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검찰인사위원회가 개최된 27일 출근길에 “(검사장급에서) 인사 적체 문제가 있다”며 대규모 검찰 인사를 예고했다. 박 장관은 차기 검찰총장 취임 전인데도 이날 이례적으로 인사위를 소집했고, 인사위는 “고(高)호봉 기수의 인사 적체를 해소하려 보직 내에서 검사장급 이상을 탄력적으로 인사하는 방안을 논의했다”고 밝혔다.
박 장관의 언급과 인사위 결론을 두고 검찰 내부에선 “고검장급을 검사장급 자리인 고검 차장검사나 한직인 법무연수원 연구위원 등으로 ‘강등’하려는 것 아니냐, 결국 ‘사표 내고 나가라’는 메시지”라는 말이 나왔다. 한 검찰 간부는 “그래야 연쇄적으로 검사장 인사 폭이 커지고 거기에 친정권 검사들을 대거 심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 일선 고검장들은 “기소된 이성윤(서울중앙지검장)도 직무배제 없이 검사장직(職)을 유지하는데 우리가 왜 나가느냐”며 반발하는 기류다. 이성윤 지검장은 ‘김학의 불법 출금 수사’를 무마한 혐의로 최근 재판에 넘겨졌다. 법조계에서는 “집권 말 정권 안정을 보장할 검찰 인사 판을 짜려는 청와대와 이를 거부하는 검찰 상층부가 충돌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제기됐다.
전국의 고검장급 자리는 총 8개로 현재 대구고검장만 공석인 상태다. 숫자는 적지만 이들이 ‘뭉치면’ 검찰 조직 전체의 분위기를 주도할 수 있다. 작년 11월 ‘윤석열 전 총장 징계 국면’에서 조남관 대검 차장을 제외한 고검장들은 추 전 장관이 검찰 중립성을 훼손하고 있다는 취지의 성명서를 냈다. 이는 당시 평검사들 반발이 ‘전국적인 검란(檢亂)’으로 번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한 법조인은 “지난 4월 사직한 장영수 전 대구고검장만 빼고 그때 고검장 모두가 그 자리 그대로 있다”며 “정권은 눈엣가시인 이들을 인사로 제거하고자 한다”고 했다.
이날 박 장관 발언에 대해 한 고검장은 본지에 “나갈 생각 없다. 이성윤도 안 나가는데 우리가 왜 나가느냐”며 “며칠 전 연수원 동기인 다른 고검장들과의 전화 통화에서도 같은 얘기를 나눴다”고 밝혔다. 또 다른 고검장은 “인사를 앞두고 사표를 고민한 고검장도 1~2명 있지만 동료와 후배들이 강하게 만류하고 있다”며 “생각 같아선 사표를 내고 싶어도 ‘남아서 외압을 막아달라’는 후배들과 국민 격려를 무시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했다. 한 검찰 관계자는 “고검장 대부분이 하루에도 몇 통씩 ‘남아 달라’는 전화를 받는다”며 “추미애 전 장관의 수사 지휘권 남발, 박범계 장관의 무리한 ‘한명숙 수사팀’ 감찰 지시 같은 상황이 반복될 수 있으니 방패막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검찰 내부에 퍼져 있다”고 했다.
일선의 한 검사장은 “검사 생활하면서 ‘검사장 인사 적체’라는 말은 처음 듣는다”며 “그동안 검찰 인사는 조국, 추미애 전 장관이 했는데 ‘인사 적체’가 문제라면 그들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했다. “옷 벗고 나갔던 연수원 20기(김오수 후보자)를 검찰총장으로 지명하고선 23~24기(고검장)를 가리켜 ‘적체'라고 하는 건 모순”이라는 비판도 제기됐다.
검찰 일각에서는 “고검장들이 물러나지 않을 경우, 박 장관이 이들을 한직(閑職)인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이나 고검 차장 등으로 전보하는 극단적 인사를 할 수도 있다”는 말이 나왔다. 과거 2017년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당시 고검장급)이 ‘돈 봉투 만찬 사건’으로 부산고검 차장검사로 좌천된 사례가 있지만, 수사나 감찰 등 빌미가 될 현안이 있는 경우에 한정됐다. 이영렬 전 지검장의 경우 이후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돼 ‘불명예’를 벗었다.
그럼에도 이날 인사위에선 고검장을 검사장 보직에 보임하는 방안 등을 ‘탄력적 인사’라는 이름으로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식으로 밉보인 고검장을 쫓아내려는 것 아니냐”는 반대 의견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일선 검사들은 “험한 꼴 당하기 전에 알아서 나가라고 고검장들을 겁박하는 것으로, 정권 수사를 차단하려 그런 무리수를 강행한다면 후폭풍은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