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임 검사 임관식 참석하는 배성범 법무연수원장

배성범 법무연수원장, 오인서 수원고검장 등 사표를 낸 고검장들이 현 정부의 검찰개혁을 강하게 비판했다. ‘검찰 독립성을 심하게 손상한다’ ‘불완전함과 비효율을 내포하고 있다” 는 등의 ‘작심 비판’이 이어졌다.

◇배성범 “수사개시 총장·장관 승인 제도, 검사 독립성 심하게 손상”

배성범 법무연수원장(고검장급)은 1일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에 올린 사직글에서 “검찰 개혁이 계속 현안이 돼 있다”며 “그동안 검찰업무를 해 왔던 저의 관점에서는 검찰개혁을 둘러싼 국민들의 질책이 검찰이 인권과 공정을 지켜 제대로 수사를 하라는 것에 있다고 본다”고 했다.

그는 “그러나 갈수록 치밀해지는 부패, 경제범죄 등에 대한 검찰의 대응역량은 충분히 고려되지 않았고 검찰의 수사 인프라는 계속 약화돼 왔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LH사건 등 사회적 공분을 야기하는 부패 사건, 대형 경제범죄에 대한 검찰의 대응에 공백이 초래되는 것이 과연 우리 사회에 공정과 정의가 바로 서는데 도움이 되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정부·여당은 검·경 수사권조정안을 통해 검찰이 직접 수사할 수 있는 범죄를 선거·부패·공직자 범죄 등 6대 범죄로 제한했다. 이로 인해 LH사태와 같은 투기 범죄에 대한 검찰 수사를 원천적으로 배제한다는 비판이 높았다.

배 원장은 최근 법무부가 이들 6대 범죄에 대한 수사개시를 위해서는 검찰총장이나 법무부장관 승인을 받도록 하고, 강력부, 조사부, 외사부 등을 폐지·합병하는 내용의 조직개편안을 내놓은 데 대해서도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검찰개혁의 일환으로 강조돼 왔던 형사부 활성화, 검찰 전문역량 강화 기조와 어긋난다”고 했다. 그러면서 “강력부 조사부 외사부 등 전문수사부서가 수십년간 힘들여 축적해 온 전문수사 역량은 우리 사법시스템의 소종한 자산”이라며 “이들을 일거에 폐지하는 상황에서 검찰의 전문 역량을 강화할 수 있나”고 반문했다.

특히 검찰총장과 법무부장관이 일일히 개별 사건의 수사개시를 승인하는 데 대해서는 “검찰의 정치적 중립에 의구성을 야기하고 일선 청과 검사들의 수사 자율성, 독립성을 심하게 손상할 수 있다”고 비판했다.

2019년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조국수사’ 실무를 총괄한 배 원장은 정권 상대 수사 검사들에 대한 인사 불이익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했다. 그는 “제가 서울중앙지검장으로 근무할 때나 그 전에도 많은 뛰어난 검사들이 정치적 논란이 불가피한 사건의 수사, 공판에 임해야 하는 부담과 고통을 짊어졌다”며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한 검사들이 특정 수사팀의 일원이었다는 이유로 인사등에 부당한 불이익을 받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추미애 전 장관은 작년 8월 조국 전 장관을 수사한 강백신 중앙지검 부부장검사를 왕복 10시간이 걸리는 통영지청으로 발령냈다. 수사팀장인 고형곤 부장검사도 대구지검으로 발령났다. 이들은 원거리를 왕복하며 조국 전 장관 사건 공소유지를 하고 있다.

배 원장은 “(정권 상대 수사검사라는 이유로 인사불이익을 주지 않는 것은) 검찰개혁이 단지 슬로건에 그치지 않고 내외의 공감과 설득력을 갖기 위해 꼭 필요한 일”이라고 했다.

오인서 수원고검장이 3월 8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열린 전국 고검장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뉴시스

◇오인서 “불완전성함과 비효율” 공수처법 우회비판

‘김학의 불법출금’수사를 지휘하다 대검과 갈등 끝에 사직한 오인서 수원고검장도 이프로스에 올린 사직글에서 정부·여당의 ‘검찰개혁’ 드라이브를 경계했다.

그는 “떠나는 순간까지 검사로서의 제 정체성이 무엇이었는지 반추하게 된다”며 “물러터진 검사라는 핀잔을 받기도 하고 악질 검사라는 수군거림도 경험했다. 수구 꼴통 검사와 빨갱이 검사 소리도 각각 들어봤다”고 했다.

그는 “사안을 보는 입장에 따라 검사 개인을 평가하고 재단하는 내용이 각양각색”이라며 “공직자의 숙명이고 감내해야 할 몫이려니 하지만 그때마다 느끼는 씁쓸한 감정은 어쩔 수가 없다”고 했다.

오 고검장은 “검찰 관련 이슈가 끊임없이 생산되면서 안팎이 늘 시끌시끌하다”며 “검찰을 보는 시각과 진단도 백인백색이고 개혁방향과 내용에 대한 의견도 다양하다”고 했다.

오 고검장은 “과거의 업무상 잘못과 일탈, 시대에 뒤떨어진 법제와 조직문화 등을 개선하는 데 누가 이의를 제기하겠는가”라면서도 “다만 불완전함과 비효율성을 내포한 채 시행 중인 수사구조 개편 법령에 이어 일각에서 추가 개혁을 거론하고 있는 현 시점에서도 내부에서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고 있는 부분은 없는지, 처방에 교각살우하는 요소는 없는지 살피고 또 살펴봐 주시기를 바란다”고 했다.

오 고검장이 언급한 ‘불완전성과 비효율성을 내포한 채 시행중인 법령'은 고위공직자 범죄수사처 (공수처)관련 법령이라는 해석이 많다. 그가 수원지검에서 ‘김학의 불법출금' 수사를 총괄하면서 애로사항을 겪었기 때문이다.

수원지검은 지난 3월 검사 범죄를 의무이첩하도록 한 공수처법 때문에 한창 수사중인 사건을 공수처에 보내야 했다. 겨우 사건을 돌려받았지만 공수처가 ‘공소 제기 권한은 공수처에 남아 있으니 수사 후 송치하라’는 주장을 하면서 검찰과 공수처간 갈등이 불거졌다. 공수처에서는 이성윤 지검장에 대한 ‘황제 면담' 논란이 불거졌다. 한 검찰 관계자는 “공수처법 시행 후 극도의 비효율과 사건 처리 지연이 있는 상황에서 또다시 검찰 조직개편을 통해 ‘검수완박’을 추진하려는 데 대한 쓴소리”라고 했다.