대목이다. 물론 이 지검장에 대한 감찰 조사는 지금까지 없었다.
앞서 지난해 ‘한명숙 사건 위증 교사 의혹’은 이 지검장이 이끄는 서울중앙지검 인권감독관실에서 먼저 조사에 나서 무혐의 결론을 내리고 대검에 보고 하기도 했었다. 법조계 관계자는 “사실상 여권의 ‘수족(手足)’이라는 비판까지 받고 있는 이 지검장이 정작 중요한 현안에서 여권과 손발이 맞지 않는 모양새를 연출한 것”이라고 했다. 이 지검장은 2019년 ‘조국 사태’ 당시 여권에서 ‘맞불’ 차원으로 공세를 폈던 나경원 전 의원 관련 각종 의혹에 대해 지난 해 뒤늦게 수사에 나섰다가 10여건의 고발 사건을 모두 무혐의 처리하기도 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